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4차산업혁명보다 급한 현장 혁신
몇 년 전 돌풍을 일으킨 한 ‘착한 신발 기업’도 유사한 딜레마를 보여줬다. 소비자가 신발 한 켤레를 사면 낙후된 지역 어린이에게 무료로 신발을 보내주는 매칭 사업은 당시엔 기발했고 순식간에 성공 모델이 됐다. 화려한 해법 속에 문제의 본질은 자꾸 뒷전으로 밀렸다. ‘가난한 사람은 신발이 없어 가난한 것이 아니라 가난해서 신발이 없다’는 단순한 사실 말이다. 신발이 필요 없는 지역에 공짜 신발이 쏟아져 지역 제화 산업을 망쳤다는 지적이 나온 것은 열풍이 한차례 지난 후였다.
요즘 급증하는 ‘4차산업혁명’ 논의를 보면 이 신발 기업이 떠오른다. 인공지능(AI)·빅데이터·사물인터넷(IoT) 등 4차산업혁명을 이끌어갈 기술의 신기함에 조급한 마음이 들 수 있다. 이로 인해 ‘4차산업혁명 대비책 발표’와 같은 사뭇 비장한 선언이 이어진다.
그런데 현장에서 “떠오르는 기술을 활용해 어떤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물으면 답변을 듣기 힘들다. 오히려 물어보는 행위 자체를 무지함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막연히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약속받는 기분인데, 지금은 뭘 잘못해서 거기에 못 가는지 묻지도 따지지도 말라고 한다. 요즘처럼 신기술의 성장이 숨가쁠 때는 빨리 움직여야 한다는 지적도 일리는 있다. 그럼에도, 스마트 공장 모델과 솔루션을 앞서 구축한 미국 GE나 독일 지멘스 같은 회사를 둘러보고 돌아와 조급하게 자료를 배포하는 기업을 볼 때, 혹은 앞다투어 ‘4차 산업혁명의 현장’을 찾는 정치권 인사들을 보면 찜찜함을 떨쳐낼 수가 없다.
가령, 지난달 하루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한 제프리 이멜트 GE 회장은 이 기간 얼추 10여 명의 인사들과 면담을 했다. 막강한 내공을 갖춘 인사끼리의 만남이었겠지만, 진짜 의미 있는 의견이 오갔을지 미심쩍다. GE로써는 자사의 스마트 팩토리에 관심을 보이는 집단, 즉 잠재적 손님이 많을수록 이득이라 잃을 게 없다.
현재 우리 기업은 여전히 오래된 골칫거리를 끌어 안고 있다. 그게 80년대 머물러 있는 노사 관계일 수도 있고, 현장에서의 의사소통 부족일 수도 있다. 신기술로 이를 모두 사라지게 할 수 있다면야 아주 좋은 일이다. 하지만 변화의 물결이 닥치기 전, 덜 참신한 방법으로라도 이를 해결하면, 그건 더욱 좋은 일 아닐까.
전영선 산업부 기자 az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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