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판사님은 이 글씨가 정말 보이십니까"..대법원 판단은?

김만배 기자 2017. 4. 8.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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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살롱<162>]대법, 1mm 글자로 공지하고 개인정보 판매한 홈플러스에 제동

[머니투데이 김만배 기자, 이태성 기자, 양성희 기자, 한정수 기자, 김종훈 기자] [[서초동살롱<162>]대법, 1㎜ 글자로 공지하고 개인정보 판매한 홈플러스에 제동]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회원들이 지난달 15일 세계소비자권리의 날(WCRD)을 맞아 서울 명동 한국YWCA 연합회 회관 앞에서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보장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사진=뉴스1


1㎜의 크기로 글자가 적혀 있다면, 제대로 읽을 수 있을까요. 이렇게 깨알 같은 글자로 일반 시민들의 개인정보 제공 동의를 받아 영리 목적으로 이용하는 기업들의 행태에 대해 대법원이 제동을 걸었습니다.

대법원 3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7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홈플러스 법인과 도성환 전 사장(61) 등 전·현직 임직원 8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부에 돌려 보냈습니다. 이들의 혐의로 무죄로 판단한 것은 잘못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판결에 사회 각계각층에서는 환영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데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참여연대 등이 속한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성명을 통해 "대법원이 이번 판결을 통해 개인정보 매매의 심각성을 알리고 기업의 개인정보 처리 윤리를 바로 세웠다"며 "지극히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판단 결과"라고 평했습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1㎜ 크기 글씨가) 1·2심 판사들 눈에는 보이고, 대법관들 눈에는 보이지 않았나보다"라는 농담까지 나오고 있는데요. 지금부터 이 사건의 경과와 판결의 의의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편법 동원해 231억 수익…그러나 1·2심은 '무죄'

홈플러스와 도 전 사장 등 관계자들은 2011년부터 2014년 사이 총 10여차례에 걸쳐 경품행사를 진행하고, 여기서 얻은 고객의 개인정보 약 2400만건을 보험사들에 판매해 모두 231억여 원의 수익을 얻은 혐의로 2015년 2월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검찰은 재판 과정에서 홈플러스가 경품행사 응모권의 개인정보 활용 고지사항을 1㎜ 크기로 기재해 알아보기 어렵게 하는 편법을 동원했다고 지적했죠.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유상으로 판매한다는 점 등의 내용이 담긴 고지사항을 너무 작게 적었다는 건데요. 만약 자신의 개인정보가 판매된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렇게 많은 고객들이 경품행사에 응모하지 않았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1·2심에서는 일반 대중들의 상식과는 조금 동떨어진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들에게 무죄가 선고된 것인데요. 법원은 "현행 복권이나 의약품 설명서 등에 같은 크기의 활자가 다양하게 통용돼 있다"며 "정보 제공에 동의하지 않은 응모자들도 상당히 있고 충분히 읽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여 일부러 작게 표시를 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다시 말해 해당 응모권에 "개인정보가 보험회사 영업에 활용될 수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는 등 개인정보보호법상 고지해야 할 사항이 모두 기재돼 있다는 취지입니다. 이에 당시 법조계에서는 지나치게 법리에만 몰두한 판결이라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한 시민단체가 무죄를 선고한 1심 재판부에 1㎜ 크기 글씨로 작성한 항의 서한을 전달하는 일도 있었죠.

대법원 "소비자 오인하게 해…법이 금지한 '부정한 수단'으로 개인정보 취득"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재판부는 "홈플러스와 임직원들이 고객 개인정보를 수집해 판매할 목적으로 경품행사를 진행하면서 경품행사의 주된 목적을 숨긴 채 사은행사를 하는 것처럼 소비자들을 오인하게 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응모권에 약 1㎜ 크기로 개인정보 수집 및 제3자 제공에 관한 내용을 기재하는 방법으로 주민등록번호 등 경품행사와 무관한 개인정보까지 수집하고 제3자 제공에 관한 동의를 받았다"며 "이는 법이 금지한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수단이나 방법으로 개인정보를 취득하거나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동의를 받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사건을 다시 심리하게 될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부에서도 대법원 취지와 같은 결론이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이 사건이 유죄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 것인데요. 통상 대법원이 유죄 혹은 무죄 취지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돌려보낼 경우, 이 판단을 다시 뒤집는 경우는 매우 흔치 않습니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 대해 "개인정보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는 행위로부터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고자 하는 개인정보보호법의 입법 취지를 고려했다"며 "향후 소비자 보호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제 기업들의 '꼼수'는 사라지는 것일까

이처럼 대법원이 기업들의 편법적인 '꼼수 마케팅'에 제동을 걸면서 앞으로는 더 이상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게 되는 것인지 관심이 쏠립니다. 사실 대형마트 등 유통기업들의 경품을 미끼로 한 이 같은 장사는 관행처럼 이뤄져 왔다고 합니다. 국내 5대 보험사가 영업을 위해 최근 3년간 구매한 개인정보가 278만건이라는 통계도 있었는데요. 수수료 명목으로 지불한 비용도 수십억 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국회 차원의 노력도 있었는데요. 행정자치부는 지난달 30일 개인정보처리 서면 동의서 작성시 주요 내용의 가독성을 높이도록 의무화하는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고 밝혔습니다. 개정안은 홈플러스 사건과 같은 문제점을 불식하기 위해 동의 사항을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도록 알리고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현행 규정을 강화하고 중요 내용은 더 명확히 표시하도록 했습니다.

법 개정에 대법원 판결까지. 이제 더 이상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요. 한 법조계 관계자는 "사법부가 뒤늦게나마 옳은 판단을 내린 것 같다"며 "앞으로 이런 일이 뿌리뽑힐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애초에 기업들이 편법과 꼼수를 동원하지 않았다면 이런 혼란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앞으로 홈플러스처럼 작은 글씨로 관련 내용을 고지하고 개인정보를 팔아 넘기는 일을 할 간 큰 기업들이 또 생기지 않기를 바라 봅니다.

김만배 기자 mbkim@mt.co.kr, 이태성 기자 lts320@mt.co.kr, 양성희 기자 yang@mt.co.kr, 한정수 기자 jeongsuhan@, 김종훈 기자 ninachum24@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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