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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4.16 “주검 앞에 돈타령 가슴 아팠죠”

정리 | 김형규 기자

“지겹다니요, 달라진 게 없는데” 2017.4.16

단원고 박성호군의 누나 보나씨가 말하는 ‘유가족의 3년’

박보나씨가 지난 10일 경기도 안산교육지원청에 마련된 ‘단원고 4·16기억교실’ 2학년5반 동생 성호군의 자리에서 동생의 사진을 매만지고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박보나씨가 지난 10일 경기도 안산교육지원청에 마련된 ‘단원고 4·16기억교실’ 2학년5반 동생 성호군의 자리에서 동생의 사진을 매만지고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박보나씨(23)는 세월호 참사로 숨진 단원고 2학년5반 박성호군의 큰누나다. 지난 3년간 진실을 밝히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탐욕과 무능으로 점철된 한국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을 목도했다. ‘세월호 세대’를 자처하는 그의 기억을 통해 세월호 3년을 돌아봤다.

그날…, 수업 중에 친구가 휴대폰으로 뉴스를 보여줬어요. 단원고 학생들이 탄 배가 침몰하고 있다고. 그 친구도 사촌 동생이 세월호에 타고 있었어요. 바로 강의실을 나와서 가족들과 연락하며 안산으로 내려왔어요. ‘전원 구조’ 소식에 안심했다가 오보라는 말에 다시 오열하고…. 동생 성호 이름은 생존자 명단에 들어갔다 빠졌다 했어요. 밤새 뜬눈으로 성호를 기다렸죠. 바다는 차가운데, 우리만 따뜻하게 있는 게 미안했어요. 보일러도 차마 못 켰어요. 성호가 돌아온 것은 일주일 만인 23일이었죠. 그날이 제 영명축일이어서 올라와달라고 기도했는데 정말로 올라왔어요. (시신이라도 찾은 게) 고맙더라고요.

참사 직후엔 아무도 믿을 수가 없었어요. 진도에서만 해도 별일이 다 있었잖아요. 가짜 유가족이 가족들을 염탐하러 다녔고, 언론은 거짓 보도를 했죠. 휴학계 내러 학교에 갔는데 학생처장님이 저를 보자 물었어요. “어른들한테 화나지?” “유족들은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나?” 위로가 아니었어요. 그저 궁금한 것들을 물었죠. 그러더니 “힘없으면 그런 일을 당하니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도 했어요. 어른에 대한 불신과 실망이 엄청 컸죠.

처음엔 가족대책위에서 인터넷 비방글 모니터링하는 일을 했어요. 유가족을 모욕하는 말도 힘들었지만 ‘돈타령’만 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어요. 우리 가족이 나가던 성당에서도 ‘그 정도면 많이 받은 거 아니냐’ 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정말 많은 사람들이 그런 말을 스스럼없이 했어요. 정부가 (보상금 많이 요구한다는) 프레임을 만들고 언론 플레이를 해도 그렇지요. 이런 사회가 정상인가요?

성호는 4남매 중 제일 착하고 순했어요. 어렸을 때 몇 번 큰 사고를 당하고도 멀쩡해서 ‘주님이 지켜주시는 아이’라고들 했어요. 고등학교 가서 신부가 되겠다고 했을 땐 좀 놀랐어요. 사회의식 있는 정의로운 사제를 꿈꿨던 거 같아요. 지금도 성호가 정말 하고 싶었던 게 뭘까, 내가 그걸 해야 하는데 생각해요.

작년 여름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가 강제 해산될 땐 참 막막했어요. “세월호 지겹다” “가족들 그만하라”는 소리가 많았잖아요. 그 와중에 단원고 기억교실도 사라졌어요. 매번 지기만 했죠. 우리가 이 싸움에서 과연 이길 수 있을까…. 두렵고 지치더라고요. 애초 20년, 30년 걸릴 싸움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세월호 단원고 희생 학생 박성호군의 누나 박보나씨가 10일 안산 고잔동 세월호 희생자 형제·자매 쉼터 '우리함께'에서 지난 3년 동안의 소회를 밝히고 있다.  /강윤중 기자

세월호 단원고 희생 학생 박성호군의 누나 박보나씨가 10일 안산 고잔동 세월호 희생자 형제·자매 쉼터 '우리함께'에서 지난 3년 동안의 소회를 밝히고 있다. /강윤중 기자

“탄핵·인양…걱정돼요, 사람들이 다 끝났다고 생각할까봐”

