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 처벌? 그 전에 없애야 할 것 하나

박주현 2017. 4. 16.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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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톺아보기 ①] 가짜뉴스 규제, 표현의 자유 옥죌 수도

[오마이뉴스 글:박주현, 편집:김도균]

 아직 '가짜뉴스'에 대한 정확한 개념은 고사하고 법적인 개념도 규정되지 않은 실정이다.
ⓒ sxc
"가짜뉴스(Fake News)에 대한 법적 개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요?"

'미디어 정치와 선거' 과목을 수강하는 한 학생이 강의 도중 던진 질문이다. 적지 않게 당황했지만, 마침 나도 '가짜뉴스'에 대한 개념을 나름 정리하며 자료를 수집하는 중이었다.

대통령 선거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른 시점에서 '가짜뉴스'로 인한 피해사례를 호소하거나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게 일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주류 언론사들도 '가짜뉴스'에 대한 개념을 정확히 규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가짜뉴스가 판친다'고 호들갑을 떨 정도니 매스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하는 학생들도 궁금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아직 '가짜뉴스'에 대한 정확한 개념은 고사하고 법적인 개념도 규정되지 않은 실정이다. 문제는 가짜뉴스를 남발하는 언론사들조차도 가짜뉴스를 제대로 구별할 줄 모르고 가짜뉴스란 용어를 남발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것이 더 큰 문제를 야기할 것으로 우려되는 대목이다.

트럼프 당선 이후 '가짜뉴스' 국내 범람... 왜?

자칫 언론 스스로 표현의 자유를 옥죄는 우를 범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가짜뉴스는 지난해 치러진 미국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확산된 개념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에 가짜뉴스가 일정한 역할을 했다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가짜뉴스 논란은 일파만파로 확산됐다.

그러나 가짜뉴스가 미국 대선에 미친 영향에 대한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분석 결과는 아직 없다. 가짜뉴스의 위력 또는 실체에 대한 추정과 의심만이 난무할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 급속히 가짜뉴스에 관한 논란이 확산되고 있는 이유가 뭘까?

유사한 피해가 있다면 적법한 절차에 의해 얼마든지 대응하거나 처리하면 될 일이다. 선거철, 보수언론들의 특정 후보 밀어주기식의 편향보도를 물타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거나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댓글을 통한 선거개입 수법을 감추려는 꼼수라면 그것이 오히려 더 큰 문제라면 문제가 될 수 있다.     

현재 학계에서 논의 되고 있는 가짜뉴스의 개념은 '뉴스 형식으로 허위의 사실을 표현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좁혀지고 있는 분위기다. 여기서 뉴스의 형식을 가지는 것을 개념 요소로 보는 것이 타당한지는 논란의 여지로 남아 있다.

왜냐하면, 뉴스의 형식을 배제하고 단순히 허위사실의 보도로 좁혀서 해석하게 되면 기존의 허위사실 보도 또는 허위사실 유포와 별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그에 상응하는 법적 조치나 대응을 취하면 될 일이다.

언론사가 아닌 개인이 가짜뉴스의 주체라면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상 명예훼손죄의 책임, 불법행위로 인한 민사상 손해배상책임 또는 정보통신망법상 불법정보 유통에 대한 인터넷심의에 따른 행정상 책임을 지우면 된다.

여기에 굳이 가짜뉴스 처벌조항까지 만들어 이중 삼중으로 옥죄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구속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우를 범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가짜뉴스와 같은 유형의 정보를 생산하여 유포한 주체가 언론사라면 민·형사상 책임 외에도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에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른 정정보도 등의 구제절차를 적용할 수 있다.

'유언비어', '흑색선전' 어느 순간 '가짜뉴스'로 둔갑

가짜뉴스는 사실 그리 낯선 현상이 아니다. 과거에는 이와 유사한 현상을 '가짜뉴스'가 아니라 '유언비어'나 '흑색선전', '오보' 등과 같은 이름으로 불렀다.

가짜뉴스가 유언비어나 흑색선전과 다른 점은 언론사가 유통시키는 기사와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인터넷 등 SNS을 통해 급속히 확산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런데 가짜뉴스를 빌미로 인터넷 소통을 억압하고 규제한다면 이는 표현의 자유는 물론 민주주의를 후퇴시킬 수 있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기에 매우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 인터넷은 표현의 자유와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누구보다 주류 언론들이 앞장서서 신중한 용어선택과 사용을 해야 할 때이다. 10년 전의 뼈아픈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의 초고속성과 대중성을 기반으로 표현의 자유가 모처럼 활발해질 무렵인 지난 2008년 발생한 '미네르바 사건'은 기억하기 싫지만, 지금의 '가짜뉴스' 소동과 무관하지 않다.

