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고 사인만 보내고.. 정부에 공 떠넘기는 韓銀

금원섭 기자 2017. 4. 7.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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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비율 2015년 기준 169%.. OECD 평균보다 40%P나 높아"
"향후 수출 낙관 못해" 잇단 경고
다양한 통화정책 수단 가지고도 정부 정책에만 의지하는 모습
"유체 이탈 화법 쓰나" 지적도

한국은행이 최근 경제 상황에 대해 잇따라 '경고등'을 켜고 있다. 한은은 6일 국회 민생경제특별위원회에 제출한 '가계부채 상황 점검' 보고서에서 "가계부채 증가가 소비와 성장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가 커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앞서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 5일 "내수, 특히 위축된 소비를 회복시키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긴요하다"고도 했다. 한은의 경고는 통화정책 주체로서 당연한 역할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가계부채 문제의 경우 정부의 부동산 경기 진작에 보조를 맞춰 금리를 줄곧 내려왔다는 점에서 한은에도 일단의 책임이 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남의 일인 듯 '유체 이탈' 화법을 구사하는 것은 책임 있는 중앙은행의 자세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가계부채 비율, OECD 평균보다 40%포인트 높아

한은은 이날 국회에 제출한 '가계부채 상황 점검' 보고서에서 "우리나라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69%(2015년 말 기준)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129.2%)보다 약 40%포인트 높다"고 밝혔다. OECD 주요국 가운데 영국(149.5%), 미국(111.6%), 독일(92.9%) 등 선진국은 우리나라보다 이 비율이 크게 낮다. 빚 갚느라 다른 데 쓸 돈이 줄어든 가계가 우리나라에 많다는 얘기다.

또 빚의 증가 속도를 보면 OECD 평균치를 훨씬 앞지른다. 2010~2015년 사이 5년 동안 OECD 평균으로 보면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0.5%포인트 감소했다. 미국(-22.6%포인트), 영국(-11.8%포인트), 독일(-7.4%포인트) 등에선 크게 떨어졌다. 반면 우리나라는 이 기간 21.4%포인트나 올랐다.

우리나라의 '명목 GDP(국내총생산) 대비 가계부채 비율(91%, 2015년 말 기준)'도 OECD 평균(70.4%)보다 훨씬 높다. 미국(80.8%), 독일(54%) 등은 이 비율이 훨씬 낮다. 우리 경제가 몸집에 비해 짊어진 빚이 지나치게 많다는 뜻이다.

한은, 연일 '경고등'

한은은 이날 "가계부채가 이미 소비를 제약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작년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에서 원리금 상환에 부담을 느끼는 가구가 전체의 70%이며, 이 가운데 75%는 소비와 저축을 줄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또 올 2월 상품 수출이 전년 동월 대비 23% 급증했다고 한은이 발표한 지난 5일, 이 총재는 "향후 수출 여건을 낙관할 수만은 없다"며 수출 호조에 따른 기대감에 제동을 걸었다. 앞서 지난달 30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현안보고'에서 한은은 "미국 금리 인상이 국내 금리 상승 압력으로 작용, 소비와 투자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소지가 있다"고 했다. "보호무역주의 확산, 한중(韓中) 교역 여건 변화 등 요인으로 성장 경로의 불확실성이 높다"고도 했다.

"중앙은행, 제 역할 해내야"

통상 경제정책은 재정과 통화, 2개 축으로 굴러간다. 그런데 한 축을 담당한 한은이 적극적인 자기 역할을 찾기보다 정부에 숙제를 미루는 듯한 행보를 계속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 총재가 지난 5일 "수출 낙관 못 한다"면서 내수 진작 정책으로 '서비스업 주도로 일자리 만들기'와 '서비스업 규제 완화'를 제안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이런 정책들은 주로 정부 몫이다. 한 민간 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이 총재가 '유체 이탈' 화법을 구사한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이에 대해 한은 관계자는 "기준금리를 올리자니 가계부채 상환 부담 확대와 경기 둔화가 걱정되고, 기준금리를 내리자니 가계부채 급증과 자본 유출이 발생할 수 있어 통화정책에 제약이 크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한은이 기준금리 조정 이외에 다양한 통화정책 수단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 적극 활용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한은이 시장에 '시그널(signal·신호)'을 내보내 경제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며 "한은이 정부에 떠미는 듯한 모습만 보이지 말고, 스스로 어떤 조치를 내놓을 것인지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 경제가 과다한 가계부채 문제와 저성장 늪에 빠진 데는 한은의 책임도 크다. 이 총재 취임 후 한은이 기준금리를 5차례나 내렸지만, 경제는 여전히 침체 상태고, 가계부채 급증만 낳았다. 한 민간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이 총재가 박근혜 정부 실세였던 최경환 전 부총리의 '부동산 경기 띄우기'에 휘둘린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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