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해외체류 경험 못 잊어.. '타향병' 앓는 2030

전현석 기자 2017. 4. 15.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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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서 무한경쟁에 지친 탓
외국서 좋은 시절 추억하다가 현실과 비교되어 우울해져..
귀국 후 고추장 등 적응 못하고 피자 등을 고향음식으로 여겨

회사원 김모(27)씨는 비빔밥에 고추장을 넣지 않는다. 된장, 고추장이 들어간 음식은 가급적 피한다. 2005년부터 3년간 아버지 직장 때문에 이탈리아 로마에서 살다 온 이후 생겨난 식습관이다. 김씨는 "귀국한 지 10년 가까이 됐지만 아직도 한국의 장 문화에 적응 못 하고 있다"며 "로마에서 먹은 피자, 스파게티가 고향 음식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미국 오리건주 애슐랜드에서 유학한 회사원 홍모(35)씨는 "봄만 되면 애슐랜드 병을 앓는다"고 했다. 홍씨는 "애슐랜드의 조그만 공원에서 매년 셰익스피어 축제가 열리는데 여기서 진정한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며 "결혼 2주년 때도 방문했다"고 했다.

해외 체류 경험을 못 잊고 그리워하는 20·30대가 늘고 있다. 외국에서 고국을 그리워하는 향수병에 빗대, '타향병'을 앓고 있다고 표현한다. 무한 경쟁과 스트레스로 지친 청년층이 해외에서 경험했던 좋은 기억을 곱씹는 현상이다.

이같이 외국 생활을 그리워하는 청년층이 늘어난 건 유학, 여행, 워킹 홀리데이 등 해외에서 공부하고 놀고 일해 본 경험이 있는 청년층이 증가한 것과 관련이 깊다. 한국관광공사 통계에 따르면, 11~20세 국민 해외 관광객 수는 2005년 67만명에서 작년 152만명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21~30세는 167만→382만명, 31~40세 216만→440만명으로 증가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한국인 유학생 수(초등학교 이상)는 2000년대 들어 매년 20만명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프리랜서 사진작가 박성은(25)씨는 올 1월 문화·예술 전문 크라우드펀딩(대중 모금) 사이트 텀블벅에서 '타향병을 앓고 있는 그들에게 바치는 사진'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박씨는 3년 전부터 아이슬란드, 덴마크, 스위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사진을 찍었는데 "이들 국가에 대해 타향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사진집, 포스터, 엽서 등을 만들어 팔기 위해서였다. 이 프로젝트에는 두 달 동안 106명이 참여했고, 250만3000원이 모였다. 박씨는 "사진을 통해 유럽 여행 도중 행복했던 순간을 공유하려고 이번 프로젝트를 기획했는데 예상 외로 참여자가 많아 놀랐다"고 했다. 익명으로 대화할 수 있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이나 동호회 소모임에는 유학 등 해외에서 살다 온 20·30대들이 만든 동호회가 많다. 한 유학 경험 동호회에서 활동 중인 취업준비생 박모(27)씨는 "동호회원끼리 미국 유학 시절을 추억하면서 우울한 현실을 잊을 때가 많다"고 했다.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어려운 취업 여건과 계속되는 후진국형 대형 사건·사고 때문에 대한민국 현실에 실망한 청년층이 잠깐이라도 경험했던 외국의 좋은 기억을 더 그리워하는 것"이라고 했다. 현택수 한국사회문제연구원장은 "국제화 시대에 자라난 20·30세대는 다른 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적고 빨리 흡수한다"며 "특히 서구식 개인주의 문화에 익숙한 이들은 미국이나 서유럽 국가 생활양식이 자신에게 잘 맞는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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