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자의 현장人] "촛불 그리고 세월호, 나에게 OOO이었다".."여러분은?"

김경호 2017. 4. 16.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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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의 그 날.

세월호 참사 3주기를 하루 앞둔 15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 노란 세월호가 광화문 광장을 지키고 있다.

2014년 4월 16일. 그날 후 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세월호는 온 국민의 가슴 깊이 잠겨있었다. 서서히 바다 위로 떠오른 세월호 선체 모습은 부식되고 누더기 된 모습으로 얼룩덜룩 변해있었다. 본래 모습을 잃은 세월호의 모습을 볼 때 ‘절망’, ‘분노’, ‘슬픔’, ‘희망’,‘눈물’,‘안타까움’이었다.

“엄마 말 못할까 봐. 문자 보내놓는다. 사랑한다” 그날의 마지막 문자.

‘자식을 잃어버린 그 심정은 누가 알까?’ 세월호 참사 당일 한 지상파에서는 단원고 학생 338명이 전원 구조됐다는 소식을 전했다. 하지만 ‘충격적인’ 오보였다. 차디찬 저 깊은 바닷속에서 잠든 자식을 생각하면 단 한 시간이라도 편할 수 없다. ‘아침마다 눈 띄면 볼 수 있던 착한 내 아이.’ 그날만 생각하는 부모들은 오늘도 한 맺힌 눈물을 흘린다. “살려 주세요”,“엄마 아빠, 보고 싶어요”,“무서워요.” 아이들의 비명이 여전히 귓가에 맴돈다. 차가운 바닷물이 서서히 차오르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두려움에 떨었던 아이를 생각하면 "내가 죽었으면…. 내가 대신 죽었어야 했는데…."라며 마음속으로 버릇처럼 되뇌곤 한다.

세월호 참사 3주기를 하루 앞둔 15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에서 '광화문 노란 리본 공작소'가 주최한 '기억과 다짐 행동'행사에서 참가자들이 침묵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참가자들은 검은 마스크를 쓴 채 미수습자 9명의 이름이 적힌 현수막을 들고 있다.

촛불 그리고 세월호. 지난 2014년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 3주기를 맞아 15일 밤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이 어둠을 밝혔다. 오직 ‘국민의 힘’으로 촛불은 뜨겁게 타올랐다. ‘촛불집회’는 어린아이 할 것 없이 유모차를 끌고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들까지 비폭력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그동안 집회는 폭력과 대립, 그리고 갈등의 상징이었다. 2017년 4월 15일 마지막 대규모 촛불집회를 통해 모든 국민이 한 단계 성장한 건 분명한 사실이다. 광화문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저마다 다른 시각으로 세월호를 생각하지만, 그날의 가슴 아픈 상처를 보듬으며 눈물을 함께 흘렸다.

이날 대학로 마로니 공원과 광화문 광장을 다니며 10대부터 70대까지 각계각층의 시민들을 만나 “촛불 그리고 세월호, 나에게 OOO이었다” 공통적인 질문을 던져 보았다.

-세월호, ‘어떻게 표현해야 해야!’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만난 남 모(18)양은 “단원고 언니, 오빠가 18세 나이고 삶이 거기까지 허락되지 못한 것이 같아서 많이 울었어요.” 울먹이면서 답했다. 함께 세월호 추모 촛불집회에 참석한 친구 이 모(18)양은 “저는 절대 일어나서도 안 되고 말도 안 되는 참사입니다. 세월호는 나라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생각하면 화가 나고 나라에서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너무 허무합니다.” 라면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세월호, 나에게는 ‘분노’ 다
대학로 마로니 공원에서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앳된 모습을 한 홍익대 도은채(20)양을 만나 고개를 살짝 숙인 도 양은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요. 너무 서럽고, 안타깝고 그래서 슬펐어요. 이대로 끝나면 안 돼요. 이제 우리도 대학생이고 어른입니다. 저희가 어떻게 하냐 따라서 또!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는 것이 결정된다고 생각합니다. 세월호 참사가 다시는 반복되면 안 되고 이런 일들을 통해서 배워가야 합니다. 저는 그래서 이런 집회가 있으면 빠지지 않아요.”라며 떨리는 목소리도 말했다.

대학생들로 구성된 '세월호 3주기 대학생준비위원회'가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앞에서 집회를 개최하고 있다.

