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강제노역 할머니 "굶주림 속 일하며 돌아온 건 욕·발길질"

2017. 4. 7.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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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죄받아야 눈감을 수 있다" 미쓰비시 상대 2차 손배 소송서 피해진술

(광주=연합뉴스) 장아름 기자 = "재판장님,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기어코 사죄를 받고 보상받게 서둘러주십시오. 그래야 제가 눈을 감고 죽겠습니다."

7일 오후 광주지법 403호 법정에서 제11민사부(김상연 부장판사) 심리로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한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의 2차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두 번째 변론기일이 열렸다.

이날 증인으로 출석한 양금덕(86) 할머니는 73년 전 2차 소송 원고 할머니들과 함께 겪었던 상황에 대해 "기억이 생생하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며 울분을 토했다.

돈도 벌게 해주고 중학교에도 보내주겠다는 말을 듣고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항공기제작소에 도착한 소녀들은 중학교 대신 철판을 자르는 장비들이 늘어선 강당으로 인도됐다.

소녀들은 눈을 뜨면 군대처럼 4열로 맞춰 작업장으로 가 종일 비행기 부속이나 알루미늄 철판의 녹을 알코올로 닦아내거나 완성된 비행기에 시너를 부은 페인트를 칠해야 했다.

눈에 페인트나 알코올이 튀어 물로 씻어내기라도 하려 하면 일본인 감독관들이 발로 걷어차기 일쑤였고 손이 갈라져도 병원에도 갈 수 없었다.

가장 큰 고통은 배고픔이었다.

배식 담당자들은 소녀들이 썩은 감자를 넣은 밥을 많이 집어 먹을까 봐 손등을 탁탁 쳤고, 일본인 작업자들이 먹고 버린 것을 주워 먹으려 할라치면 운동화 발로 흙바닥에 뭉개 먹지 못하게 했다.

방청석 맨 앞줄에서 양 할머니의 증언을 듣던 오길례씨 남동생은 죽은 누이가 겪었을 고초에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이어 2차 소송 당사자인 김재림(87) 할머니의 피해 증언이 이어졌고 방청석에서는 탄식과 숨죽여 눈물을 흘리는 신음이 들려왔다.

소작농 집안의 7남매 중 넷째딸이었던 김 할머니는 "일본에 가면 배부르게 밥 먹여 주고 공부시켜준다"는 말을 믿고 친척 언니와 일본에 갔지만, 월급도 공부도 없이 학대에 가까운 중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페인트에 섞는 시너와 녹을 닦는 알코올의 독한 냄새 때문에 메스껍고 머리가 지끈지끈했지만 어린 소녀들은 마스크는커녕 장갑 한 짝도 없이 일해야 했다.

"조금만 일을 못 해도 욕을 하고 손이 올라갔다. 어린 우리에게 위로의 말 한마디라도 해줬더라면 그렇게까지 서럽진 않았을 텐데"라는 김 할머니의 어린아이 같은 한마디에 원고 측 변호인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고 재판을 진행하던 판사의 코끝도 빨개졌다.

소녀들은 밤에도 마음 편히 한숨 자기 힘든 날을 보내야 했다.

작은 소지품 주머니에 신발을 담아 머리맡에 베고 자다가 공습 또는 공습훈련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면 하늘이 훤히 보이는 이름뿐인 굴(벙커)로 들어가야 하는 날들이 태반이었다.

그러다가 1944년 12월 7일 도난카이 지진이 일어났다.

김 할머니는 발목만 밖에 나온 상태로 무너진 건물 잔해에 깔렸다가 몇 시간 만에 간신히 구조됐지만, 함께 손을 잡고 있던 친척 언니는 세상을 떠났다.

김 할머니는 "손을 꼭 잡고 있었는데 건물이 쏟아지기 시작하면서 손을 놓쳤다"고 몇 번이나 말하며 안타까워했다.

귀국해서도 '위안부' 오해 때문에 자녀들이 서른이 넘을 때까지 일본에 강제 동원된 이야기를 하지 못했던 김 할머니는 "이제 90줄인 저희가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죽기 전에 우리의 억울함에 대해 보상을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두 할머니 진술이 끝날 때마다 판사가 미쓰비시 측 소송대리인에게 반대심문을 할 것인지 물었으나 반대심문은 이뤄지지 않았다.

미쓰비시중공업 강제 동원 피해 할머니들은 총 3차에 걸쳐 국내 법원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날 열린 2차 소송은 김재림, 양영수(86·여), 심선애(87·여) 할머니와 숨진 징용 피해자 오길례씨의 동생 오철석(81)씨 등 4명이 일본 미쓰비시 중공업에 2014년 2월 6억원 상당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이다.

양 할머니는 앞서 박해옥·김성주·이동련 할머니, 피해자 유족 김중곤씨와 함께 1차 소송을 제기해 1·2심에서 승소했으며 사건은 현재 미쓰비시 측의 상고로 대법원에 계류돼 있다.

김영옥 할머니와 숨진 피해자 최정례씨의 조카며느리 이경자씨가 제기한 3차 소송은 지난해 11월 첫 공판이 열렸고 오는 24일 다음 변론을 앞두고 있다.

2차 소송의 다음 재판은 다음 달 19일 오후에 열린다.

areu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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