부모님 앞에서 울 수 없어
3년을 가슴으로 울었죠

동생이 ‘학살’된 그 바다
올라온 세월호 보니 먹먹
여기 남아 유족 할 일 할 것

한번은 ‘치유공간 이웃’의 정혜신 원장님이 집단상담을 했어요. ‘유가족’으로만 살면서 다들 너무 감정을 눌러왔던 거예요. 부모님 앞에서 울 순 없잖아요. 보는 사람마다 ‘부모님 잘 돌봐라’ ‘네가 형제 몫까지 잘 살아야 된다’ 하니, 부담스럽죠. 그런데 원장님이 “너 자신의 삶을 잘 살아야 누구의 누나로도 잘 살 수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나를 돌아보고 세월호도 알릴 겸 다른 유가족 언니 등 몇 분과 함께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 다녀왔죠.

순례길에서 세월호 참사를 설명한 영어·스페인어 전단을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눠줬어요. 그런데 사람들 반응이 한국이랑 다른 거예요. 이미 2년이 지난 일인데 거기 청년들이 다들 자기도 그 사건 기억한다고, 서로 노란 리본 달라고 했죠. 위로해주더라고요. 도착지인 스페인 산티아고 성당에선 세월호를 기억하는 미사를 봉헌해줬어요. 산티아고 시장님이 저희를 만나고 싶다고 해서 시청에도 갔어요. 전단이랑 노란 리본 배지를 드리니까 그 자리에서 배지를 가슴에 다는데…. 안산시장도 리본 배지 안 하거든요. 오히려 한국에선 아직도 리본 달고 다니냐고 사람들 타박하던 때인 데. 남의 나라에서 모르는 사람들이 이렇게 기억해주고 위로를 해준다는 게 정말 큰 힘이 됐어요.

지난겨울엔 촛불집회에 여러 번 나갔어요. 사람들 시선이 좀 달라졌다는 걸 느꼈어요. 저희가 행진할 때 박수 쳐주고 같이 우는 분들도 계시고. 조금은 희망도 느꼈어요. 하지만 그런 마음은 잠깐이고, 사람들은 지치고, 이 모든 게 금방 끝나버리면 어떡하지? 걱정이 더 컸어요. 탄핵이 되고도 마음을 놓지 못했어요. 사람들이 탄핵됐다고 이제 끝이라고 할까봐. 지금도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됐지만 그 사람만 죄지은 게 아니잖아요. 책임자 처벌은 이제 시작인데, 사람들이 다 끝났다고, 잘 해결됐다고 생각할까봐…, 걱정돼요. 오히려 지금 가족들에게 많은 힘이 필요한 상황인데….

인양된 세월호를 보는 것은 힘든 일이에요. 정말, 제 동생이 ‘학살당한’ 장소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똑바로 보지 않을 수 없어요. 진상규명 할 수 있게 선체를 온전히 인양하라고 3년 동안 얘기했는데, 올라오자마자 배에 구멍 뚫고, 선미 램프 자르고…. 펄 안에 유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데 그냥 밟고 지나다닌다는 기사를 보면서 지난 3년간 내내 지켜본 모습이지만 정말 한국은 아직 멀었구나 생각했어요. 부모님들이 목포신항에 다시 천막 치고 노숙하는 거 보면 2014년 4월16일이랑 달라진 게 하나도 없잖아요.

너무 힘들어서 도망가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런데 그게 안돼요. 세월호 참사 이전의 다른 참사 유가족들이 모여서 단체를 만든 걸 알게 됐어요. 그분들이 그때 “우리가 제대로 했으면 이런 일이 안 일어났을 텐데 미안하다”고 말씀하시는데, 제게는 그게 크게 다가왔어요. 내가 지금 힘들다고 한국을 떠나거나 외면해버리면 나중에 더 큰 사건이 또 일어날지 모르잖아요.

세월호 이후에도 많은 죽음들을 또 마주해야 했는데, 그때마다 너무 가슴이 아프고 죄책감이 들었어요. 내가 제대로 하지 못해서 또 이런 일이 일어났구나…. 그때가 세월호 아이들에게 미안했던 것 이후에 가장 미안한 순간들이었어요. 끝까지 안산에 남아 하나하나 바꿔가면서 안산 시민들과 같이 사는 게 의미가 있을 거 같아요.

‘용산참사’ 같은 국가 폭력의 발생지를 찾아 해당 사건에 대해 배우고 우리 고민도 넓히는 기행을 다니려고 해요. 가능하다면 그곳에서도 유가족 형제자매들을 만나고 싶어요. 유가족으로 사는 건 어떤 일인지 여쭙고, 그걸 통해 미래를 더 잘 준비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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