[취재후] 야생 오소리의 역습.."아이들이었으면 큰일 날 뻔"
새벽시간 아파트 단지에 나타난 야생 오소리
어두운 새벽 시간, 차에서 내리자마자 야생 동물에게 발목을 물렸다. 야영장이나 야외로 놀러 간 것도 아니고 도시 아파트 단지에서다.
김 모(34) 씨는 15일 오전 0시쯤 살고 있던 경기도 남양주시의 한 아파트에 도착했다. 지상 주차장을 배회해봤지만 주차할 자리가 없어 집 앞 빈 공간에 정차만 해두고 방문 차량이 빠지길 기다리며 차 안에 있었다.
시간이 지나도 빠져나가는 차량이 없자 '전화가 오면 나와서 조치해야겠다'는 생각에 0시 28분쯤 일단 차에서 내렸다.
내리자마자 갑자기 발목에서 고통이 엄습했다. 어떤 상황인지 경황도 모른 채 살려달라는 소리를 질렀지만,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김 씨는 "'쉭쉭' 돼지 소리 같은 것을 내는 정체 모를 야생 동물이 갑자기 물고 놔주질 않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김 씨가 사는 집은 사고 현장에서 불과 30여m 떨어져 있었지만, 이 동물을 뿌리치고 도망갈 자신이 없었다. 김 씨는 차량에 다시 타려고 했지만, 이번엔 차까지 따라 들어오면서 반대쪽 발목을 물고 늘어졌다. 2분이 넘도록 공격을 받고서야 손으로 입을 벌려 떼어내 피신할 수 있었다.
[연관기사] 야생 오소리에 물어뜯겨…응급수술까지
집요했던 오소리의 습격…공포의 시간
김 씨를 공격한 야생 동물은 몸길이 60~70cm가량의 오소리였다. 오소리는 공격적인 성향이지만 평소 사람 사는 곳을 피해 멀리 떨어진 곳에 살기 때문에 모습을 보기 어려운 동물이다. 오소리가 사람 사는 곳, 특히 아파트 단지에 나타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김 씨는 오소리를 떼어내다가 한쪽 손도 물려 다친 상황. 김 씨는 한 손으로 차 안에서 119신고를 하고, 양쪽 발목 출혈이 심해 지압하면서 정신이 없는 중에도 "차를 세워둔 곳이 흡연 장소라서 누군가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 오게 되면 차량 경적을 울려 위험하단 사실을 알리려 했다"고 말했다.
오소리는 계속 김 씨가 탄 차량 문에 달라붙듯 매달리면서 끈질기게 공격을 시도했다. 구급대가 도착할 때까지 수 분 동안 조용해지나 싶으면 차로 다시 다가와 수차례 '쿵쿵'거리는 오소리 때문에 고통 속에서 공포에 떨어야 했다.
신고를 받은 구급대가 도착했다. 곧장 응급조치하는 동시에 주차장 근처에서 오소리 수색에 나섰다. 구급대는 10분 만에 오소리를 발견해 포획했다. 오전 0시 58분 김 씨를 인근 병원으로 이송하고 생포한 오소리도 데려갔다. 오소리는 날이 밝은 뒤 시청 직원이 인계해 야생동물보호센터로 넘겨졌다.
피해자는 두 아이의 엄마…“아이들이었다면 큰 일 있었을 것”
사고가 발생한 당일(15일) 저녁 시간, 김 씨는 응급수술을 마치고 회복 중이었다. 이사 온 지 4개월밖에 안 된 김 씨는 "집이 너무 두렵다. 돌아가기 싫다"고 심경을 전했다.
생후 8개월, 20개월 된 두 아이의 엄마인 김 씨는 "아파트 단지 내 어린이집과 놀이터가 있고, 아이들이 사고를 당했다면 더욱 큰일이었을 것"이라며 걱정했다.
당시 김 씨는 1차로 소독과 수술을 받았고, 발목 쪽은 야생 동물이게 물린 상황이라 염증이 생길 수 있어 봉합은 마치지 않은 상태였다. 흔히 야생 동물은 광견병 바이러스를 갖고 있어 추가 전염 위험도 있는 상황. 김 씨는 집안 사정이 있어 보호자는 모친 한 명뿐인데, 모친도 김 씨의 자녀 둘을 돌보느라 김 씨를 간병하기에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아파트 단지 안에서 야생 동물에게 양다리와 한 쪽 손을 다치는 황당한 사고를 겪은 상황. 유사한 사례도 찾기 어려워 김 씨는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 나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지난 6일부터 오소리 출현 3번째…잦은 출현 이유있나?
오소리는 기본적으로 산에 굴을 파고, 사람과의 접촉을 피해 다니며 산다. 그런데 아파트 단지에 출몰해 사람을 공격하기까지 한 이유는 무엇일까. 피해를 입은 김 씨 말고도 지난 6일부터 이 일대에서 오소리 습격으로 사람이 다친 사례가 2건 더 있다.
오소리 같은 야생 동물 공격이 자주 들리는 이유는 야생 동물의 서식지를 개발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개발 구역이 늘어나면서 점차 도심에서 사람의 영역이 확장되자 살 곳을 잃게 된 야생 동물이 사람이 사는 곳에 등장한 것이다. 동물 입장에선 비단 잠잘 곳뿐만 아니라 먹이를 구할 만한 활동 반경도 침범받게 됐다.
김 씨를 공격한 오소리도 피해 차량이 들어오기 전까진 아파트 단지 내 쓰레기 분리수거장을 배회하며 먹을거리를 찾는 모습이 CCTV에 포착되기도 했다. 먹을거리를 찾아 인가로 나왔을 가능성이 점쳐진다.
전문가의 진단은 이렇다. 오소리는 족제빗과 동물로 대부분의 개체가 겨울에 임신하고 3~4월인 봄에 출산을 한다. 출산과 수유로 새끼들을 키울 시기에는 평소보다 예민하고 공격적일 가능성이 크다. 오소리가 살 곳을 잃고 돌아다니다가 민감해진 상태에서 사람을 발견하자 다치게 한 것이다.
민가를 습격하는 야생 동물로 멧돼지에 이어 오소리까지 등장했다. 무분별한 개발로 살 곳을 잃은 야생 동물을 사람의 영역으로 불러들인 사고는 아닐까. 추가 피해가 없도록, 또한 피해가 나지 않도록 개발 단계부터 피해 보상까지 관계 기관의 대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현기기자 (goldma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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