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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이매진] 천년 사랑 품고 걷는 정읍사 오솔길

송고시간2017-04-15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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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연합뉴스) 이창호 기자 = “백제가요 정읍사는 한 여인이 사랑하는 임을 기다리다 망부석이 되었다는 슬픈 사랑 이야기다. 기다림 때문에 죽을 수 있다는 것은 슬프지만 아름답다. 기다림이란 절망 속에 피어나는 희망의 꽃과 같다. 어쩌면 인내이고 희생이며 용서이고 그리움이며 사랑이 아닌가 한다. 그러므로 기다릴 줄 아는 사람만이 사랑할 수가 있다. 사랑받을 수 있다.” - 정읍사 설화소설 ‘2천 년의 기다림’ 중에서

부부나 사랑하는 연인끼리 다정하게 걷기 좋은 '백제가요 정읍사 오솔길' [사진/전수영 기자]

부부나 사랑하는 연인끼리 다정하게 걷기 좋은 '백제가요 정읍사 오솔길' [사진/전수영 기자]

남편에 대한 아내의 사랑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정읍사(井邑詞)’는 현존하는 유일한 백제가요다. 정읍사는 정읍현에 사는 한 아낙네가 행상을 나간 남편이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자, 마을 어귀에서 남편의 무사안녕을 달님에게 빌고 또 빌었다. 여인은 돌아오지 않는 임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쳐 끝내 망부석이 됐고, 사부가(思夫歌)를 남겼다. 오랫동안 구전되어 오다 조선 성종 때 ‘악학궤범’에 한글로 기록한 것이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달하 노피곰 도다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어긔야 어강됴리/아으 다롱디리/ 져재 녀러신고요/ 어긔야 즌 대랄 드대욜세라/ 어그야 어강됴리/ 어느이다 노코시라/ 어긔야 내 가논 대 졈그랄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정읍사문화공원 내 망부상

정읍사문화공원 내 망부상

지금도 치마저고리를 입고 쪽을 진 머리의 망부상이 아양산(娥洋山) 중턱의 정읍사문화공원에서 두 손을 마주 잡고 정읍 시가지를 바라보며 서 있다. 스마트폰으로 사랑을 전하고 페이스북으로 사랑이 끝났음을 통고하는 요즘, 백제 여인의 그리움과 애절함은 남녀 간 만남과 헤어짐의 의미를 되짚어 보게 한다.

천 년 사랑이 살아 숨 쉬는 스토리와 테마가 있는 ‘백제가요 정읍사 오솔길’은 총연장 17.1㎞로, 모두 3가지 코스로 구성돼 있다. 제1코스는 정읍 9경의 하나인 정읍사문화공원을 출발해 월령마을을 거쳐 내장산문화광장까지 이어지는 6.4㎞로, 3시간 정도 소요된다. 만남, 환희, 고뇌, 언약, 실천, 탄탄대로, 지킴 등 7가지 주제로 스토리텔링한 숲길이다. 2코스는 내장산문화광장에서 내장호 수변에 설치된 나무 산책로와 황톳길을 따라 걷는 길로, 총 4.5km(1시간 30분) 구간이다. 3코스는 내장산문화광장에서 정읍사문화공원으로 이어지는 6.2km(30분)의 자전거길이다.

안수용 사단법인 둘레 이사장은 “백제가요 정읍사 오솔길은 2011년 행정안전부의 ‘친환경생활공간조성’ 녹색길 공모사업에 선정돼 그해 12월 자연 친화적 명품길로 개통됐다”며 “금실 좋은 부부나 사랑하는 연인끼리 함께 거닐기 좋은, 소나무 숲과 호수가 어우러진 호젓한 숲길”이라고 말한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흔히 만날 수 있었던 호젓한 숲길

어린 시절 시골에서 흔히 만날 수 있었던 호젓한 숲길

◇ 느릿느릿 걷다 보면 시름과 스트레스 사라져

‘백제가요 정읍사 오솔길’ 제1코스의 시발점은 정읍사문화공원이다. 망부상과 정읍사 노래비를 둘러보고 난 뒤 공원을 빠져나와 아양동 고개를 넘는다. 아양동 고개는 아요현, 장구넘이재, 서낭당 고개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고, 오른편에 있는 아양산(峨洋山)은 코끼리를 닮았다고 해서 ‘코끼리산’, 아이들을 묻던 아장(兒葬)터가 있다 하여 애산(哀山)이라고도 부른다. 고개를 조금 오르다 전북과학대학교 정문 앞에서 횡단보도를 건넌 뒤 정읍농악전수관을 지나면 ‘백제가요 정읍사 오솔길’ 안내판과 이정표가 산길로 인도한다.

