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뉴스 속으로] DJP, 노무현·정몽준 .. 1강2중 구도서 꽃피는 '이종교배'

최민우.추인영 입력 2017.04.08. 01:02 수정 2017.04.08.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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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 다른 세력 연합 때 시너지 효과
"약자 연대 지지하는 건 인지상정"
뻔한 사람끼리 뭉치면 재미 못 봐
2012년 문재인·안철수 연대 약효 미미
개헌연대·반문연대 잠잠해지고
'영호남 통합론' 물밑에서 꿈틀
안철수 지지율 뛰어 부정적 입장
15~16일 후보 등록일이 1차 변곡점

━ 대선 때마다 등장하는 합종연횡

정치권에서 쓰는 ‘이종교배’란 표현은 지역·이념·지지층이 전혀 판이한 두 정치세력이 연합전선을 구축해 단일대오를 형성하는 걸 뜻한다. 대표적 사례는 1997년 DJP 연합이다. 군부 독재와 싸우며 민주화의 상징이었던 김대중(DJ) 후보는 유신 잔당이란 비판까지 들었던 김종필(JP) 전 총리와 의기투합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결과는 첫 정권교체.

2002년에도 정치적 지향점이 상이했던 노무현·정몽준 후보가 단일화를 추진했고, 여론조사를 통해 노 후보를 본선 무대에 올렸다. 비록 투표 전날 정몽준 후보가 ‘지지 철회’를 선언하는 돌발 변수가 일어났지만 노 후보의 승리에 변수는 되지 못했다.

반면 지지 기반이 엇비슷한 주자 간의 합종연횡은 썩 재미를 보지 못했다.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는 우여곡절 끝에 안철수 후보와 단일화에 성공하고, 진보진영 이정희·심상정 후보가 중도 사퇴했으나 결국 분루를 삼키고 말았다. 임동욱 한국교통대 교수는 “동종교배의 약효는 미미하나 이종교배의 파괴력은 배가된다는 건 정치권의 정설”이라고 전했다.
1990년 1월 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이 합당해 218석의 민주자유당 출범. 호남을 제외한 TK·PK·충청의 전격 결합에 ‘3당 야합’이란 비판 쏟아져. 2년 뒤 민자당 김영삼 후보 대선 승리.
◆예측불허라 짜릿한 ‘적과의 동침’=왜 이종교배는 시너지를 발휘할까. 쉽게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무리 권력에 따라 부침하는 것이 정치권의 인심이라지만 바로 직전까지 으르렁대던 이들이 손을 잡는 건 쉽게 떠오르는 그림이 아니다. 정수연 한양대 겸임교수는 “시나리오대로 움직인다면 누가 감동하겠는가. 고정관념을 뛰어넘을 때 인간은 매혹되는 법”이라고 말했다. 뻔한 사람끼리 뭉치지 않고 전혀 예상 밖의 드라마가 탄생해야 확장성이 커진다는 설명이다.

특히 이종교배의 전제조건은 강력한 선두주자가 있을 때다. DJP 연합과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역시 ‘이회창 대세론’과 대적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분석이 있다. 박명호 동국대 교수는 “골리앗에 맞서 싸우는 다윗을 응원하듯 약자의 연대에 지지를 보내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라고 말했다. “오죽했으면 저렇게라도 뭉칠까”라는 일종의 동정론이 ‘적과의 동침’의 파괴력을 키울 수 있다고 했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도 이종교배는 한 차례 시도된 바 있다. 개헌을 매개로 한 ‘개헌연대’가 대표적 케이스다. 더불어민주당을 제외한 보수이념의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중도 성향의 국민의당 등 3당은 지난달 21일 “대선 투표일에 개헌 국민투표도 실시한다”는 데 전격 합의했다. 하지만 제1당인 민주당이 반대한 데다 국민의당 지도부마저 돌아서며 사흘 만에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강성 개헌파인 김종인·손학규·정의화 등의 낮은 지지율이 ‘개헌연대’를 추동하기엔 역부족이었다는 평가였다.

1997년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는 보수 진영의 자유민주연합 김종필 총재 및 박태준 전 국무총리와 연합전선 구축. 조건은 공동정부 구성과 내각제 개헌. 김대중 후보 대선 승리하며 첫 정권교체.
개헌연대가 물 건너가자 뒤 이어 ‘반문(反文)연대’가 다시 속도를 내기도 했다. 바른정당 김무성 의원과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가 이를 논의했고, 김종인 전 민주당 비대위 대표와 정운찬 전 총리 등이 회동하면서 분위기를 타는 듯했다. 하지만 “특정인을 반대하기 위한 연대는 명분이 약하다”는 지적이 나오자 외형적으론 일단 사그라든 상태다.

최근 물 밑에서 꿈틀대는 새로운 논리는 이른바 ‘영호남 통합론’이다. 5개 정당 대선후보가 결정된 뒤 주로 국민의당 쪽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호남에 기반을 둔 국민의당의 안철수 후보와 영남을 본거지로 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 간의 3자 단일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국민의당 관계자는 “지금까지 한국 정치의 암적 요소였던 ‘지역주의’라는 유령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 영호남 통합으로 결자해지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는 “반문재인 연대만으론 설득력이 약하자 명분을 쌓기 위해 지역 통합론이 등장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일각에선 97년 DJP 연합 때와 현재의 정치상황이 엇비슷하기에 “이종교배가 일어날 수 있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일종의 평행이론이다. 97년 11월 국민회의 한광옥 부총재와 자민련 김용환 사무총장은 합의문을 발표하며 “99년 안에 내각제 개헌을 완료한다”고 밝혔다. 개헌을 고리로 연대를 꾀했던 셈이다. 97년의 여권 분열, 대세론 후보 아들 관련 의혹 등도 최근 정국과 닮은꼴이다. 연대를 위한 각종 이론과 명분이 제기되는 걸 두고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단일화를 추진하는 입장에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일 것”이라고 했다.

