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뉴스 속으로] 영국선 195년 전 동물복지법, 한국선 아직도 '강아지 공장'

하남현 입력 2017.04.15. 01:10 수정 2017.04.15.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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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선 공약에 등장한 ‘동물 복지’ 실태
‘반려족’이 늘어나며 동물 보호가 이번 대선에서 주요 공약으로 등장했다. 13일 용인시 반려동물 놀이터를 찾은 사람들이 애완견과 여가를 즐기고 있다. [임현동 기자]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블로그에는 ‘문재인의 강아지’ ‘문재인의 고양이’라는 글이 올라와 있다. 문 전 대표가 유기견 지순이를 데려오게 된 사연, 그의 고향 양산에서 기르는 고양이 ‘찡찡이’의 얘기를 알려준다. 블로그에서 문 후보는 자신을 ‘문 집사’(고양이 주인을 일컫는 말, 고양이를 ‘모신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개 아빠’라고 소개했다.

대통령 선거 정국에서 정치인들이 동물을 껴안고 나섰다. 단순히 동물로 좋은 이미지를 쌓는 것뿐만이 아니다. ‘동물 복지 강화’는 득표에 도움이 되는 슬로건이다. 동물 복지가 당당히 이번 대선의 주요 공약에 포함된 이유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는 지난달 동물 복지 공약을 발표했다. 그는 “헌법에 동물권을 명기하고 민법에 동물을 물건으로 취급하지 못하게 하는 조항을 신설하겠다”고 말했다. 차기 정부 조직을 개편할 때 동물 관련 부서를 신설하겠다는 방침도 내놨다.

반려동물 키우는 인구 1000만 시대 ‘펫코노미’ 올해 3조 규모로 성장 동물을 가족으로 여기는 시각 확산

대선 후보들 동물복지 강화 나서 문재인, 동물복지특보단장 임명 심상정 “헌법에 동물권 명기할 것”

※자료 : 농협경제연구소
같은 당의 이정미 의원은 지난달 27일 반려동물을 사람과 공존하는 생명체로 존중하도록 하는 내용의 민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에는 ▶사람과 동물이 공존하는 동물복지 정책을 수립할 수 있도록 동물의 법적 지위를 높이고 ▶동물학대 행위자에 대한 책임성을 높이며 ▶동물을 하나의 생명체로 인정하고 보호할 가치가 있는 존재로 여길 것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문재인 후보의 경우 이미 2012년 대선 때 동물보호법 강화, 길고양이 중성화, 화장품 동물실험 금지 등 동물 복지 공약 11개를 발표했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는 아직 구체적인 공약을 내놓지 않았다. 하지만 문 후보는 최근 박홍근 민주당 의원을 동물복지특보단장에 임명하며 관련 분야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드러냈다.

당내 경선 과정에서도 동물 복지는 주요 공약으로 부각됐다. 민주당 경선에 나섰던 이재명 성남시장은 지난달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동물방역국 신설 ▶동물등록제 실효성 강화 ▶반려동물 의료보험 제도 도입 ▶유기견 입양 장려 등 8대 공약을 발표했다. 국민의당 경선을 치른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도 지난달 “이젠 반려동물에 대한 생명 존중, 복지 차원의 접근이 필요한 시대”라며 “헌법 차원에서 동물 보호를 국가 책무로 명시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나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의 경우 아직 동물복지와 관련된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았지만 과거에 비해 동물복지에 대한 관심은 크다. 일례로 한국당 대선기획단 청년본부는 지난 3일 국회에서 ‘생명에 대한 예의, 동물복지’라는 주제로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한국당은 동물복지 관련 정책에 대한 동물보호단체의 견해를 청취하고 대선 공약 반영 여부를 검토했다.
※자료 : 농림축산식품부
※자료 : 농림축산식품부
정치권에서 동물복지에 주목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반려동물을 키우는 유권자가 무시 못할 수준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15년 기준 반려동물 보유 가구는 전체의 21.8%에 이른다. 2010년(17.4%)과 비교하면 그 비중이 4.4%포인트 늘었다. 인구 수로는 약 1000만 명으로 추정된다.
※자료 : 농림축산식품부(2015년 기준)
특히 저출산, 결혼 기피 등으로 1·2인 가구가 급증하면서 사람과 반려동물 간 유대감은 더 깊어지는 추세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기준 1인가구는 518만 가구로 전체 가구의 27.2%를 차지한다. 2인 가구(495만4000가구)도 26.1%에 이른다. 홀로 살며 애완견 2마리를 키우는 직장인 김진영(38)씨는 “퇴근 후 반겨주는 강아지를 보면 하루의 피로가 풀린다”며 “강아지를 사람과 다르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다”고 말했다.
※자료 : 농림축산식품부
동물법 전문가인 함태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아직 법적으로 동물의 권리가 명확히 자리 잡은 건 아니지만 동물에 대한 사회적·법적 보호도 빠르게 선진국을 좇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함 교수는 “이런 사회적인 분위기 속에서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서도 자연히 동물복지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구권에서는 이미 법적으로 동물의 권리가 상당 수준 올라와 있다. 독일은 1990년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조문을 민법에 명시해 동물에게 사람과 물건 사이의 ‘제3의 지위’를 부여했다. 2002년에는 세계 최초로 헌법에 동물 보호를 국가의 책무로 규정했다. 독일 기본헌법 20조에는 ‘국가는 미래세대의 관점에서 생명의 자연적 기반과 동물을 보호할 책임을 갖는다’고 나와 있다.

