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3주기] "영인아, 축구화 사다놨다"..미수습자 9명의 사연

지정운 기자 2017. 4. 16.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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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미수습자 9명.(4·16연대 제공) © News1 지정운 기자

(목포=뉴스1) 지정운 기자 = 차디찬 바닷물 속에 가라앉아 있던 세월호는 극적으로 인양됐고, 목포신항만에 거대한 몸뚱이를 옆으로 하고 누워 있다.

인양에 성공해 뭍으로 올라온 세월호를 바라보며 누구보다 애타는 이들이 있다. 바로 9명의 미수습자 가족이다. 이들은 3년을 하루같이 가족을 만나기 위해 힘든 시간을 버텨왔다.

가족들은 "저 배 안에 분명 있을 것"이라며 조속한 수습을 요구하고 있다. 그토록 보고싶은 미수습자 9명의 이야기를 전한다.

◇회계공무원이 꿈인 조은화 회계 담당 공무원이 꿈인 은화(단원고 2학년 1반)는 부모에게 다정하고 속 깊은 딸이었다. 아픈 오빠를 보면서 일찍 철이 들어 엄마 걱정시키는 일을 안했다. 성적도 빼어나 전교 1등을 도맡아 할 정도였다.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엔 비용이 많다고 미안해 할 정도였다고 한다. 은화의 책상에는 누군가가 기다리는 마음을 담아 '너 진짜 계속 결석할 거니? 제발 은화야'라고 적힌 쪽지가 있다. 은화는 '배가 45도 기울었어'라는 문자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전한 후 소식이 없다.

◇웃음을 잃지 않았던 허다윤 힘들어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착한 딸이었다. 다윤이(단원고 2학년 2반)는 수학여행 가기 며칠 전 활짝 웃으며 가족 사진을 찍었다. 4월16일, 가족사진은 도착했는데 다윤이는 아직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어려운 가정 형편을 알기에 용돈을 달라거나 무언가 사달라고 조른 적이 없는 착한 딸이었다. 희귀병을 앓는 엄마를 걱정하던 다윤이는 유치원 선생님이 꿈이었고, 교회에서 봉사활동이 적극적이었다. 어릴 적 물놀이 사고로 물을 무서워했다고 한다.

◇음악을 좋아했던 남현철 음악을 좋아했던 현철(단원고 2학년 6반)은 가수 신용재가 부른 '사랑하는 그대여'의 노랫말을 쓴 작사가다. 팽목항에는 현철이의 손길을 기다리는 기타가 바람에 노래를 부르고 있다. 기타에는 현철이와 영원히 살아가고픈 부모의 마음이 담긴 문구가 씌여있다. 부모는 4대 독자인 현철이를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한다. '사랑하는 그대여'의 가사에는 부모를 위로하듯 '항상 마음만은 그대 곁에 있어요'가 있다.

◇스포츠를 좋아했던 박영인 영인(단원고 2학년 6반)은 누구보다 스포츠를 좋아하고 달리기도 잘하는, 체대 진학이 꿈인 학생이지만 아직 달려나오지 못하고 있다. 영인이의 어머니는 아들이 갖고 싶어하는 것은 모두 다 사줬지만 유독 축구화만큼은 사주지 않았다고 한다. 팽목항에는 그 아들이 갖고 싶어했던 축구화가 놓여 있다. 그 속에 어머니의 미안한 마음이 담겨 있다. 어머니는 오늘도 아들이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다.

◇자신의 구명조끼 벗어준 양승진 교사 자신의 구명조끼 조차 벗어 학생들에게 주고 "밖으로 나오라"고 외치며 배안으로 다시 들어간 단원고 교사 양승진. 교직 30년 경력의 그는 학교 뒷산에 사과나무를 심는 사람이었다. 수학여행을 가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과자를 사먹으라며 돈을 쥐어주고 웃는 모습이 CCTV영상에 마지막으로 남겨졌다. 양 교사의 아내는 남편을 정 많고 따듯한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다.

◇수영을 잘했던 고창석 교사 고창석 체육담당 교사는 머리가 고슴도치럼 짧아서 '또치샘'으로 불렸다. 수영을 아주 잘했지만 아직도 헤엄쳐 나오지 못하고 있다. 고 교사의 아내는 남편이 대학생 때 바다에서 인명구조도 했고 수영을 잘했기 때문에 사고 당시에도 제자들을 구하느라 가장 늦게 나왔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에겐 교사인 아내와 어린 두 아들이 있다. 아내는 미안해 하지 말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라고 오늘도 기원하고 있다.

◇권재근씨와 아들 혁규군 권재근씨는 아내와 두 자녀를 데리고 감귤농사를 지으러 제주도로 이사를 가던 중이었다. 가족 중 혁규의 여동생 지연이만 홀로 살아남았다. 베트남이 고향인 엄마 한윤지씨(베트남 이름 판응옥타인)는 숨진 채 바다에서 올라왔고, 동생에게 구명조끼를 벗어 건네 준 여섯살 혁규는 아빠 재근씨와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다. 오늘도 막내 지연이는 아빠가 나타나 무등을 태워줄거라 믿고 있고, 재근씨의 형이 3년째 동생과 조카를 기다리는 중이다.

◇제주서 제2의 인생 꿈꿨던 이영숙씨 이영숙씨는 남편과 사별 후 생계를 위해 아들과 떨어져 살아야 했다. 그래서 '아들과 함께 살고싶다'가 가장 바람이었다. 이씨의 외아들은 사춘기 시절 떨어져 사는 것이 싫어서 그를 '엄마'라고 부르지 않다가 몇 년 전부터 다시 엄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제주도에 살고 싶다는 아들과 함께 살기 위해 제주에 집을 구했고, 이날은 이삿짐을 옮기던 중이었다. 아들은 엄마가 돌아오기를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

jwj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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