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테일추적>웹툰 작가 '레바' 은행 직원 착오로 가압류, 실수직원에게 '전액배상'시킨 은행

문현웅 기자 2017. 4. 10.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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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캡쳐

팔자 기구하기로 유명한 웹툰 작가 이승권(25·필명 레바)이 최근 또 한 번 수난을 겪었다. 대부업체 대출금 이자 500만원 때문에 계좌압류조치를 당한 것이다.

돈 빌리고 갚지 않아 압류당했으면 인과응보지 그게 뭔 고난이냐 말할 수도 있겠다. 문제는 레바 이름으로 대부업체 돈을 빌린 기록이 전혀 없었다는 거다. 그럼 은행은 왜 레바의 돈줄을 끊어먹은 것일까. 사연을 읊어 보도록 하겠다.

익스트림 일상툰 上(유료)

익스트림 일상툰 下(유료)

레바가 최근 이 사연을 두 차례에 걸쳐 만화로 그려내긴 했지만, 기자가 지난 6일 부천에서 직접 레바를 만나 상세한 이야기를 들었으니 이미 만화를 본 분들이라도 이 글을 읽어 주시면 사태 이해에 한층 더 도움이 되리라 본다. 앞으로 만화를 읽을 분들 또한 마찬가지고.

#익스트림 압류

지난달 21일, 언제나처럼 한창 마감에 쫓기고 있던 레바에게 짧은 문자 한 통이 왔다. 은행 계좌가 법원 조치에 따라 압류당했다는 내용이었다.

/인터넷 캡쳐

보이스피싱도 아니었다. NH 농협은행 고객센터에 연락한 레바는 실제 계좌압류 상태가 맞다는 답변을 받았다. 잠시 뒤 확인사살로 NH 농협은행 압류팀에서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 사건 관련해 계좌가 압류됐다는 통보 전화가 왔다.

/인터넷 캡쳐

레바는 곧장 변호사와 연락해 대응을 논의했다. 그간 다양한 고소 편력에 휘말려 왔던 레바였던 만큼, 바로 상담 가능한 변호사가 있었다 한다. 변호사는 “명의도용이 의심되니 주변인 중 혹시 레바 작가 이름으로 돈 빌린 사람이 없는지 확인해 보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범인을 잡아낼 수 없었고, 결국 레바는 변호사를 정식으로 선임해 마지막 저항을 준비한다.

#드러난 진실

항소장을 내고서야 레바도 모르고 은행도 몰랐던 진실이 드러났다. 계좌를 압류당한 건 92년생 레바가 아니라, 77년생 동명이인 이승권 아재였던 것이다. 즉, 레바 계좌는 멀쩡히 잘 살아있었다. 다만 은행이 77년생 이승권씨에게 통보할 내용을 레바에게 전하는 바람에 이 난리가 벌어졌을 뿐.

진실을 알고 격노한 레바는 아주 잠깐이나마 물리력을 동원해 은행을 참교육시킬 생각까지 했었다 한다. 하지만 고등교육 받은 사람답게 신사적으로 해결하라는 변호사 조언에 따라 은행 지점과 이성적 대화를 시도했다.

그 결과 이 사건이 NH 농협은행 직원의 사소한 실수 하나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지난해 8월 은행에서 주소지 정보를 바꿨을 때, 직원이 77년생 이승권씨 정보란에 레바 전화번호를 적어넣은 것이다.

사태가 파악되자 지점장과 직원들이 몰려와 레바 앞에 도열해 용서를 구했다. 하지만 NH 농협은행은 한민족의 오랜 가르침에 따라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으려 들었다. 레바가 입은 금전적·정신적 피해를 전부 보상해주긴 어렵다 말한 것이다.

이들은 압류 소식을 받고 열흘도 되기 전에 변호사를 부른 건 일반적인 사람치고는 너무 빠른 대응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참고로 변호사를 많이 양성해 ‘일반적인 사람’이 법적 문제가 생겼을 때 신속하게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게 로스쿨 도입 취지 중 하나다. 빠른 변호사 선임은 나라에서 장려하는 일이지 흠 잡힐 문제가 아니라는 거다.

또 ‘대부업 대출’은 월 단위, 심하면 일 단위로 이자가 붙는다. 대응이 굼뜨면 그만큼이 고스란히 피해로 돌아오니, 되려 최대한 서두르는 게 답이다. 사실 이거고 저거고를 다 떠나서 계좌가 막히면 돈을 뽑아 쓸 수 없다. 말라죽기 싫으면 빠르게 법적 대응을 해 돈줄을 풀어야 한다. 이 때문에 NH 농협은행의 논리를 전해 들은 레바측 변호사는 “상식 밖의 발언”이라며 황당해했다 한다.

더군다나 NH 농협은행은 레바측 변호사에게 연락해 “사건이 중간에 해결됐으니 레바에게 수임료 일부를 돌려주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한다. 이쯤 되자 헬조선에선 곱게 보상받기 힘들다는 걸 잘 알고 있던 소송 베테랑 레바가 ㅇㅇ일보 ㅇㅇ기자에게 연락해 온 것이다.

/인터넷 캡쳐

#만화에는 없는 후일담

결국 레바는 지난 7일 정신적 피해보상비를 비롯해 변호사 선임비와 항소비까지 받았다. 그래서 해피엔딩이냐 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NH 농협은행이 아니라 레바 번호를 잘못 입력한 직원 개인이 보상비를 전액 부담했기 때문이다. 레바는 “난 회사에 다녀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직원이 일을 잘해 번 돈은 회사가 다 가져가지 않느냐”며 “반대로 직원이 실수해 손해 보면 회사는 책임 없다 발을 빼버릴 수 있으니 역시 기업하기 좋은 나라답다”고 했다.

이관수 노무사(서울 강남구의원)는 “직원 실수로 벌어진 일이라도, 직원 혼자서 보상 책임을 100% 지는 걸 본 적이 없다”며 “아무리 직원 실수가 명백해도 업무 중 발생한 일이라면 그를 고용한 회사 역시 보상 부담을 나누는 게 보통”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해 NH 농협은행 본사 홍보팀 관계자는 “해당 건은 민원피해보상 규정상 직원 개인이 보상하는게 맞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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