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로 배를 파서라도 내 아이 데려와야지"

2017. 4. 10.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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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세월호 들어온 날, 뭍으로 올라오지 못하자 현장에선 피해 가족·시민들 안타까움에 마음 무너져

비가 내린 4월5일, 추모객들이 미수습자 사진이 걸린 곳에서 세월호를 바라보고 있다.

회색 재킷에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단 ‘신사’가 전남 목포역 앞에서 버스에 올랐다. 종착지는 목포신항. 그곳에 세월호가 있다.

강원도 평창에 사는 엄아무개(63)씨가 이 버스를 타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했다. “촛불시위 하러 서울 광화문에 자주 갔어요. 두 번 정도 빠졌나? 그런데 세월호 분향소에는 차마 못 들어가겠더라고….”

엄씨는 오전 9시45분 강원도 평창에서 버스를 타고 서울 용산역으로 향했다. 이어 오후 1시35분 목포행 KTX에 몸을 실었다. 태어나서 처음 타보는 KTX였다. 2016년 9월 교편을 놓은 그에게 세월호 참사는 남의 일이 아니었다. 자꾸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엄씨는 결국 목포에 가기로 마음먹는다. 얇은 재킷이 덥게 느껴질 정도로 농익은 봄기운이 올라온 4월4일 오후 4시30분. 버스는 목포신항 정류장에 도착했다. 500m쯤 앞으로 나아가자 격자 모양의 철조망에 갇힌 녹슨 배가 보였다.

철조망 너머 눈앞에 온 세월호

바람이 불면 격자마다 매인 노란 리본이 손을 흔들었다. “아직도 미안합니다” “우리 곧 만나요” “미안해 진실을 꼭 밝힐게” “잊지 않고 살아가겠습니다”….

3월23일 수면 위로 떠오른 세월호는 아직 뭍으로 올라오지 못했다. 4월4일 오후 5시 목포신항 취재지원센터에서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선조위) 브리핑이 진행됐다. 선조위는 미수습자 수습을 점검하고 선체 조사를 담당한다.

이 자리에서 세월호의 무게가 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해양수산부 세월호 현장수습본부’(수습본부)가 애초 측정한 세월호 무게는 1만3462t이었다. 하지만 이날 다시 측정한 결과 1만 4592t으로 1130t이 증가했다. 선체 안으로 들어찬 펄 무게를 제대로 측정하지 못한 것이다. 수습본부는 세월호에 구멍을 뚫어 펄을 빼내려 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 선체 안에서 딱딱하게 굳은 펄은 구멍 밖으로 쏟아지지 않았다. 세월호를 육상으로 옮기기 위해 동원된 운반 장비 ‘모듈 트랜스포터’(MT)는 480대이지만 새로 측정된 세월호 무게는 480대의 MT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MT는 대당 40t을 지탱하는데 안정성을 고려하면 그보다 적은 하중이 실려야 한다. 이로써 수습 본부가 목표로 삼은 4월6일 육상 거치는 불가능해졌다. 김창준 선조위 위원장은 “해수부가 (소조기가 끝나는) 4월7일이 데드라인이라고 했는데 아마 (그때까지 육상 거치가) 안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소식은 곧바로 미수습자 가족과 유가족들에게 전파됐다. 미수습자 조은화양의 어머니 이금희씨가 브리핑이 진행 중인 취재지원본부를 찾아왔다. “저는 세월호가 넘어질 때 (전원이 구조됐다는 오보를 보고) 은화 옷 갈아입히러 왔습니다. (그러다) 여기 4년째 살고 있습니다. 만 3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희한테 (미수습자 수습 방안) 합의를 해달라 해놓고 (세월호 육상 거치가 연기됐다는 소식은) 왜 기자분들에게 먼저 이야기할까요?”

4월5일 선조위는 가족들과 미수습자 수습 방안을 합의하기로 했다. 그때쯤 세월호가 뭍으로 올라올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월호 무게가 예상보다 늘어나면서 육상 거치 날짜가 불투명해졌다. 미수습자 가족들이 그 소식을 뉴스로 먼저 들은 것이다. “인정 못합니다. 선체조사위, 해수부 인정 못합니다. 그 사람들 믿을 수 없거든요. (이제) 배 위에 한 발짝도 못 올라갑니다.” 화가 난 이금희씨는 취재지원본부를 빠져나갔다.

“바로 저기 있는데” 피해 가족들 분통

4월4일 전남 목포 유달산에서 500mm 렌즈 카메라로 목포신항에 있는 세월호를 찍었다. 세월호를 뭍으로 옮기기 위한 야간 작업이 한창이었다.

