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의 시민들, 지난 3년 나에게 세월호는 OO였다

하준호.여성국 2017. 4. 17. 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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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세 원소연씨 '세월호는 내 자신'
"내 가족이 겪었을지도 모를 일"
아내와 나온 61세 김승규씨 '자성'
"더 좋은 나라 위해 모두 노력해야"
세월호 참사 3주기인 16일 목포해양대 학생들이 목포신항 담장에 노란 리본을 달고 있다. [최정동 기자]
올해 들어 가장 따뜻한 봄날이던 15일과 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는 남녀노소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3년 전인 2014년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었다. 아이들의 손에 들린 노란색 풍선이, 시민들의 가방에 매달린 노란색 리본이 바람결에 움직였다.

‘3년의 시간 동안 당신에게 세월호는 무엇이었습니까?’ 중앙일보는 세월호 3주기 촛불집회를 앞둔 지난 15일 광화문광장에서 만난 시민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취재진이 미리 준비한 노란색 도화지에 시민들은 각자의 답을 적어 넣었다.

◆슬픔과 트라우마=딸 송예빈(18)양과 함께 광장을 찾은 송경원(47)씨는 ‘슬픔’이라는 단어를 앞세웠다. 그는 “당시 어른으로서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한 데 대한 책임감이 느껴졌다”고도 했다. 비슷한 또래의 자식을 둔 부모 세대로서의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서울 녹천중 1학년 학생인 강지혜(13)·서지우(13)양은 ‘아픈 기억’이라고 썼다. 이들은 세월호 사고가 났을 때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강양은 “집에서 휴대전화로 사고 뉴스를 봤다. 사람이 구조되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다는 것에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고 기억했다.

전날 서울 광화문 광장에 나온 시민들은 종이에 세월호의 의미를 썼다.송수민(23)씨.[여성국·하준호 기자]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이들도 있었다. 송수민(23·여)씨는 “세월호 참사 이후 멀리 가기 위해 비행기나 버스 등을 이용할 때면 덜컥 두려워진다”며 “내가 사고를 당해도 나라가 구해주지 않을 것 같고, 죽는다고 해도 제대로 추모받지 못할 것 같고 그냥 잊혀질 것 같아 두렵다”고 생각을 전했다.
전날 서울 광화문 광장에 나온 시민들은 종이에 세월호의 의미를 썼다.원소연(43)씨.[여성국·하준호 기자]
◆현실이자 역사적 비극=세월호 참사 자체가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도 많았다. 원소연(43·여)씨는 “세월호는 내 자신이었다”고 표현했다. 그는 “내가 겪을 수도 있는 일이었고, 내 가족, 내 조카가 겪을 수 있는 일이었다”며 “아직도 당시의 정부 대처를 생각하면 너무 화가 난다”고 덧붙였다. 마은주(45·여)씨는 ‘역사적 비극’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는 “안전 문제뿐 아니라 국가의 조직적 무능과 소통 부재, 컨트롤 타워가 유명무실함을 보여준 것”이라며 “개인적 비극이 아닌 사회적·역사적 비극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인숙(61·여)씨도 “세월호 사건은 나의 존재, 국가적 존재를 상기시킨다. 그동안의 국가적 적폐가 드러났다”고 답했다.
전날 서울 광화문 광장에 나온 시민들은 종이에 세월호의 의미를 썼다.장현준(16·사진 왼쪽)군.[여성국·하준호 기자]
◆전환점이자 희망=시민들은 세월호 사건을 슬픔이나 현실 자체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대학생 김태연(20)씨는 스스로에게 전환점을 가져온 사건으로 간직하고 있었다. 그는 “저는 물론 우리나라 전체가 안전에 대해 불감증이 심했는데 세월호 참사는 이러한 안전 이슈를 사람들에게 제대로 각인시켜 주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전날 서울 광화문 광장에 나온 시민들은 종이에 세월호의 의미를 썼다.김승규(61)씨 부부. [여성국·하준호 기자]
희망과 기대를 나타내는 이들도 만났다. 이태호 4·16연대 상임운영위원은 “세상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엉망이었지만 그래도 조금씩 바뀐다는 희망이었다”고 답했다. 그는 “희생자 가족들과 시민들의 행동으로 세월호는 인양됐고 대통령은 탄핵됐다. 아무리 세상이 실망스러워도 ‘결국 진실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는 믿음이 생겼다”고 덧붙였다. 아내와 함께 나온 김승규(61)씨는 “지금까지 나의 삶과 우리의 삶, 사회를 되돌아보고 반성했다”며 “더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나를 포함한 모든 국민이 함께 노력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여성국·하준호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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