2002년 이념적 지향점이 달랐던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와 국민통합 21 정몽준 후보 간의 단일화 추진. 여론조사 결과 노무현 선출. 대선 투표 전날 정몽준은 단일화 파기했으나 노무현 후보 당선.
◆안철수 상승세가 변수=보수 중도 후보 간 공동전선을 형성하려는 움직임에 문재인 후보 측은 잔뜩 경계심을 품고 있다. 이종교배의 중심이 될 가능성이 큰 안철수 후보를 향해 연일 “적폐 세력과 연대하겠다는 말인가”라며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안철수 후보는 “정치공학적인 연대는 하지 않는다. 탄핵 반대세력에게 면죄부 주는 연대, 특정인을 반대하기 위한 연대도 없다”며 부정적 입장을 피력했다. 여기에 홍준표·유승민 후보마저 안 후보를 향해 얼치기 좌파, 민주당 2중대 운운하며 “단일화는 말도 안 된다. 완주하겠다”는 뜻을 강하게 비추고 있다.

이 같은 기류가 형성되자 “올 대선에서 이종교배는 사실상 물 건너간 거 아닌가”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우선 물리적 시간이 짧다. DJP 연합은 1년여의 줄다리기 끝에 결실을 보았다.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역시 담판과 국민경선·여론조사 등 구체적인 방안을 놓고 몇 개월을 소비했다. 단일화에 익숙한 진보 진영이 아닌 보수 진영이 주체라는 점도 난관이다. 또 호남에 주도권을 내주는 것을 영남이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무엇보다 “최대 걸림돌은 무섭게 치고 올라선 안철수의 지지율”(김형준 명지대 교수)이라는 분석이다. 이종교배란 기본적으로 ‘1강 2중’의 구도여야 가능하다. 합치지 않고선 더 센 상대방을 무찌를 수 없기에 적과 손을 맞잡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안 후보는 여론조사만 놓고 보면 다자구도라도 문 후보와 해볼 만한 싸움이 됐다. 보수 후보와 합치기도 어렵지만 힘겹게 합친다 한들 더 나아지리라는 것을 보장할 수 없다. 자칫 산토끼(영남) 더 잡으려다 집토끼(호남)만 빠져 나갈지 모른다. 국민의당 문병호 최고위원은 “3자든 5자든 해볼 만한데 굳이…”라고 말했다. 김만흠 원장은 “안철수는 이미 영남에서 지지를 받고 있는데 영남 후보와의 연대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다. 홍준표·유승민이 스스로 소멸하길 기다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불씨는 여전히 남아=그렇다면 이번 대선은 다자 대결로 종착역까지 그대로 치달을까. 아직은 지지율 추이에 따라 이합집산의 가능성이 살아 있다는 분석도 있다. 1차 변곡점은 후보 등록일(15~16일)이다. “홍준표 찍으면 문재인 된다”고 부르짖는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도 “급할 거 없다. 등록일까진 현재 구도로 갈 것”이라며 등록일 이후의 변화 가능성을 시사했다.

결국 칼을 쥐고 있는 건 안철수 후보다. 바른정당 핵심 관계자는 “안 후보는 착각하면 안 된다. 여전히 이번 대선은 ‘문재인이냐 아니냐’ 구도다. 비(非)문재인 표를 싹싹 긁어 모아야 간신히 이길 수 있다. 반짝 지지율 상승에 취했다간 큰 코 다친다”고 조언했다. 명지대 김형준 교수는 “97년 대선은 이인제 때문에 이회창이 진 게 아니라 이인제를 품지 못해 이회창이 진 것”이라며 “아무도 가 보지 못했던 길을 택하는 상상력과 용기를 가져야 대권에 다다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S BOX] 1997년 DJP 연합, 1년간 막후협상 끝에 성사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총재=“김 총재님,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저를 좀 도와주십시오. 간절히 부탁합니다.”

▶자유민주연합 김종필 총재=“그러잖아도 도와드리려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총재님(DJ)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수모와 박해를 당한 사람 아닙니까. 내가 그 원(寃)과 한(恨)을 다 풀어드리겠습니다.”

1997년 10월 27일 오후 8시30분. 청구동 JP 자택 거실에 들어선 DJ는 인사를 하자마자 바닥에 주저앉아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그리고 김 총재는 화답했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2015년 중앙일보에 연재한 증언록 ‘소이부답’에서 밝힌 내용이다. 사실 ‘대선후보 단일화 합의문’은 이미 이틀 전에 작성됐다. 국민회의 한광옥 부총재와 JP 측의 자민련 김용환 사무총장이 ▶대통령 후보는 김대중, 국무총리는 김종필 ▶99년 12월까지 내각제 개헌 완료에 합의했다.

이날 청구동 회동에선 합의문에는 쓰지 않은 ‘비밀 약속’이 추가됐다. JP가 “국민 화합 차원에서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을 세워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DJ는 예산 200억원을 투입해 기념관을 착공하면서 약속을 지켰다.

DJP 연합이 성사되기까지는 꼬박 1년이 걸렸다. 한광옥-김용환 양측은 96년 11월 1일 비밀리에 이뤄진 목동 회동에서 “DJ가 내각제 개헌을 약속하면 양당이 단일후보를 낸다”고 합의했다. 1년간 치열한 신경전과 막후 협상 끝에 양측은 97년 11월 3일 DJP 후보 단일화를 공식 발표했다. 추인영 기자 」

최민우·추인영 기자 minwo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