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한때 "세월호 지겹다" 외면했을까

CBS노컷뉴스 이진욱 기자 2017. 4. 15.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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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3년의 기억 ①-ⓑ] '무력감'에 허우적대던 국민의 초상

깊게 팬 상처를 지닌 세월호가 참사 3주기를 앞두고서야 뭍으로 올라왔습니다. 한국 사회의 온갖 모순을 떠안은 세월호의 진실을 규명할 수 있는 새 국면도 열렸습니다. 우리 앞에 놓인, 더 나은 세상으로 이어질 기억과 성찰의 길을 CBS노컷뉴스가 짚어봤습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자식 잃은 부모 물어뜯는 저들은 누구인가
①-ⓑ 왜 우리는 한때 "세월호 지겹다" 외면했을까
<계속>

지난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대형 노란리본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세월호가 인영되면서 진실규명 요구는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한국 사회는 한때 세월호의 아픔을 외면하고, 급기야 혐오하도록 강권하는 분위기에 휩싸인 바 있다. "그만하자" "지겹다"는 말들이 전염병처럼 번졌다. 왜였을까. 분단과 독재의 피땀으로 얼룩진 근현대사를 관통하며, 켜켜이 쌓여 온 '무력감'에 그 실마리가 있었다.

정태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는 "세월호 참사를 대하는 정부·정치권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과 엄청난 고통 속에 있는 유가족들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세월호 사고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오판이다. 예를 들어 '세월호 인양에 수천 억 원이 드는데, 그 몇 명 살리자고 들어올리냐'는 목소리가 정치권을 중심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자식 잃은 유족들 입장에서, 그 고통에 공감하는 국민들 입장에서 이를 납득할 수 있겠나. 죽음에 대한 예의 지키기, 그것이 우리의 문화다"

정 교수는 "근대 이후 한국 사회는 세월호 사고와 같은 부정적인 사건에 계속 노출돼 왔다"며 "이것이 반복되는 와중에 가능하면 빨리 덮어 버리거나 외면하고 잊으려는 경향이 강해졌다"고 진단했다.

"불안정한 한국 사회에 발빠르게 적응하기 위한 효과적인 심리 전략인 셈이다. 사건의 원인을 제대로 규명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합리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상식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그러한 심리가 잘 작동되지 않는다. 그만큼 안정되지 못한 사회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세월호 사건과 같은 큰 일이 언제 어디서 또다시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은 국민 모두에게 어마어마한 불안을 심어준다."

"실제 한국 사람들은 세월호처럼 큰 사건에 대단히 무기력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소위 '멘붕'에 빠지는 것이다. 근대 이후 큰 사고가 나면 책임자 문책하고, 대책을 마련했다고 하는데 똑같은 사건이 계속 벌어진다. 이것이 반복되면 사람들은 사회를 어떻게 바꿔야 할지 모르는 무력감에 빠진다. '노력해도 안 바뀐다' '우리나라는 원래 그래'라는 무기력한 정서가 굳어질 경우 사람들은 '망각', 그러니까 잊는 것을 선택한다. 그것이 스트레스로부터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는 정서적인 전략이니까. 그렇게 '나와 직접 관련된 것에만 관심을 기울이면 된다'는 인식이 자리잡아 온 것이다."

그런데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지난 3년 동안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싸움을 이어오면서 한국 사회를 변화시킬 중요한 국면을 빚어냈다. 그것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촉발된 촛불항쟁으로 불타올랐다.

심리학자 김태형(심리연구소 함께) 소장은 "무력감에 빠진 사회의 구성원들은 변화가 잘 이뤄지지 않으면 쉽게 포기하기 마련"이라면서도 "세월호 가족들이 끈질기게 싸우는 모습에 사람들은 이를 쉽게 외면할 수 없었다"고 분석했다.

"골치아픈 일을 외면하고 돌아서려 해도 누군가 저쪽에서 계속 외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선구자 효과'다. 모두가 동조하고 침묵하는 것과 한 명이라도 일어서서 반대하는 것은 효과가 엄청나게 다르다. 세월호 가족들이 어려운 조건에서도 선구자 역할을 해준 셈이다."