여기서부터 남사면 전망대까지의 ‘만남의 길’이 시작된다. 오르막으로 시작되는 이 구간은 어린 시절 시골에서 흔히 만날 수 있던 오솔길로 호젓한 흙길이다. 흙길 오솔길이어서 걷기도 좋고 기분도 상쾌하다. 청량한 공기를 벗 삼아 1km 정도 더 가면 남사면 조망대다. 조망대에 서면 삼성산·입암산·방장산 등 노령산맥의 줄기가 시원하게 뻗어 있다. 산봉우리 사이로 새재(鳥嶺)와 갈재(蘆嶺)가 보이는데, 이곳은 예로부터 전북과 전남을 잇는 주요한 고갯길이었다. 안수용 둘레 이사장은 “입암산에는 입암산성이 있어 군사적 요충지 역할을 했고, 노령고개 아랫동네인 입암면 군령마을은 조선 시대 육상교통로인 삼남대로를 지키기 위해 군대를 주둔시켰던 곳”이라고 얘기한다.

이어지는 2구간 ‘환희의 길’은 사랑을 확인하는 길이다. 흙길은 부드러운 능선 숲길을 따라 이어지고 북사면 조망대와 만난다. 이곳에서는 호남정맥의 고당산과 망대봉, 칠보산이 바라보인다. 칠보산은 정읍의 진산이며 높이에 비해 골이 깊어 임진왜란과 동학농민혁명 때 피난처로 이용됐고,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 루트이기도 했다. 특히 금복마을의 옥녀봉은 풍수지리상 ‘옥녀탄금형’에 해당하는데 옥녀봉에서 거문고를 연주하면 맞은 편 종산에서 ‘둥둥’ 쇠북을 울려 화답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능선길에 바람이 불면 마치 천년 세월을 건너 임을 그리워하던 백제 여인의 흐느낌이 북소리로 변한 듯 마음속 심연을 적셔온다.

두꺼비 형상을 닮은 두꺼비 바위

두꺼비 형상을 닮은 두꺼비 바위

숲 중간중간 시야가 트인 곳에 주변의 풍광과 푸른 하늘을 보여준다. 길섶 나무들은 제각기 다른 얼굴로 부서지는 햇살을 맞으며 몸을 흔든다. 솔향기 그윽한 숲길을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걷다 보면 아름드리 소나무 숲이 일품인 쉼터가 나온다. 잠시 숨을 고르고 3구간 ‘고뇌의 길’로 들어선다. 오르막이 전혀 없던 흙길은 가파른 고갯길로 바뀐다. 이제 산보가 아닌 등산이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걷다 보면 두꺼비 모양의 바위를 만난다. 정읍사람들은 여자들이 시집갈 때 머리를 올린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서 ‘머리얹은 바위’라고도 부른다. 생긴 모양에 따라 ‘가마 바우’, ‘인력거 바우’ 등으로도 불리는데, 이곳에서 빌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전해진다. 그래서인지 두꺼비바위 옆에는 연인의 염원을 담은 자물쇠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잠시 땀을 식히고 발걸음을 옮기면 새롭게 사랑을 맹세하는 ‘언약의 길’로 들어선다. 소나무 사이로 햇살이 일렁이는 언약의 길을 지나면 ‘실천의 길’이다. 이 구간의 성벽길은 한 사람이 조붓하게 걸어갈 수 있는 좁은 길로 사랑하는 사람을 업고서 가는 길이다. 다행히 경사가 완만해 그리 힘들지 않은 편이다.

정읍사문화공원으로부터 3.78㎞ 떨어진 수통목갈림길 삼거리에서 시작되는 ‘탄탄대로 길’도 산보하듯 걷기에 좋다. 소음이 없어서 고즈넉하고, 나무 끝에 매달린 하늘이 푸르고 아름답다. 길 중간에 월영마을 갈림길을 만난다. 월영습지보호지역 안내판이 시선을 끈다. 월영습지는 2014년 7월 ‘습지보전법’에 따라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저층형 산지습지로 과거에 주로 농경지로 사용되었던 폐경지가 자연 천이에 의해 복원된 지역이다. 월영습지에는 구렁이, 수달, 말똥가리, 수리부엉이, 수달 등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종을 포함한 다양한 야생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평지와 산지의 특성을 모두 가지는 독특한 생태계를 형성하여 보전 가치가 매우 큰 곳으로 현재 생태탐방지로 조성 중이다. 거닐고 싶은 숲길에 자연 생태가 살아 있는 생태 숲길이 더해지면 찾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대나무 일종인 신우대 숲길