답답하긴 유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4월4일 밤, 어둠과 안개가 동시에 깔린 목포신항에서 유민군의 아버지 김영오씨가 짧은 거리를 계속 왔다 갔다 하며 가슴속에 쌓인 화를 삭였다. “도대체 어떻게 하루에 (배 무게가) 1천t 넘게 늘어나는 거예요? 이유가 뭐예요? 바로 저기 와 있는데 지금 이게 며칠째냐고요.” 3월31일 세월호가 목포신항에 도착한 뒤 피해자 가족들의 속은 더 타올랐다. 작업 진척 소식을 하나라도 더 듣기 위해 타들어간 속처럼 까만 밤을 뜬눈으로 지새웠다.

4월5일 새벽부터 비가 오기 시작했다. 세월호 선체를 품고 있는 반잠수식 선박 ‘화이트마린’은 아침에 흐린 하늘보다 더 짙은 연기를 뿜어냈다. 이날 오후 1시15분 가로 방향으로 항구와 접해 있던 배를 세로 방향으로 바꿔 대기로 했기 때문이다. ‘우르르르’ 화이트마린이 항구를 벗어나자 배와 세월호가 맞닿은 지점에서 철판이 우는 소리를 냈다.

궂은 날씨 탓에 항구를 찾는 사람은 전날보다 줄었다. 하지만 발길이 끊기진 않았다. 주차장과 목포신항을 잇는 셔틀버스에서 추모객이 내렸다. ‘목포시 종합안내소’라는 이름이 걸린 천막 앞에서 사람들은 노란 리본을 받아들었다. 이들은 리본에 추모의 마음을 적은 뒤 항구와 밖을 구분하는 철조망에 묶었다. 인천에서 차를 타고 친구와 함께 온 김아무개(21)씨는 “인양을 했으니까 첫발은 잘 디딘 것 같다. 미수습자도 빨리 찾고 진상 규명도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목포 시민인 이아무개(57)씨는 “요즘처럼 기술이 뛰어난 세상에 왜 배 무게도 제대로 못 재서 일정을 미룬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사고 날 때부터 지금까지 나라가 믿음을 준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오전 10시 수습본부는 전문가를 내세워 세월호 무게가 달라진 이유를 설명했다. 인양업체 ‘상하이샐비지’의 컨설팅을 맡은 영국 TMC사 싱가포르 지부 수석 기술자 쏭왕은 “선체 중량 예측은 상당히 어렵다. (인양 후) D데크(화물칸)에 구멍을 뚫어 확인해보니 펄이 1~1.5m 깊이였다. 애초 예상한 0.5m를 훨씬 상회하는 수준이다. 이것이 세월호 중량을 예측보다 훨씬 무겁다고 판단하는 근거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렇게 예측한 1만4592t도 정확한 수치가 아니었다. 수습본부는 이날 저녁 7시40분부터 480대의 MT를 이용해 1만4600t의 힘을 주어 선체를 들어올리는 테스트를 했다. 계산이 맞다면 선체가 들어올려져야 했지만 배는 움직이지 않았다. 세월호는 바로 눈앞에 다가왔지만 희망은 여전히 쉽게 잡히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는 세월호와 타고 남은 마음

4월6일 비가 그쳤다. 대신 짙은 안개가 항구를 감쌌다. 준형군의 아버지 장훈씨는 눈이 퉁퉁 부은 채 항구를 걸었다. “어제 열두 시간 지켜봤는데 뭐하는 거냐고. 무게를 도대체 몇 번이나 다는 거냐고. (수습본부가) 상하이샐비지를 대변하지 말고 감독을 해야지. 대변만 하고 있잖아. 여기까지 와가지고 눈앞에 보이는데 못 꺼내는 게 말이 되냐고.” 장씨의 마음속에도 뿌연 안개가 끼었다.

답답한 마음을 위로하는 것은 추모객들이다. 비가 온 전날과 달리 셔틀버스는 좌석 정원을 넘는 사람들을 목포신항에 내려놓았다. 서울의 한 병원에서 직장 동료 9명과 함께 온 이창한(37)씨는 유가족과 미수습자 가족들에게 “다 지켜보고 있으니까 가족 분들이 원하시는 대로 될 거라고. 응원해드릴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했다. 이씨는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꼭 기억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쓴 노란 리본을 철조망에 걸었다.

“마음이 찡하죠.” 전남 화순에서 온 조기영(51)씨는 자녀가 7명이라고 했다. 그는 “무엇보다 빨리 미수습자들 찾아서 가족 품에 돌려줘야 한다”며 세월호에서 눈길을 떼지 않은 채 걸었다.

