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기획] 대학생 기숙사가 혐오시설? ..주민 반발과 구청 '눈치 행정'에 발목잡힌 기숙사

정현진 2017. 4. 17.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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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비 부담줄이려 정부, 대학생 연합기숙사 추진
서울 동소문동과 응봉동 2곳, 월 20만원에 입주 가능
"매일 술판 벌어질 것" "아동 성추행 우려"
인근 주민 거센 반발에 첫 삽도 못 떠
고려대, 한양대 기숙사 신축도 2년 넘게 표류
"임대 수입 준다" 인근 임대업자 강하게 반발
허가권 쥔 구청들은 "알아서 민원 해결하라" 뒷짐만
전문가, "구청장, 표 의식말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지난 9일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 한신한진아파트 외벽에 행복 기숙사 신축을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행복 기숙사는 월 평균 20만원 정도로입주가 가능한 연합 기숙사다. 정현진 기자
지난 9일 오후 서울 동소문동 한신한진아파트 단지 후문에서 20m 쯤 떨어진 공터. 가로·세로 각각 100m가 넘은 널찍한 공터 둘레엔 3m 높이의 철제 펜스가 세워져 있었다. 펜스 너머로는 누군가 가꾸는 듯한 텃밭과 쓰레기 더미가 보였다. “이곳은 행복 기숙사 건축 부지로 무단 점유 경작물과 시설물은 철거합니다”라는 안내글도 눈에 띄었다.

국유지인 이 땅은 한국사학진흥재단과 한국장학재단이 정부의 위탁을 받아 건립을 추진 중인 대학생 연합 기숙사(행복기숙사) 부지다. 정부는 2015년 이곳에 715명을 수용할 수 있는 기숙사를 짓겠다고 밝혔다. 서울 지역 대학 20~30곳의 지방출신 학생에게 월 20만원의 저렴한 비용으로 숙소를 제공할 계획이다. 갈수록 커지는 대학생들의 주거비 부담을 덜어주자는 취지다.

하지만 인근 주민 반발이 거세다. 아파트 입구와 도로 주변엔 ‘행복 기숙사 절대 반대’‘성북구청은 각성하라’ 등의 현수막이 걸려있다. ‘OO초 새싹들이 뛰어놀 공원이 없어 주차장에서 놀다 교통사고 당해 병원에 입원 중’이라는 현수막도 보였다.

한 50대 주민은 “대학생들이 들어오면 술 먹고, 애정 행각도 벌일 텐데. 그런 모습을 초등학생들이 다 볼 거 아니겠냐"고 우려했다.

동소문동의 행복 기숙사 신축 부지. 국유지인 이곳은 23년 동안 빈 땅으로 방치돼인근 주민들이 텃밭으로 많이 이용해 왔다. 정현진 기자
이 행복기숙사는 지난 2월 성북구청으로부터 건축 허가를 받았다. 허가 신청에서 승인까지도 우여곡절이 많아 10개월이나 걸렸다. 구청 관계자는 “수차례 주민 공청회를 열어 의견을 수렴ㆍ중재하려 했으나 주민이 공청회장에서 건립반대 구호만 외치고 공청회엔 참여하지 않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고 설명했다.

일단 허가는 나왔지만, 주민 반발 탓에 착공을 못 하고 있다. 아파트 주민들로 구성된 ‘행복 기숙사 추진 반대 위원회’는 건축 허가 취소를 위해 행정소송과 가처분 소송을 내겠다고 밝혔다. 위원회 관계자는 “기숙사 부지는 단체장이 선거 때마다 입주민을 위한 공원을 지어주겠다고 약속했던 땅"이라며 "우리에겐 기숙사가 아니라 공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주민들은 또 기숙사 건립 반대 이유로 ^공사 중 소음ㆍ분진이나 안전 사고 ^대학생 유입에 따른 유흥 문화 확산 우려 등을 들었다. 사업을 추진 중인 사학진흥재단 홈페이지엔 ‘대학생에 의해 성추행, 성폭력이 발생할 수 있다’는 주민들의 글이 다수 올라있다.

이에 대해 재단측이 ^학생 안전을 위해 별도 통학로를 마련하고 ^기숙사의 세미나·체력단련실·주차장을 무료 개방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반발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박갑식 사학진흥재단 기금사업본부장은 “2014년 문을 연 홍제동 행복기숙사의 경우 건립 이후 체력단련실과 주차장을 개방해 주민들이 반기고 있고 지금까지 주민 민원이나 불미스러운 사고가 한건도 없었다"며 "성추행 우려까지 언급하며 대학생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시각은 지나치지 않냐”고 토로했다.