대나무 일종인 신우대 숲길

월영습지를 뒤로 하고 내장산문화광장 방향으로 직진하면 내장터널 갈림길에 닿는다. 이곳에서 왼쪽 길로 내려서면 늘 푸른 소나무처럼 변함없는 사랑을 의미하는 7구간 ‘지킴의 길’로 이어진다. ‘정읍사문화공원 6.28㎞ 성불암 0.67㎞ 월영마을 신우대숲 0.67㎞’라는 이정표에서 왼쪽 월영마을로 내려간다. 대나무의 일종인 신우대숲을 지난다. 신우대를 스치는 한줄기 바람소리는 도심에서의 인위적인 소음으로 무뎌진 청각을 부드럽게 되살린다. 신우대는 대나무의 일종으로 화살에 많이 사용되던 참대로 전라도 방언이다.

200여m에 달하는 신우대숲을 빠져나오자 닭소리가 들린다. 한 걸음 한 걸음 월영마을로 향한다. 내려가는 길은 솔잎이 수북이 쌓인 흙길이다. 월영마을에서 시멘트 길을 따라가다 정읍천을 가로지르는 월영교를 넘으면 1코스의 종착지이자 2코스의 시발점인 내장산문화광장이다. 광장의 자전거 대여소에서 1인승에서 6인승까지 빌려 탈 수 있는데 비용은 1시간에 1천원(1인승 기준)이다. 정읍사문화공원까지 자전거로 30분 정도 걸리는데 공원의 자전거 대여소에 반납하면 된다.

방장산 자연휴양림 '숲속의 집'과 하늘덱

방장산 자연휴양림 '숲속의 집'과 하늘덱

◇ 호젓한 하룻밤 보낼 수 있는 방장산 휴양림

방장산 자연휴양림은 방장산(方丈山·743m)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호남고속도로 백양사 IC로 나오면 정면에 주유소가 있는 T자형 삼거리에서 좌회전해 고창의 석정온천 방향으로 894번 지방도를 따라가면 6㎞ 지점에 방장산 자연휴양림 안내판이 보인다. 여기서 우회전해 60m 정도 가면 휴양림 안내소에 닿는다. 백양사 IC에서 10분 정도 소요되는데 서해안고속도로 고창 IC에서는 15분 정도 걸린다.

관리사무소 왼쪽 길로 접어들면 활엽수가 뿜어내는 맑은 공기에 가슴부터 탁 트인다. 고로쇠나무, 신갈나무, 굴참나무, 때죽나무 등 참나무류와 편백, 낙엽송, 소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찬 숲 속에는 숲속의 집, 산림문화휴양관, 세미나실이 들어서 있다. 2000년 개장했지만, 숙박시설은 꾸준히 개보수해 깔끔한 편이다. 자연휴양림 맨 위쪽에 위치한 통나무집 청운동과 신선동은 전망이 좋고 주차공간도 넓다. 진달래·민들레·개나리 숙박시설 앞에는 하늘덱이 조성돼 있고, 그 중앙의 전망대에 서면 자연휴양림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방장산 자연휴양림 내 숲속공예마을

방장산 자연휴양림 내 숲속공예마을

관리사무소 오른쪽 길에는 숲속공예마을과 에코어드벤처가 자리 잡고 있다. 우드버닝, 생활공예, 목공예, 편백공예 등 4동으로 구성된 숲속공예마을은 마치 동화 속 마을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다. 이곳에서 목재를 이용해 문패, 나무목걸이, 편백비누 등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다. 2012년 국립자연휴양림 최초로 조성된 에코어드벤처는 나무와 나무 사이를 와이어, 목재구조물, 로프 등으로 연결해 땅을 밟지 않고 나무와 나무 사이를 이동하는 시설이다. 총 11개 코스로 구성돼 있는데, 이용 전에 반드시 안전교육을 받아야 한다. 유료(4천500원)다. 신장 110㎝ 이상, 몸무게 100㎏ 이하여야 짜릿한 스릴을 느낄 수 있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7년 4월호 [걷고 싶은 길] 코너에 실린 글입니다.

chang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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