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다, 세상 보다]이제 다신 못 볼영화 '타이타닉'

권오섭 영화평론가 2017. 4. 7.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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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재난은 불행한 일이고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지만 ‘재난 영화(disaster film)’는 인기 있는 영화 장르다. 1901년 5분짜리 무성영화 <Fire!>가 나온 이래 100년이 넘도록 각종 천재지변과 사건사고가 영화로 만들어져 많은 관객의 사랑을 받았다. ‘강 건너 불구경’이란 말도 있듯이 인간은 타인의 불행에 일정 부분 호기심과 심지어 묘한 쾌감까지 느낀다. 그런 심리를 재난 영화가 교묘하게 이용한다고도 하지만 타산지석의 교훈도 얻고 무엇보다 재난 속에 피어나는 따뜻한 인간애와 불굴의 정신력에 감동을 받기도 하기에 이 장르의 미래는 여전히 밝아 보인다.

재난 영화 중 바다에서 일어나는 이른바 ‘해난 영화’는 망망대해라는 고립된 공간 설정 때문인지 유독 흥행작이 많았다. 1972년 진 해크먼과 어니스트 보그나인 등 5명의 오스카 연기상 수상자가 대거 출연한 <포세이돈 어드벤쳐>는 재난 영화가 수지 맞는 장사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해난 영화다. 신년 연휴를 즐기러 뉴욕-아테네를 운항하는 크루즈에 탑승한 다양한 인간군상이 극한의 상황에 내몰리는 아비규환을 그린 이 영화는 1970년대 손에 꼽히는 ‘돈 많이 번 영화’가 됐다. 이 영화와 <타워링>으로 ‘재난의 대가’라 불린 제작자 어윈 알렌은 내친 김에 1979년 <포세이돈 어드벤쳐> 속편까지 제작했지만 흥행 참패를 기록해 본인과 제작사에 ‘실제 재난’을 일으키기도 했다.

해난 영화의 성공사는 ‘포세이돈’에서 끝나지 않는다. 1997년 2억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제작비로 초미의 관심을 모았던 영화 <타이타닉>이 재난 영화의 역사를 다시 쓴 것이다. 제임스 캐머런 감독은 일약 작품성과 대중성, 두 마리의 토끼 사냥에 성공했고 자신이 연출한 <아바타>(2009)를 더해 ‘역사상 가장 돈을 많이 번 영화’ 두 편을 만든 감독이 되었다.

<타이타닉>이 세계적인 사랑을 받은 것은 비극적인 재난에 아름다운 로맨스를 녹여냈기 때문이었다.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와 케이트 윈즐릿의 이른바 ‘타이타닉 백허그 포즈’는 셀린 디온이 부른 주제가 ‘My Heart Will Go On’과 함께 전 지구를 휩쓸었다. <타이타닉>은 이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11개 부문을 수상해 <벤허>(1959)와 함께 가장 많은 오스카 트로피를 받은 영화가 되었고 영화사 최초로 10억달러의 매출을 올려 ‘빌리언달러 무비’란 칭호도 얻었다.

그런 <타이타닉>을 얼마 전 아무 생각 없이 다시 보다 낭패를 당했다. 영화 중반 배가 빙산에 부딪쳐 긴장감이 고조될 때쯤 갑자기 심장이 쿵쾅거리더니, 배가 기우는 장면에 그만 영화를 끌 수밖에 없었다. 100년 전 호화유람선 타이타닉호에 3년 전의 여객선 세월호가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친·인척이나 지인이 배에 타지 않았어도 국민이라면 대부분 안타깝고 참담했던 2014년 4월의 그날들을 기억한다. 기실, 타이타닉호 이후 많은 배들이 희생자와 함께 바다와 강에 가라앉았고 우리도 남영호와 서해페리호 같은 대형 침몰사고를 겪었지만 유독 세월호가 우리에게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건 3년 전 그날, 그 배가 바닷속으로 잠기는 걸 모두가 실시간으로 TV와 인터넷,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생생히 지켜 보았기 때문이다.

항공모함과 잠수함이 바다를 누비고 인공지능 로봇이 체스와 바둑을 두는 과학기술을 갖고 있는 우리 인간이 서서히 침몰하는 배에서 아이들을 구조하지 못했다는 현실에 많은 사람들이 충격과 죄의식에 빠졌다. 3년 만에 바다 위로 올라와 누워 있는 흉측한 그 배를 보고 있자니 그간 잘 낫지도 않던 상처가 곪아 터지는 것 같다. 평소에도 창문이 많은 배만 보면 가슴이 턱 막히고 눈물이 핑 도는데 어쩌다 <타이타닉>을 볼 생각을 했는지 내 자신이 비루하고 한심하게 느껴진 날이었다.

<권오섭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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