김 소장은 "한국 사회는 박근혜 탄핵과 구속으로 무기력에서 상당부분 벗어났는데, 인양된 세월호로 진상규명이 탄력을 받으면 무기력에서 벗어나려는 의지가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다"며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진상규명을 방해하려는 세력이 눈에 불을 켜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이제는 세월호 가족들을 쉬게 해 드려야 하지 않을까. 진상규명이 되고 사회가 바뀌어서 마음의 평화를 찾고, 이제는 자신을 돌볼 수 있도록 우리가 싸움을 대신해야 하지 않을까"라며 "국민들이 그 뜻을 이어받아 세상을 바꾸는 데 나서야 할 때"라고 역설했다.

◇ "철저한 진상규명, 한국사회 고질병 '무력감' 탈출구"

세월호가 전남 목포신항에 입항한지 사흘째인 지난 2일 오후, 목포신항을 찾은 추모객들이 노란리본 등을 달며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세월호 진상규명은 피해 당사자, 사회적 약자를 외면하고, 더 나아가 그들을 향한 비뚤어진 혐오를 낳아 온 한국 사회를 바꿀 '분수령'이라는 데 전문가들은 의견을 같이했다.

정태연 교수는 "우리 사회에 큰 상처를 안긴 세월호 사건을 통해 무엇인가를 배워야 한다면, 먼저 이러한 사고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작동시키려는 의지가 중요하다"며 "그러한 시스템이 작동해 예전처럼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반복되지 않는다는 점이 현실적으로 검증돼야 한다. 그래야만 그것이 하나의 교훈이 되는것"이라고 설명했다.

"엄청난 절망감 속에서 심리적으로 대단히 힘들어하는 세월호 가족들을 향해 지식사회, 지역사회가 공감대를 넓혀가야만 한다. 그것이 첫걸음이다. 그들이 자기 안에 쌓인 것을 얘기하고 나눌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만 한다. 사람은 슬픔과 아픔을 나누고 공유하면서 세상을 다시 보는 눈을 기른다. 결국 상실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그 안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다. '이런 정치인을 뽑아야 한다' '올바른 사회는 이런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식으로 사회를 이해하는 방식을 달리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성찰'이다."

세월호 참사는 그간 쌓여 온 한국 사회의 체제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3년 전 세월호 참사는 일종의 집단 학살로 다가왔다"며 "그것이 추상적이거나 사후적으로 다가온 것이 아니라, 그 현장을 생생하게 격었기에 우리 모두는 결국 스스로 피해자"라고 전했다.

"그렇기 때문에 세월호 희생자·생존자와 그 가족들,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온 사람들이 외친 것은 '어떠한 나라에 살 것인가'라는 미래지향적인 가치를 함께 구현하자는 것이었다. 그간 억눌리고 해소되지 않았더라도 우리 모두는 그러한 의지를 내면에 품고 있었다. 그것이 일종의 '죄책감의 연대'를 만들어냈고, 더 좋은 나라를 만들자는 '책임의 연대'까지 구성해냈다는 데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이 교수는 "세월호 참사부터 촛불항쟁까지를 겪으면서 우리는 개인이나 집단을 비난하는 한계를 넘어 '어떻게 하면 더 나은 민주공화국을 건설할 것인가'라는 구체적인 책무를 안게 됐다"며 말을 이었다.

"한국 근현대사에서는 세월호뿐 아니라 무수히 많은 억울한 죽음들이 있었다. 그 죽음은 외부인에 의해 자행된 것도 있지만, '4·3' '5·18'처럼 우리 스스로 자행한 것들이 많다. 이를 총체적으로 다루는 기관이 절실하다. 우리 스스로 그러한 과거를 하나하나 떨치고 나가야 한다. 더이상 미래세대에게 우리네 선조나 우리가 저지른 잘못을 짊어지도록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현재를 사는 우리의 역사적 과제다."

대선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 교수는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투표'라는 적극적인 정치 참여를 통해 '조금 더 나은 세상에 한 표를 던지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선거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차악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보다는 '최선은 아니더라도 차선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것이 결국 우리가 지향하는, 보다 나은 세상과 맞닥뜨릴 수 있는 지점이다. 바로 그 한 표가 보다 나은 세상의 구조를 만드는 데 동참하겠다는 의지의 실천이기 때문이다."

[CBS노컷뉴스 이진욱 기자] jinuk@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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