표현의 자유, 언론자유지수 무력화시킨 '미네르바 사건'

당시 '미네르바'라는 필명으로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에서 '우리나라 경제 추이' 등을 예리하게 진단하는 글로 주목을 받았던 인터넷 논객(박대성씨)이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체포·구속되었다가 무죄로 석방된 사건은 어처구니없는 표현의 자유 억압사례로 꼽을 만하다.  

당시 주류 언론들은 '가짜', '짝퉁' 등의 부정적 표현과 함께 미네르바를 중범죄자 취급하듯 보도했다. 그런데 미네르바 사건은 국내 언론자유지수까지 하락시킨 요인으로 작용했다. 우리나라 언론자유지수 순위는 노무현 정부에서 최고 31위(2006년)를 기록했지만, 이명박 정부에 들어서 역대 최하위인 69위(2009년)를 기록했는데, 당시 미네르바 사건과 MBC <PD수첩> 등에 대한 검찰의 무리한 수사 등이 악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됐다. 

정부가 나서서 표현의 자유를 강제하거나 규제하는 것은 매우 신중하고 민주적이어야 한다는 교훈을 남겨주었음에도 최근 미국발 '가짜뉴스'를 빌미로 애꿎은 국민들의 표현의 자유를 또다시 위축시키지나 않을까 염려스럽다.

미국의 경우 이러한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아예 수정헌법으로 못 박아 두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수정헌법 제1조는 '미합중국 의회는 국교를 정하거나 종교 행위를 금지하는 법을 제정하여서는 아니 된다. 또 의회는 언론·출판의 자유 또는 국민들이 평화적으로 집회할 수 있는 권리와 고충 처리를 위해 정부에 청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법을 제정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수정헌법에서 표현의 자유는 보장이 원칙이며 그 제한은 예외여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국가에서 표현의 자유는 다른 기본권에 대한 '우월적 지위'를 가지므로 법적으로 '완전한 보장'이 원칙적으로 요구되고, 인정되고 있다.

미국 수정헌법과 다른 한국의 열악한 '표현의 자유' 환경

우리나라의 경우 표현의 자유는 헌법 제21조의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헌법은 제21조 1항에서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했지만, 여타의 조항에서는 제한적인 조건을 내세워 금지하거나 강제하는 모순이 있다는 점에서 미국의 수정헌법과는 차이가 있다.

이 외에도 최근 우리나라에서 가짜뉴스에 대한 법적 규정과 처벌 대상 등에 관한 논의는 가짜뉴스를 부추기는 여론의 특수성과 무관하지 않다.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부르는 선거와 관련한 미디어의 보도가 객관성과 공정성을 벗어나 편향적으로 변질됐을 때 가짜뉴스보다 더 큰 피해를 가져다준다.

주류 언론사들, 그중에서도 보수세력을 대변하는 보수신문과 권력에 길들여진 공영방송사들의 정파성과 선거철만 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편향적 프레임에서 기인한 언론의 낮은 신뢰도가 가짜뉴스를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

여기에 정부와 국가기관의 선거개입 논란도 한몫한다. 지난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국가정보원이 국민을 대상으로 하여 댓글 공작을 펼치며 선거에 개입하였던 일이 대표적인 사례다. 최근 신연희 강남구청장이 공유한 비방성 댓글 또한 30년 동안 국정원에서 근무한 사람이 만든 것이란 점도 유사한 사례로 들 수 있다.

결국, 이러한 국내 특수환경은 가짜뉴스를 확산시키는 것과 직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환경을 개선하고 경계해야 하는 것이 더 우선이다. 더구나 대선 분위기가 달아오르면서 가짜뉴스가 무분별하게 쓰이고 있고, '우리 편과 반대되는 뉴스는 다 가짜 뉴스'라는 인식까지 확산되고 있는 마당이다.

따라서 언론사들은 가짜뉴스의 대책 없는 논란을 부추기는 데 급급하지 말고 공정하고 유용한 선거보도 외에 팩트체크 기능을 한층 강화해야 한다. 아울러 국가는 선거에 개입하거나 여론을 조작하는 구태를 더 이상 범하지 않아야 된다.  

제아무리 가짜뉴스가 판을 친다 한들 어둠은 결코 빛을 이길 수 없고,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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