유럽연합(EU)은 2009년 동물을 ‘지각력 있는 존재’로 인정하고 동물을 학대하는 돼지 감금틀 등을 없앴다. 뉴질랜드도 2013년 동물보호법을 통해 동물을 지각력 있는 존재로서 존중할 것을 명시했다.

독일, 2002년 헌법에 동물보호 규정 EU, 동물을 ‘지각력 있는 존재’ 인정 네덜란드 ‘동물당’ 호주엔 ‘동물정의당’

정부, 동물 학대에 대한 처벌 강화 동물 생산업은 신고제서 허가제로 “동물을 재산 개념으로 해석 아쉬워”

동물권리에 대한 역사도 깊다. 1780년 영국 철학자 제러미 벤덤은 동물이 사람과 똑같이 고통을 느낄 수 있으므로 사람처럼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후 1822년 영국 의회는 최초의 동물복지법을 통과시켰다. 이를 계기로 말이나 당나귀를 구타하는 행위가 범죄가 됐다. 본격적으로 동물권 운동의 움직임이 불붙은 건 1975년 호주 철학자 피터 싱어가 펴낸 『동물 해방론』이 계기가 됐다.

피터 싱어는 이 책에서 “인종이나 성을 근거로 흑인이나 여성에게 평등한 도덕적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 행위가 윤리적으로 부당한 것처럼, 동물이 사람과 같은 종이 아니라는 이유로 동물의 가치를 부정하고 무시하는 행위는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아예 동물 관련 단체가 정치 세력으로 자리 잡기도 했다. 2002년 네덜란드에서는 ‘동물당’이 창당돼 현재 원내 4석을 차지하고 있다. 호주의 ‘동물정의당’, 영국의 ‘동물복지당’ 등도 있다.

한국 정부도 동물권 보호를 확대하는 추세다. 우선 동물학대에 대한 처벌을 엄격히 했다. 지난해 한 방송을 통해 드러난 ‘강아지 공장’의 실태가 도화선이 됐다. 어미 개 강제 교배, 불법 마약류 사용을 통한 제왕절개수술과 같은 끔찍한 실상은 국민들의 공분을 자아냈다. 하지만 이런 동물학대에 대해 처벌이 미약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자료 : 경찰청
농식품부는 지난달 21일 동물보호법 일부 개정안을 공포했다. 이에 따르면 ‘강아지 공장’을 없애기 위해 동물생산업이 기존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바뀐다.

불법 영업 적발 시 벌금이 현행 100만원에서 500만원으로 크게 늘어난다. 동물학대 시 처벌 수위는 기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서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강화된다.

동물을 버린 사람에게 부과되는 과태료는 100만원 이하에서 300만원 이하로 늘어난다.

전문가들은 동물복지에 대한 정부와 정치권의 높아진 관심에 대해 환영의 뜻을 나타내지만 보완 과제도 많다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 정부가 개정한 이번 법안에는 ▶생산등록제(반려동물 생산 시 개체식별방법으로 등록·판매) ▶반려동물 소유권 제한 및 몰수 ▶영업자 외 반려동물 판매 금지 등 동물보호단체에서 주장한 사항들은 반영되지 못했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동물학대에 대한 높아진 사회적 경각심을 법에 반영한 건 바람직하다”며 “여전히 법이 동물을 재산의 개념으로 해석하는 건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민연태 농식품부 축산정책국장은 “국회 심의 과정에서 일부 조항이 과도한 규제라는 지적 등이 있어 처리되지 못했다”며 “향후 국회와 지방자치단체 및 동물보호단체 등과 지속적인 협의를 거쳐 합리적 방향으로 입법화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S BOX] 역대 대통령들 대부분 반려견 키워, 미국선 ‘퍼스트 독’ 애칭 「대선을 목전에 두고 대통령의 반려동물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역대 대통령이 키우던 반려견은 대통령 본인 못지않게 많은 관심을 끌었다. 고독한 최고 권력자 입장에서 반려견은 외로움을 달래는 친구다. 또 인간적인 면모를 통해 대중에게 친근감을 드러내는 소통의 도구로 반려견을 적극 활용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하야 후 반려견(킹 찰스 스패니얼)을 하와이까지 데리고 갈 정도로 개에 대한 사랑이 컸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진돗개 사랑도 잘 알려져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북한에서 선물받은 풍산개 ‘우리’ ‘두리’를 키웠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퇴임 후 ‘누리’(보더콜리)를 선물받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부터 지내던 삽살개 ‘몽돌이’를 청와대로 데리고 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진돗개 ‘새롬이’ ‘희망이’를 길렀다.

미국에서는 대통령의 반려견을 ‘퍼스트 독(First Dog)’으로 부른다. 대통령의 부인을 일컫는 ‘퍼스트레이디(First lady)’를 빗댄 것이다. 버락 오바마의 반려견 ‘보 오바마’를 비롯해 조지 W 부시의 ‘바니’ ‘미스 비즐리’, 빌 클린턴의 ‘버디’(래브라도 리트리버)는 잘 알려져 있다. 도널드 트럼프는 100여 년 만에 개를 키우지 않는 미국 대통령이다. 」

세종=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