-세월호, 나에게 ‘서글픔’이다
대학로 공연장에서 만난 연세대 허 모(23) 군을 만나 세월호의 생각을 들었다. 허 군은 짧은 머리 스타일을 한 채 당당하고 또렷한 목소리로 “세월호는 저에게 큰 영향을 끼쳤어요. 참사 이전만 해도 사회 문제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세월호 참사 후 사회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됐습니다. 저와 비슷한 또래도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이가 무섭고 끔찍한 일인가. 그 아이들이 왜! 우리 곁을 떠났어야 했나? 만날 수도 있었던 아이들인데… 배는 침몰 할 수 있지만 구해내지 못한 것이 분노가 치민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세월호, 나에게 ‘분노’와 ‘희망’이다

허 군과 함께 대학로를 찾은 연세대 강 모(21)양은 “국민 생명보다 이윤에 더 중요시하는 그런 체제인 것 같다. 세월호 진상규명은 단순히 의혹을 푸는 것이 아니라 문제점을 해결하여 하는 출발점인 것 같아요. 대학생들도 사회에 관심을 두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세월호는 대학생들이 풀어가야 할 숙제가 같아요.”라고 밝혔다.
 
-세월호, 나에게 ‘아픔’이다
광화문 광장에서 만난 정 씨(37)는 교사이자 두 아이의 엄마였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보며 질문에 대답했다. “저희 일이죠. 저희가 거기에 있을 수도 있었던 거죠. 그러므로 반듯이 안전한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내 아이의 일이고 부모의 감정이 느껴집니다. 세월호 참사는 모두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죠. 생각할수록 눈물이 나네요.” 라며 눈가에 고인 눈물을 흘렸다. 정 씨의 남편 이 씨(43)는 “너무 아파서 삶에 기준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반복이 되어 왔는데 더 반복되면 안 되는 상황까지 왔던 거죠. ‘탄핵’처럼. 세월호 참사는 다시는 반복되면 안 된다.” 안타까운 목소리로 질문에 대답했다. 

-세월호 나에게 ‘지워지지 않는 상처, 지우기 싫은 상처’이다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 만난 박 씨(40·여)는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퍼포먼스에 참가했다. “다들 비슷한 생각 같은데 가슴 아픈 일이잖아요. 아직도 정리되지 않고 그때 감정을 풀지 못하고 있습니다. 언제 가는 잊히겠죠? 사람의 책임. 더 행동해야 할 것 같아요.” 희생자 이름이 적혀진 검은색 천을 들고 대답했다. 

세월호 참사 3주기를 하루 앞둔 15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 노란 세월호가 광화문 광장에서 검은 마스크 쓴 한 시민이 미수습자 9명의 이름이 적힌 카드를 들고 있다.

-세월호, ‘대한민국의 처한 모습’이다
10대 아들과 함께 촛불집회에 참석한 조 씨(50·여)는 “대한민국 현실을 다 설명하는 것 같다. 사고는 어디에서든 일어날 수 있지만, 이것을 미리 방지하지 않았다는 것. 방지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히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다는 것. 빠르게 대처하지 못했던 점. 수습하지 못했던 점. 아무도 국민을 지켜주지 않았다는 점. 지금까지 3년까지 끌고 온 점. 정치하는 사람들이 국민을 너무 우습게 보지 않나 그래서 이런 일어나지 않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한이라도 덜 쌓이게 원하는 방향으로 해결됐으면 좋겠다.” 말했다.

-세월호, ‘세상을 바꿔 놓았다’
남편과 함께 촛불집회에 참석한 성 씨(54)는 “세월호가 정말 아픈 일이지만 우리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꾼 사건이라고 생각해요. 국민이 이렇게 분노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뜻을 모았다고 보입니다.” 남편 한 씨(60)는 “가슴 아픈 세상을 바꿔 놓았죠. 세월호 아이들이 우리 큰딸하고 동갑입니다. 그래서 남의 일이라고 생각 들지 않아요. 내 딸도 저럴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세월호만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고 늘 같이해야겠다. 생각이 듭니다.” 말했다.

세월호 참사 3주기를 하루 앞둔 15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이 어둠을 밝히고 있다.

-세월호, ‘모두에게 진 빚’이다
흰 셔츠에 회색 정장은 입고 촛불집회에 참석한 김 씨(74·남)는 “눈물 나는 이야기죠. 저희가 잘못해서 꽃 같은 아이들을…. 저희가 일차적인 책임이다. 우리가 모두 죄인이다. 진실을 밝혀서 제2의 세월호가 없도록 해야 한다. 모두에게 진 빚이다.”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촛불집회'는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광장으로 나온 아이. 촛불 아래 하나 된 시민들. 10대부터 70대까지 정치에 참여하고 서로 의견을 나누고 토론하고 광장에 모이는 모든 행위가 표현의 수단과 소통의 공간으로 변했다.

글·사진=김경호 기자 stillcu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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