피해자 가족과 추모객들의 염원에도 세월호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3년 동안 미수습자 가족들을 돕고 있는 양한웅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집행위원장은 “3년 전 터진 세월호 참사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볼 때 세월호 참사의 중요한 원인은 ‘돈’이었다. “이윤을 위해 과적과 무리한 증축을 하고, 선장은 물론 선원도 상당수 정상적인 재난 대응 훈련을 받지 않은 촉탁직이었습니다. 참사 원인이 인양 과정에서도 반복되고 있어요. 상하이샐비지는 최저가를 제시해 인양업체로 선정됐습니다. 그러다보니 최저 비용을 가지고 육상 거치 작업을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 사용하는 40t짜리 MT가 아니라 비용을 더 들여 60t짜리 MT를 동원했다면 이미 거치가 끝났을 거라고 봅니다. 수습본부는 어림잡은 무게를 바탕으로 상하이샐비지가 부족한 장비를 동원하는 것을 용인한 것이죠.”

사실 이 지적은 그동안 여러 차례 나왔다. 수습본부가 상하이샐비지의 손실을 줄여주기 위해 미흡한 장비를 동원해도 눈감아준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수습본부는 60t짜리 MT를 활용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선체 하중 분산이 어렵기 때문”이라고 밝혔지만 미수습자 가족들은 수긍하지 않았다. 양 위원장은 “배가 인양되니까 다윤이 어머니의 얼굴이 하얗게 피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옆에서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얼굴이 까매지고 있다. 믿을 곳이 없으니 호미랑 삽을 들고 직접 배로 가서 다윤이를 찾겠다고 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국가가 희생자들의 뼈 한 조각이라도 최선을 다해 찾는 모습을 보여줘야 미수습자 가족뿐 아니라 모든 국민의 믿음을 다시 얻을 것이다”라며 말을 맺었다.

“협의할 게 아니라 주검 수습 약속해야”

4월6일 미수습자 9명의 사진이 걸린 곳을 추모객들이 지나가고 있다.

다음 정부는 상처 입은 피해자 가족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을까. 이날 오후 2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목포신항을 찾았다. 그는 유가족과 미수습자 가족들을 만난 뒤 노란 리본에 “미수습자들이 반드시 가족 품에 돌아가기를! 진실을 끝까지 인양하겠습니다! 문재인”이라고 적어 철조망에 걸었다.

문 후보가 목포신항 들머리에서 기자 100여 명에 둘러싸여 답변하는 동안 허다윤양의 어머니 박은미씨는 미수습자 가족들이 머무는 컨테이너 안에서 화분에 물을 주고 있었다. 박씨는 앞서 비공개로 이뤄진 문 후보와 미수습자 가족의 면담 자리에서 국방부 유해발굴단 투입을 요청했다.

유해발굴단은 유골 상태로 있을 가능성이 높은 미수습자 수습에 큰 힘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선조위도 유해발굴단 투입을 요청했지만 정부는 이들이 “6·25 전쟁 중 전사자로서 수습되지 못한 유해를 조사·발굴”하는 일만 하도록 법에 정해져 있다며 난색을 표했다. 그러나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에는 “국가기관 등은 위원회의 요청이 있는 경우 조사에 필요한 편의 제공 등을 포함한 업무 수행에 적극 협조하여야 한다”고 적혀 있다. 게다가 유해발굴단의 구체적 업무는 정부가 국무회의 의결을 통해 개정할 수 있는 ‘시행령’에 규정돼 있다.

“더워지기 전에 꼭 미수습자들을 찾아야 해요. 그래서 문 후보님에게 국방부 유해발굴단이 투입될 수 있게 도와달라고 했어요. 누군가 지금 협의 중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협의가 아니라 이 자리에서 꼭 약속해달라고 했어요. (배가) 눈앞에 보이는데….”

다윤이 엄마가 마른 눈물을 흘리던 날

박씨는 기침을 섞어가며 말했다. 그에겐 딸을 찾는 일이 가장 중요하지만 관심 사항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게 안전검사예요. (참사 당시) 잠수사분들의 인명 사고가 있었잖아요. 이번 작업에서는 한 명도 다치지 않아야 합니다. 또 진상 규명하고 재발 방지 대책도 마련해야죠.”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가는 듯하던 박씨는 끝내 흐느끼고 말았다. “다윤이 빨리 찾아서 우리 딸 안아보고도 싶고, 집에 데리고 가고 싶고. 엄마라면 아이들 보내줘야 하니까. (국가가) 마지막 한 사람까지 가족 품에 보내주겠다고 해줬으면 좋겠어요.”

박씨가 마른 눈물을 흘렸던 날의 밤 수습본부는 세월호 무게를 1만6천t이라고 발표했다. 앞선 추정치보다 다시 1408t이 늘어난 것이다. 미수습자 가족과 유가족들의 가슴에 그보다 몇 갑절이나 많은 무게가 내려앉았다. 세월호는 여전히 뭍으로 올라오지 못하고 있다.

목포=글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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