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트렌드] 반모임 안 나가면.. 우리 애 따돌림 당할라

천금주 기자 2017. 4. 14.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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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기 증후군에 시달리는 엄마들

#1. “엄마들 모여 수다 떠는 데 간다고 나 보고 휴가 내라는 게 말이 되냐?” 불같이 화를 내는 남편에게 지은(가명·8·초등 1학년)이 엄마는 “하나뿐인 딸내미 친구 하나 못 만들어도 괜찮냐”고 받아쳤다. 큰아이 입학을 고려해 지난해 둘째를 출산한 그는 육아휴직 중이다. 다른 워킹맘에 비해선 나은 상황이지만, 백일이 갓 지난 둘째를 안고 입학식과 학부모총회, 학부모 교육 등에 다니다 보니 제때 수유를 못하고 있다. 같은 반 학부모 모임에서만큼은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짜낸 묘책이 남편의 휴가였다. 남편에게 ‘반 모임’ 날 휴가를 내고 둘째를 봐 달라 했더니 말도 안 된다며 펄쩍 뛰었다. 입학식도 총회도 참여수업도 아닌, 그저 같은 반 엄마들 모임을 위해 휴가까지 내라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거였다.

#2. 과잉행동장애(ADHD) 진단을 받고 치료 중인 인호(가명·10·초등 3학년) 때문에 인호 엄마는 단톡방(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을 개설하고 같은 반 엄마들을 초대했다. 반 모임도 추진했다. 아이의 상태를 사전에 알려 양해를 구할 생각이었다. 3학년이라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지만 소문이 더 부풀려질까 두려워 방어 차원에서 모임을 주도했다. 인호 엄마는 반 모임 일정이 잡힌 뒤로 인호가 1학년일 때의 기억이 떠올라 잠이 오질 않는다고 했다. 당시 아이들 서넛이 운동장에서 ‘잡기놀이’를 하다 한 아이가 다쳤는데 인호만 가해자로 지목됐다. 인호 행동이 도드라지기도 했지만 다른 아이들은 엄마끼리 친분이 있어 개별적으로 해결했다. 엄마들과 어울리지 못했던 인호 엄마만 학교로 불려갔다. 이후 인호가 ADHD라는 소문이 퍼졌고, 1년 내내 제대로 된 친구 하나 사귀지 못했다.

반모임이 두려운 엄마들

엄마들이 즐겨 찾는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런 사연이 흔하게 올라온다. ‘반 모임’은 새 학기에 같은 반 학부모인 엄마들끼리 인사를 나누며 친분을 쌓는 자리다. 공식 행사는 아니지만 새 학기가 되면 관행적으로 이뤄지며, 엄마들 사이에선 학교의 공식 행사보다 훨씬 중요한 모임이 됐다. 부담스럽다는 하소연도 많다. 모임을 주최하는 엄마도 그냥 동참하는 엄마도, 직장맘도 전업맘도 모두 반 모임을 꺼려한다. 그런데 이상한 건 참석률이 아주 높다는 것이다.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청소년 상담실적을 분석한 결과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의 상담 건수가 2월에 비해 40%나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담 내용은 주로 신학기 부적응과 친구 관계, 따돌림 문제, 교사와의 관계 등이었다. 그렇다면 엄마들은 어떨까. 3월에 아이들이 ‘신학기 증후군’을 앓고 나면 그다음은 엄마들이 ‘신학기 스트레스’로 우울감을 호소하는 시기가 찾아온다.

최수진(38) 라온아동발달센터 소장은 “학부모 상담이 진행되는 4월부터 상담 건수가 급증한다”고 말했다. 3월이 지켜보는 시기라면 4월 초는 학교에서 상담이 진행되고, 그 과정에 아이의 학교생활 문제점을 알게 된 엄마들이 본격적으로 신학기 증후군을 호소하며 찾아온다는 것이다. 상담 내용 중에는 다른 엄마들의 평가가 무섭다는 엄마도 적지 않다고 했다.

반 모임을 왜 하는 걸까

이토록 부담스러운데 엄마들은 왜 반 모임을 하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내 아이가 소외될까 봐. 엄마들 사이에서 평가가 좋지 않으면 그 아이는 친구를 사귀기 어렵다. 엄마들끼리 친분이 있으면 자녀들도 친구가 되는 경우도 많다. 또래집단을 형성하는 데 엄마들의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그만큼 부담스럽기도 하다.

