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택시의 무덤' 대구에.. 웃는 기사들이 있다

대구/최종석 기자 2017. 4. 16.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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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대구택시협동조합에서 만난 택시 기사들. 제복을 깔끔하게 차려입고 환하게 웃는 그들에게서 고단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상기 이사장(왼쪽에서 셋째)은 “어려운 대구 택시업계에서 롤 모델이 되고 싶다”고 했다. /대구=김종호 기자

“그동안 사납금(하루 13만원)에 시달리며 부품처럼 살았습니다. 요즘은 하루하루 부자가 되는 기분입니다.”

지난 11일 대구 서구 대구택시협동조합에서 만난 기사 이규옥(61)씨는 지난해 법인 택시에서 택시 협동조합으로 직장을 옮겼다. 예전엔 하루 13~14시간씩 최소 25일을 꼬박 일하고도 월 130만원밖에 못 벌었다. 손님이 없는 날에도 매일 회사에 사납금을 입금해야 하고 노조 조합비 등 떼이는 돈도 많았기 때문이다.

협동조합에서는 하루 12시간씩 23일을 일하고도 230만원을 번다. 하루 10만원꼴로 조합에 내야 하는 돈이 있지만 손님이 적은 날엔 적게 내고 많은 날엔 많이 내면 된다. 회사 주머니에 들어갔던 각종 수입도 직접 배당받는다.

그는 조합원이 된 뒤 임대아파트 임대료를 자기 월급 통장에서 낸다. 그동안 아내가 식당일 하며 감당했던 돈이다. “첫 월급 날 ‘이제야 가장 노릇하는구나’ 눈물이 다 났습니다.”

대구 택시업계에서 ‘협동조합’ 바람이 불고 있다. 택시 기사들이 조합원이 돼 회사 운영에 참여하는 협동조합 모델은 2015년 박계동 전 국회 사무총장(한국택시협동조합 이사장) 주도로 처음 국내에 소개됐는데, 대구에서 가장 활발하게 확장되고 있다. 전국에서 경영난이 가장 심각하다는 대구 지역 택시 회사들이 협동조합으로 활로를 찾고 있는 것이다. 작년 1월 협동조합 1호, 대구택시협동조합이 처음 문을 연 이후 1년 만에 9곳으로 늘었다. 이 중엔 노조원들이 총회를 열고 스스로 협동조합으로 전환한 사례도 있다.

대구 지역은 택시 공급 과잉이 특히 심하다. 택시 1만7000대 중 35%인 6000여 대가 공급 과잉 상태로 그 비중이 전국 최고 수준이다. 대구택시운송사업조합 서덕현 전무는 “대구는 전국에서 기사들이 가장 살기 어려운 곳”이라며 “기초생활수급자나 신용불량자가 많고 택시에서 먹고 자는 기사도 상당수”라고 했다.

협동조합 1호, 대구택시협동조합은 법인 택시 회사가 협동조합으로 변신한 케이스다. 1년 전만 해도 일하겠다는 기사는 없고 보험료를 낼 여유도 없어 택시 109대가 전부 놀았다. 택시노조 대구지부장 출신인 대표 이상기(62)씨가 사주를 설득해 경영권을 넘겨받고 출자자를 모아 협동조합을 출범시켰다.

27명으로 시작한 조합은 소문을 타며 급성장했다. 넉 달 만에 109명을 채워 택시를 풀가동했고 현재는 조합원이 191명으로 늘었다. 올해는 택시를 더 늘여 300명 규모로 키울 계획이다.

11일 대구택시협동조합에서 만난 택시 기사들. 제복을 깔끔하게 차려입고 환하게 웃는 그들에게서 고단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상기 이사장(왼쪽에서 셋째)은 “어려운 대구 택시업계에서 롤 모델이 되고 싶다”고 했다. /대구=김종호 기자

협동조합은 기사들의 삶의 질을 바꿨다. 기사들이 사납금 스트레스에서 해방되면서 사고도 줄었다. 법인 택시 시절 275%였던 보험료율은 1년 만에 75%로 뚝 떨어졌다. 기사 전찬유(51)씨는 “내가 사고를 내면 조합의 보험료율이 올라가 나뿐만 아니라 동료들도 전부 손해를 보게 된다”며 “당연히 조심하게 된다”고 했다. 덕분에 택시 한 대당 월 44만원씩 들던 보험료가 이젠 16만원 수준이 됐다. 그만큼 조합은 형편이 폈고 기사들 이익도 늘었다.

소문이 나면서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 퇴직한 뒤 택시기사로 ‘제2의 인생’을 열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도 늘었다. 대기업 간부 출신인 하해진(67)씨도 그중 하나다. 하씨는 아침저녁 출퇴근 시간에 반짝 운전대를 잡고 남는 시간에 요가와 단소를 배운다. 2014년 대기업에서 퇴직한 조덕현(57)씨는 “퇴직한 뒤 굴착기 자격증을 땄지만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면서 “얼마 전 손주 돌잔치 때 운전해서 번 돈 100만원을 내놔 흐뭇했다”고 했다.

협동조합 이사장 이상기씨는 “사양 산업인 택시를 희망을 주는 산업으로, 일할 만한 일터로 바꾸는 게 목표”라고 했다. 올해는 목적지에 도착하면 차에서 내려 인사하는 서비스를 도입하고 일본으로 견학도 갈 예정이다.

하지만 걸림돌도 없지 않다. 노조원인 법인 택시 기사들이 이탈하면서 민주노총 등이 반발하고 있다. 2500만원에 달하는 출자금은 형편이 어려운 기사들에겐 높은 벽이다. 기획재정부는 “협동조합은 택시 기사들의 열악한 근로 환경을 개선하고 일자리도 늘릴 수 있는 대안”이라며 “지원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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