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양심적 병역거부 또 1심 무죄.."입영 거부 정당"

심동준 입력 2017. 4. 14.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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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처벌 감수하고 평화 택한 용기 존중해야"
"합헌 테두리內 구체적 법령 해석은 법원 재량"
"대안 마련 가능한데 일률적 형사처벌만 하는 게 문제"
"양심의 자유는 병역 의무 부담보다 우월한 헌법 가치"

【창원=뉴시스】강경국 기자 = 10일 해군교육사령부(사령관 소장 윤정상)에서 해군병 640기 입영식이 거행된 가운데 입영자들이 입영식을 마친 후 훈육요원의 안내에 따라 신병교육대대로 행진하던 중 부모님을 보고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사진=해군교육사 김미진 하사 제공) kgkang@newsis.com

【서울=뉴시스】심동준 기자 =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무죄 판결이 1심에서 또 나왔다. 법원은 대체복무 등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단순 입영 거부자를 형사처벌하게 되면 과도한 권리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서울북부지법 형사5단독 이정재 판사는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박모(21)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16일 밝혔다.

이 판사는 "법원의 역할 중 하나는 다수의 지배 아래에서 다른 생각과 의견을 가진 소수자들을 보호하는 것"이라며 "다수가 소수를 인정하고 존중해줄 때 다수의 존재 가치는 그 만큼 높아지고 다수가 범할 수 있는 오류 역시 줄일 수 있다"고 전제했다.

이어 "소수의 양심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회를 건전한 사회, 이성적인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지향하는 사회일까"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처한 현실이 비록 어둡다고 하더라도, 진정 이 땅에서 대결을 피하고 평화를 바란다면 우리는 피고인과 같이 처벌을 감수하고 평화를 택한 그 용기를 존중해 줘야 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박씨는 지난해 9월 '2016년 10월25일까지 35사단 신병교육대로 입대하라'는 현역 입영 통지서를 받고도 3일 이상 소집에 응하지 않았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여호와의 증인 모태 신앙으로 태어나 종교생활을 해왔다. 그의 아버지도 양심적 병역거부를 이유로 징역 처분을 받았다. 박씨는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성경 구절을 이유로 군사훈련에 참가하는 대신 대체복무 등으로 병역 의무를 이행하겠다고 주장했다.

【서울=뉴시스】전신 기자 = 1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홍정훈 참여연대 활동가 병역거부 선언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병역거부권 인정과 대체복무제 도입, 병역거부자 전원 석방 등을 요구하고 있다. 2016.12.13 photo1006@newsis.com

이 사건에 대해 먼저 법원은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취할 수 있는 적극적인 대안이 현재 우리 사회에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대체복무제도 등 병역 의무를 대체할 방법이 사회적으로 구비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단순히 입영을 하지 않는 방식'의 소극적 양심 실현 시도를 존중해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자 처벌을 규정한 병역법 제88조 제1항에 대한 헌법재판소(헌재)의 합헌 결정과 관련해서는 '구체적 법령 해석에 대한 법원의 재량'을 제시했다.

법원이 합헌적 테두리 안에서 법률 해석을 한다면 병역법의 처벌 조항에 양심적 병역거부가 해당하는지 여부도 적극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박씨가 국방의 의무 자체를 저버리는 것이 아닌 이행 방식과 수단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형벌을 적용하는 기준을 보다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종교적 신념, 양심의 자유를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처벌 받고 있지만 그 수가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을 근거로 형사처벌만이 적합한 수단은 아니라고 봤다.

특히 형벌은 최후의 수단이라는 점에서 병역기피자가 추상적으로 증가하리라는 가능성만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처벌을 강제하는 것은 과도한 권리 침해가 될 수 있다는 해석도 제시됐다.

국가안보라는 중요한 공익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대체수단을 마련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은 상황에서 일률적으로 형사처벌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 외려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서울=뉴시스】추상철 기자 =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와 전쟁없는 세상, 참여연대가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앞에서 UN 자유권위원회 권고 1주년 기자회견을 갖고 '자유권위원회 권고에 따라 병역거부자 석방과 대체복무제도 도입'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16.11.03. scchoo@newsis.com

이 판사는 "소수의 생각, 가치, 문화라는 이유만으로 배척되고 형벌을 통한 사회적 매장 절차를 거친다면 다양성을 추구하는 진정한 민주사회라고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근본적인 해결책인 대체복무법이 국민적 합의를 이뤄 제정되기까지 만연히 기다려야 한다는 것은 인권이 침해되는 소수자들에게는 가혹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 판사는 "박씨가 거부 사유로서 내세운 권리는 양심의 자유, 그 중에서도 양심 실현의 가장 소극적이고 기본적인 형태인 부작위(不作爲, 할 일을 안 하는 것)에 의한 양심 실현의 자유로서 헌법상 강력하게 보장된다"며 "그러한 권리는 헌법의 최고 이념인 인간의 존엄과 가치와 직결된 것으로서 국가안보와 병역의무의 공평한 부담이라는 이 사건 법률조항의 입법목적을 능가하는 우월한 헌법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판시했다.

결론적으로 이 판사는 "이러한 경우에도 박씨를 처벌하는 것은 헌법상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하는 것이므로 박씨가 병역의무의 이행을 거부할 정당한 사유가 존재한다"며 "이에 이 사건 입영을 거부한 것은 정당하다"고 밝혔다.

s.wo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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