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무료' 망중립성 위배 논란

2017. 4. 12.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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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SK텔레콤, 포켓몬고 이용자에 무료 제공… 콘텐츠 사업자들 반발

‘데이터를 쓰고 돈을 낸다.’ 모바일 시대의 상식이다. 하지만 이 상식이 조만간 깨질지도 모른다. 데이터를 사용해도 과금하지 않는 서비스들이 하나 둘 늘고 있다. 당장은 소비자에게 혜택을 가져다주지만 장기적인 소비자 편익으로 남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지난달 SK텔레콤은 모바일 게임 ‘포켓몬고’의 제작사 나이언틱과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전국 4000여곳의 SK텔레콤 공식 대리점을 포켓몬고 게임 속의 공간인 ‘포켓스탑’, ‘체육관’으로 바꾸는 것이 이번 협업의 핵심이다. 나이언틱은 전국에 퍼져 있는 SK텔레콤 대리점을 통해 게임에 필수적인 공간을 확보할 수 있고, SK텔레콤은 포켓몬고 이용자들의 대리점 유입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이날 파트너십은 게임 이용자들에게 ‘데이터 무료’라는 혜택도 안겼다. SK텔레콤은 포켓몬고를 이용하는 자사 고객에게 게임 이용 중 발생하는 데이터를 6월까지 무료로 제공하기로 했다. 이른바 ‘제로레이팅’이다.

SK텔레콤 홍보 도우미들이 3월 21일 모바일 게임 '포켓몬고'와의 업무제휴 내용을 홍보하고 있다. / SK텔레콤 제공

이통사, 소비자에 서비스 제공 명분

나이언틱은 애초 이용자의 야외활동을 권장하기 위해 포켓몬고를 만들었다. 포켓몬고 이용자는 집 밖을 돌아다니며 포켓몬을 잡아야 한다. 이용자로서는 와이파이 연결이 원활하지 않은 야외에서 데이터를 사용하며 게임을 즐길 수밖에 없다. SK텔레콤은 포켓몬고 이용이 활발한 고객 기준으로 월 평균 250MB의 용량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양사의 파트너십은 소비자 혜택으로 귀결되는 협업으로 보였지만, 일각에서는 인터넷 서비스가 등장한 이래 현재까지 유지해온 ‘망중립성’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을 보였다. 망중립성이란 이동통신사처럼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이를 서비스하는 사업자들이 게임제작사나 인터넷동영상서비스(OTT) 업체, 또는 포털사 등을 차별대우해서는 안된다는 원칙이다. 정부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가이드라인을 통해 ‘모든 망사업자와 정부는 인터넷의 모든 데이터를 동일하게 취급해야 하며 사용자나 내용, 전송방식 등에 어떠한 차별도 하지 않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이번 계약에 데이터 무료에 대한 부분은 정부 가이드라인에 위배되지 않는 수준에서 계약구조를 가져갔다”며 “사업자 간에 계약을 통해서 대가를 지불하고 쓰는 형태이기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포켓몬고 이용자들이 무료로 데이터를 이용하는 대신 나이언틱이 일정한 대가를 SK텔레콤에 지불하는 까닭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나이언틱이 SK텔레콤에 지불한 대가는 공개되지 않았다.

국내의 ‘제로레이팅’ 서비스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KT는 지난달 자사 스마트폰 이용자들이 ‘KT내비’를 이용할 때 발생하는 데이터를 모두 무료로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LG유플러스도 ‘지마켓’과 자사의 동영상 서비스인 ‘비디오포털’의 일부 콘텐츠에 한해 제로레이팅을 적용하고 있다. SK텔레콤 역시 포켓몬고 이전에도 제로레이팅을 일부 서비스에 도입해 왔다. 자사의 서비스인 ‘11번가’ 외에 쇼핑 애플리케이션 ‘롯데닷컴’,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벅스’ 등이 제로레이팅 대상이다.

제로레이팅은 망중립성 논의의 새로운 국면을 열였다. 과거의 망중립성 논의는 이통사가 특정 서비스에 대한 이용자의 접속을 차단하거나 서비스 이용속도를 제한하는 방식에 집중됐다. 국내에서도 2012년에만 2건의 관련 논란이 일었다. 그해 2월 KT는 삼성 스마트TV의 인터넷 접속을 차단했다가 방송통신위원회의 경고조치를 받았다. 6월에는 이통 3사가 카카오톡의 음성통화 서비스인 ‘보이스톡’ 통화품질을 제한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통신사들의 이 같은 조치는 콘텐츠 및 서비스 제공자에 대한 명백한 차별로 비쳐지면서 지지를 얻지 못했다.

콘텐츠 사업자 “이통사만 살아남을 것”

기존의 방식이 ‘네거티브’였다면 제로레이팅은 ‘포지티브’ 방식이다. 통신사로서는 데이터 무료라는 혜택을 이용자에게 제공한다는 확실한 명분을 내세울 수 있다. 지난 3일 이상헌 SK텔레콤 CR전략실장은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국내에서 제로레이팅 관련 플랫폼 서비스가 활성화되고 있다”며 “결과적으로 이용자 환경과 매출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반면 콘텐츠 사업자들의 위기감은 커졌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제로레이팅이 일반화되면 콘텐츠만으로 승부를 보는 공정한 경쟁은 어려워지고 자본력이 있는 사업자들만 유리해질 것”이라며 “콘텐츠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들이 다 이통사 앞에 가서 줄을 서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포켓몬고와 유사한 증강현실(AR) 기반 게임을 준비하는 업체에는 이번 SK텔레콤과 나이언틱의 제로레이팅 제휴가 시장 진입 자체를 어렵게하는 역차별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제로레이팅이 일반화되면 이용자 대신 데이터 요금을 지불할 수 있는 대형 업체들만 살아남을 것”이라며 “참신한 콘텐츠를 선보이는 스타트업이나 중소 업체는 씨가 마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통사는 제로레이팅의 문호를 점차 확대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은 지난 2월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돈은 내가(이동통신사) 다 투자하고 과실은 다 쟤네(OTT)가 가져가’라는 이야기가 세계이동통신사업자협회(GSMA) 회의 내내 나왔다”며 “최근에 한국의 미디어 콘텐츠 하는 여러 사업자를 만나면 울고 있는 플레이어가 있다. OTT가 돈은 다 벌었다”고 말했다.

올해 본격적으로 망중립성 논의가 확대되는 데는 미국의 정치상황 변화와도 관련이 깊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연방통신위원회(FCC) 수장이 된 아지트 파이는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 2017(MWC 2017)’ 기조연설에서 “망중립성은 실수”라며 규제 완화 가능성을 시사했다. 정지수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최근 미국 시장 동향을 반영해 망중립성 정책이 통신사에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며 “현실적으로 망중립성 폐지보다는 제로레이팅 관련 사업 확장에 따라 통신사의 매출이 증가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박지환 오픈넷 변호사는 “제로레이팅의 경우 요금제가 이미 많이 나와 있는 만큼 문제가 되는 상황에 대해 사후 규제를 하는 방향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라며 “특수관계에 있는 계열사나 특정업체를 밀어주는 방식으로 시장의 경쟁질서를 어지럽히는 경우 공정거래법으로 규제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이통사도 콘텐츠 사업자로 인해 데이터 사용량이 늘어나고 매출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효상 경향신문 산업부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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