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성대 묻지마 폭행' 막은 義人이 울고있다

주희연 기자 2017. 4. 10.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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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폭행 노숙자 잡으려다 칼에 찔려.. 손가락 4개 마비
입원비 등 혼자 감당해야.. 義傷者 지정까지 수개월 걸려
"난 정의의 사도 아닌 일반 시민
찔렸을 때 정신 아득했지만 피하면 다른 사람 다칠 수 있어 어떻게든 해결하려 했을뿐"

지난 7일 오후 5시 10분쯤 서울 지하철 2호선 낙성대역 출구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가던 김모(54)씨가 맞은편에서 내려오던 여성을 보더니, 난데없이 따라 내려가 주먹으로 마구 때린 것이다. 마침 개찰구에서 나와 이 광경을 목격한 곽경배(40)씨는 "도와주세요"라는 여자 목소리를 듣고 김씨에게 다가갔다. 달아나려는 김씨를 곽씨가 막아서자 김씨가 주머니 속에서 여행용 칼을 꺼내 휘둘렀다. 곽씨는 오른 팔뚝을 찔려 피가 철철 흐르는 상황에서도 김씨를 붙잡고 인근 건물 화단으로 굴렀다. 주변에 있던 고등학생들과 시민 5~6명이 달려들어 김씨를 붙들었고, 현장에 도착한 경찰이 바닥에 쓰러진 김씨를 체포했다.

경찰 조사 결과, 김씨는 주거가 일정하지 않은 노숙인으로 밝혀졌다. 그는 여성을 폭행한 이유에 대해 "나를 비웃었다고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서울 관악경찰서는 지난 8일 살인미수 혐의를 적용해 김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흉기에 찔린 곽씨는 동작구 보라매병원으로 이송돼 지난 8일 오전 2시부터 7시간에 걸친 수술을 받았다. 오른팔 동맥과 오른손으로 이어진 신경 6개가 절단된 상태였다. 9일 보라매병원 병실에서 만난 곽씨는 "엄지손가락을 뺀 오른손 손가락 4개가 모두 아무 감각이 없는 상태"라며 "병원 측으로부터 재활 기간이 2년 정도 걸리고 운동신경이 70%밖에 못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병원 측은 "원래 수술이 4시간 반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상태가 심각해 밤을 꼬박 새워서 수술을 했다"고 밝혔다.

게임전문지인 '데일리게임' 편집장으로 일하는 곽씨는 "묻지마 폭행을 당하는 여성을 보니, 저도 여동생과 엄마가 있는 입장에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칼에 찔릴 때) 정신이 아득해졌는데 내가 피하면 저 칼로 다른 사람이 다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이 상황을 어떻게든 해결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고 했다.

이 사건이 알려지자 네티즌들은 곽씨를 의인(義人)이라고 불렀다. 이에 대해 곽씨는 "나는 정의의 사도도 아니고 그냥 더 큰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일반 시민으로서 대응했을 뿐"이라며 "함께 도와준 주위 시민들과 학생들에게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곽씨는 수술·입원·치료비 등 수백만원을 혼자 감당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곽씨는 "경찰로부터 '피의자 김씨가 노숙인인 데다 가족이 없어 당장 병원비 등 피해 보상을 받을 방법이 딱히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의사상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강도·절도·폭행·납치 등의 범행을 제지하거나 그 범인을 체포하다가 다치면 의상자(義傷者)로 지정돼 병원비 등을 지원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의상자로 지정되려면 따로 신청을 해서 심의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실제 보상까지 길게는 수개월이 걸린다. 곽씨의 경우 범죄 피해자에 해당하기 때문에 범죄피해자보호법에 따라 치료비를 국가에서 지원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경찰 조사와 법무부 심의를 거쳐야 한다. 어느 경우라도 당장 병원비는 곽씨가 내야 하는 상황이다. 경찰 등 공권력이 해야 할 일을 대신해서 시민을 보호하다가 부상을 당한 의인이 우선 자비(自費)로 치료한 뒤 후불(後拂)로 국가에 청구해야 하는 구조인 것이다. 관악경찰서 측은 "지금 상황에선 곽씨 같은 의상자를 곧바로 도와줄 수 있는 보상 제도가 없는 실정인데, 최대한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중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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