서울의 한 사립대 앞 건물 벽에 원룸과 하숙방을 광고하는 전단지가 빼곡하게 붙어 있다. [중앙포토]
이처럼 대학생의 주거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정부와 공공기관, 대학들이 기숙사 신축에 나서고 있지만 곳곳에서 암초에 부딪히고 있다. 주민 반대에다 건축 허가권을 쥔 구청의 ‘눈치 행정’까지 겹쳐 추진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국장학재단도 서울 성동구 응봉동의 국유지에 대학생 1000명 규모(6157㎡)의 연합 기숙사를 신축하기로 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계획 발표 이후 사실상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건축 허가가 나려면 관할 지자체인 성동구청이 서울시에 심사 신청서를 제출하고, 이후 구청이 건축 허가 여부를 심사해야 한다. 하지만 구청은 인근 아파트 주민과 임대업자들의 반대를 이유로 서울시에 심사 신청도 하지 않고 있다.

권기철 성동구청 도시관리팀장은 “주민 반대가 심해 구청으로서는 기숙사 건립을 찬성하기 힘들다"며 "장학재단이 주민을 직접 설득해 민원을 해결한 뒤에 요청하거나, 서울시와 직접 협의해야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장학재단 관계자는 “국유지에 지어야만 저렴하게 기숙사를 제공할 수 있다"며 "대체부지도 없는데 주민들은 ‘무조건 반대’만 외치고, 구청은 '나 몰라라' 하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올해 3월 경기도 고양시에 1000명 규모로 문을 연행복 기숙사. 이곳은 월 평균 15만원의 저렴한 비용으로 입주가 가능하다. [중앙포토]
대학이 자체 예산을 투입해 학교 부지 안에 기숙사를 짓는 경우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고려대는 2013년 학교 부지인 개운산 근린공원 내에 1100명 규모(2만5782㎡)의 기숙사 신축 계획을 발표했으나 4년째 진척이 없다. 관할지자체인 성북구청이 공원 조성계획을 승인해줘야 하는데, 산림 훼손 등을 우려한 주민 반대를 이유로 반려했기 때문이다.

김병완 성북구청 공원기획팀장은 “고려대에 산림 훼손에 대한 보완책을 마련해 다시 제출하라고 요구했는데, 아직까지 회신이 없어 심사가 보류된 상태”고 말했다. 그러나 고려대 관계자는 “학교로서는 이미 배드민턴∙테니스장과 체력단련실, 휴식공간 등 1만5000㎡에 달하는 주민편의시설 제공과 산책로∙등산로 정비 등의 대안을 내놓았다"며 "더 이상 내놓을게 없는데도 구청에서는 자꾸 보완책만 더 요구한다"고 하소연했다.

기숙사 신설 반대에는 학교 주변 임대업자들이 중심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고려대 안암캠퍼스 주변의 A부동산 대표는 "환경 파괴를 주된 이유로 내세우지만 실은 기숙사가 들어서면 임대 수입이 줄어들 것을 걱정하는 이들이 중심이 돼 반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또 "인근 식당이나 카페 업주 등은 기숙사가 늘어나면 영업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해 환영하지만 임대업자들의 반대가 워낙 거세 나서기도 어렵다"고 했다.

개운산 근린공원 내 고려대 기숙사 신축 부지를 표시한 지형도. 기숙사 예정 부지 바로 옆에 성북구의회가 자리잡고 있다. [사진 고려대]
2015년 540명 규모의 '6기숙사'(외국인 학생용)와 1540명 규모의 '7기숙사'(한국 학생용) 를 신축하겠다고 발표했던 한양대도 여태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의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방준효 서울시 시설계획과 팀장은 “반대 의사를 적극적으로 밝히는 민원인 상당수가 임대업자들”이라며 “구청∙대학과 함께 협의 테이블을 만들려고 해도 이들이 워낙 강경해 난감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1월엔 보다 못한 한양대 학생들이 주민 공청회에 참석해 의견을 전달하려다 제지되기도 했다. 당시 공청회에 나갔던 한양대 총학생회 간부는 “몇몇 주민이 ‘학생이 왜 발언하냐. 나가라’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지금도 원룸 공실율이 높아져 생계가 힘들다는 주장만 할 뿐 학생들의 딱한 처지는 들으려고도 하지않아 안타깝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관할 지자체가 지방선거 등 정치적인 이유에 매달려 눈치행정을 하지 말고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서울 서대문구청의 경우 2014년 이화여대가 기숙사 신축 허가를 신청하자 주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4개월 만에 이를 승인했고, 이대는 지난해 기숙사를 완공할 수 있었다. 이화여대 관계자는 "주변 임대업자들의 반대가 심했지만 다행히 서대문구청이 기숙사 신축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빨리 허가를 내줘 일이 차질없이 진행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우윤석 숭실대 행정학과 교수는 “임대업자들의 생존권 보장 요구와 대학생의 주거 부담 경감 문제는 사실 타협하거나 협상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라며 "누가 더 사회적 약자인가에 초점을 둬 관할 지자체가 좀더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판단을 내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현진 기자 Jeong.hyeon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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