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얼굴에 철판을 깔고'.. 공약 줄줄이 폐기하는 트럼프

국기연 2017. 4. 13.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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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정치에 적응하는 '예측불가' 트럼프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연일 자신의 핵심 선거 공약을 폐기하고 있다. 트럼프는 취임 82일째인 12일(현지시간) 하루 동안에 중국에 대한 환율조작국 지정 포기 등 무려 6개의 주요 공약을 폐기하는 신기록을 세웠다.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는 이날 “트럼프가 목이 부러질 정도의 속도로’ 입장을 바꾸고 있다고 보도했다.

부동산 재벌 출신의 트럼프는 정치권의 ‘이단아’이다. 그가 비록 공화당 후보로 대통령이 됐지만 전통적인 보수주의자도 아니다. 그가 특별히 중시하는 가치나 이념도 없다. 그는 미국인이 좋아할 만한 공약을 내세워 대통령에 당선됐을 뿐이다. 그런 그가 ‘얼굴에 철판을 깔고’ 주요 공약을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폐기하고 있다. 이는 트럼프가 현실 정치에 적응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예측불가이고, 신뢰할 수 없는 정치 지도자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6일(현지시간) 미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만찬을 하던 도중 악수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우정을 쌓았다”며 “매우, 매우 위대한 관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팜비치=AFP연합뉴스
◆중국 환율 조작국 지정 포기

트럼프는 이날 월스트리트 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중국이 몇 개월 동안 환율을 조작하지 않았고, 환율조작국이 아니다”면서 “이번 주 나올 예정인 보고서에서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지금 그렇게 지정하면 북한의 위협과 관련한 중국과의 대화를 위험하게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는 대선 기간 중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고, 모든 중국산 수입품에 4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약했다. 트럼프는 또 중국의 지적재산권 침해 문제로 미국이 연간 3000억 달러의 손해를 보고 있다며 취임 이후 강력한 대응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했었다. 트럼프는 그러나 북한과의 ‘패키지 딜’을 위해 중국에 대한 통상 압력 공약을 스스로 폐기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지난 3월 17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미·독 정상회담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발언하는 동안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메르켈 총리와 악수해 달라는 사진기자들의 요청도 외면했다.
워싱턴=AP연합뉴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NATO) 무용론 철회

트럼프는 러시아 등의 위협에 맞서는 미국과 유럽 국가간 집단안보체제인 나토가 “쓸모가 없거나 진부하지 않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이날 방미 중인 옌스 스톨텐베르크 나토 사무총장과 회담한 직후 공동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밝혔다. 트럼프는 “오래전 내가 나토에 대해 불평을 했으나 나토가 변했고, 이제 테러리즘과 맞서 싸우고 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내가 예전에 나토가 쓸모없다(obsolete)고 말했으나 이제는 쓸모없지 않다”고 설명했다.

트럼프는 대선 기간 중 나토 회원국들의 안보 무임승차론을 줄곧 제기했다. 그는 나토 회원국이 정당한 몫을 내지 않으면 나토 동맹국이 공격받더라도 미국이 자동으로 개입하지 않을 수 있다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재닛 옐런 연준의장 축출 입장 변화

트럼프 대통령은 재닛 옐런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에 대해 “솔직히 털어놓고 말하지만 나는 저금리 정책을 좋아한다”면서 “나는 그녀를 좋아한다. 그녀를 존중한다”고 밝혔다. 옐런 의장은 내년 말로 4년 임기가 끝난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옐런 의장에 대한 우호적인 발언을 함으로써 그녀가 연준 의장으로 다시 지명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월스트리트 저널(WSJ)이 보도했다.

트럼프는 대선 기간 중에 옐런 의장이 주도한 연준의 저금리 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트럼프는 “버락 오바마가 원하기 때문에 옐런이 정치적인 이유로 저금리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연준은 전통적으로 정치적 중립을 내세우고 있어 트럼프의 이 같은 공격은 거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수출입은행(EXIM Bank) 폐쇄 계획 철회

수출입 은행은 연방 정부가 운영하는 금융 기관이다. 미국의 공화당 등 보수 진영은 수출입 은행이 자유 시장 경제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이 은행을 폐쇄해야 한다는 주장을 해왔다. 트럼프는 대선 기간 중에 이 같은 주장에 동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WSJ와 인터뷰에서 “수출입은행이 작은 기업들에 큰 도움을 주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보다 중요한 사실은 다른 나라도 정부가 도와주고 있다는 점이다”면서 “다른 나라가 도와주는 데 우리가 안 도와주면 우리는 엄청난 비즈니스 기회를 잃는다”고 말했다.

◆공무원 임용 동결 조치 철회

트럼프는 이날 연방공무원 고용 동결에 관한 대통령 행정명령 조치를 해제했다. 믹 멀베이니 백악관 예산관리국장은 “우리가 취한 조치는 취임 첫날 발동한 전면적인 고용 동결 조치를 대체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작은 정부’를 내세우며 공무원 채용을 동결하려 했다가 이 같은 방침을 철회했다. 백악관은 더 큰 전진을 위한 한 발 후퇴라고 주장했으나 그의 공약이 살아날 가능성은 없다고 CNN이 전했다.

◆국가 부채 8년 내 해결 계획 포기

멀베이니 미국 백악관 예산관리국장은 이날 약 20조 달러(약 2경 2800조 원) 규모의 국가 부채를 8년 내에 없애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공약은 과장됐다고 자인했다. 멀베이니 국장은 이날 CNBC 방송 인터뷰에서 “4년 안에 20조 달러나 되는 국가부채를 다 갚을 수 없고, 내가 그럴 수 있다고 말한다면 이는 솔직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4월 워싱턴포스트(WP)와 인터뷰에서 “집권하면 8년 안에 국가부채를 모두 해결할 수 있다”고 밝혔었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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