자신의 유년시절을 회상하며 극성이라고 폄훼하는 학부모도 있지만 환경이나 분위기가 그때와는 전혀 다르다. 집 앞 골목에 나가 아무하고나 놀던 시절은 흘러간 옛이야기가 됐다. 친구와 어울리려 학원에 가는 중·고생처럼 초등학생의 친구 사귀기에 ‘엄마의 역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아이의 원만한 학교생활을 위해 휴가를 내고라도, 작은 아이를 어디에 맡기고라도 반 모임에 참석하는 것이다.

신입생 반 모임만 참여율이 높은 게 아니다. 초등학교 고학년, 심지어 중·고등학생이 돼도 엄마들은 반 모임에 꾸역꾸역 참석한다. 물론 동기는 조금 달라진다.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는 친구 사귀기를 위해, 고학년부터는 학원 정보를 얻기 위해 모임에 간다. 6학년이 되면 중학교 입학 대비를 위해 참석하고, 중학교 2∼3학년 때는 사춘기 자녀의 친구관계를 관리·감독하려는 목적으로 다른 엄마들을 만난다. 고등학교는 당연히 입시정보 공유가 목적이다.

하지만 반 모임에 나갈 때 잔뜩 긴장하기는 학년이 올라가도 달라지지 않는다. 뒷말이 나올까 봐 그렇다. 다른 엄마들에게 실수라도 해서 내 아이가 또래집단에서 배제될까 우려한다. 엄마들 사이에선 “자나 깨나 입조심, 닫은 입도 다시 보자”는 웃지 못할 농담까지 나온다.

엄마들이 원하는 적당한 거리

중2 아들을 둔 황모(가명·40)씨는 8년째 반 모임에 참석하며 깨달은 게 있다고 했다. 다른 엄마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는 점이다. 너무 거리를 두면 ‘깍쟁이’라는 눈총을 받을 수 있고, 너무 서글서글하게 굴면 만만해 보일 수 있어 그렇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사회생활처럼 할 말은 하되 너무 의욕을 앞세우지 말라고 조언한다. 다른 엄마들 눈치를 과도하게 보는 것도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친분이 쌓였다고 해도 아이와 연결된 관계임을 간과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또 소규모 인원이 장시간 교류하는 것보다 가급적 많은 이들과 어울리는 것을 권장한다. 이런 자리에서 아이들에 대한 평가는 금물이다.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 서미 상담연구부장은 “엄마들 집단을 힘들어하는 엄마들의 성향은 둘로 나뉜다. 모임을 주도해 몰입하거나 반대로 눈치 보며 끌려 다니는 경우다. 양쪽 다 엄마들 모임에서 쉽게 상처를 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엄마 모임도 사회생활과 똑같다는 걸 인식하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좋다”며 유형별로 다음과 같은 조언을 했다.

◇주도형 엄마

다른 사람의 의견을 수용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일정도 그렇게 조율해야 한다. 동시에 자기 생활에 방해가 될 정도로 몰입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게 중요하다. 절대 남의 말을 옮겨선 안 된다. 모임에서 분위기를 띄우려고 남의 이야기를 과장되게 하는 것도 금물이다.

◇참여형 엄마

“예스(yes)”란 대답을 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보고 어려운 일일 때는 당당하게 “노(no)”를 외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상황이든 명확한 의견을 밝히는 게 좋다. 모임 중 일부 엄마들과만 자주 어울리는 상황을 피하는 게 좋다. 자칫 뒤에서 분위기를 선동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신입생 엄마

1학년 때 형성된 관계가 6년 내내 또는 3년 내내 지속될 거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학교생활을 하다 보면 아이가 어울리는 친구는 달라진다. 엄마들의 친분이 자녀의 친구관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건 맞지만 100% 일치하진 않는다. 특별히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아이가 호감을 갖는 친구와의 관계를 지켜보고 지지해주는 게 바람직하다.

◇직장맘

정보 교류가 원활하지 않은 만큼 모임이 더 절실하다. 시간이 날 때마다 관계 형성에 주력하는 게 좋다. 무리할 필요는 없지만 주말이나 휴일을 이용해 아이가 좋아하는 친구나 그 엄마들과 만남을 갖는 게 좋다. 초등학교 고학년 또는 중·고생 엄마인 경우 각종 학업설명회 등에 함께 다니는 기회를 이용할 필요가 있다.

◇전업맘

전업주부라는 이유로 양보와 배려를 요구받는 경우가 많다. 내 아이를 위해 참는다고 생각하지 말고 불편한 상황에선 입장을 당당히 밝히는 게 좋다. 사석에서 서운했던 심경을 토로할 경우 오히려 뒷얘기를 한다고 비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글=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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