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도 '녹조라테' 드실래요?

2017. 4. 6.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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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정부의 시험 방류 ‘꼼수’에 신음하는 4대강…
대선 의제에서도 밀려나

물 빠진 세종보는 펄로 가득하고 붉은깔따구가 득시글하다. 김종술 제공

버려진 강변에 소가 버려졌다. 말라붙은 소똥에 파리들이 들러붙었다. 썩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죽어 버려진 소 옆으로 공사용 덤프트럭이 먼지를 내며 지나갔다. 도수로를 이용해 금강 물을 보령댐으로 보내는 공사 현장이다. 덤프트럭 운전기사가 소 옆에 차를 세웠다. 그는 운전석에서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소를 내려다보았다. 이곳에만 소 두 마리가 버려졌다.

3월29일 오전 9시30분 충남 공주시 우성면 옥성리. 공주보 하류 2km 지점 강변. 이명박 정부의 4대강사업 이전만 해도 농토였던 곳이다. 농민들은 하천부지를 일궈 배추, 수박 등을 심어 가꿨다. 4대강사업 이후 강변은 수변공원 명목으로 조성됐다. 20만 평에 이르는 농토를 걷어냈다. 그 자리에 억새와 느티나무 따위를 심었다. 이식된 느티나무는 대부분 말라 죽었고, 강변은 쓰레기투성이로 썩고 있다. 방치된 ‘공원’에는 잡풀이 무성하다. 죽은 나무들은 목이 잘린 채 말뚝처럼 박혀 있을 뿐이다. 4대강사업 뒤 5년, 강변은 죽은 소를 무심히 내다버리는 ‘죽음의 땅’이 되었다. 공사 이전부터 강변에 자생해온 버드나무들만이 죽지 않고 살아남아 의연하게 금강을 내려다본다. 4대강사업으로 만들어진 수변공원은 전국에 350곳이 넘는다. 들인 돈만 3조원 이상이고, 해마다 유지 관리에 400억원 넘게 쏟아부어야 한다.

버려진 강변, 버려진 소

공주보 인근에 죽은 소가 버려져 있다(위쪽). 근처에는 시민들이 내다버린 쓰레기가 잔뜩 쌓여 방치돼 있다. 전진식 기자

4대강사업은 국토에 깊은 자상을 남겼다. 칼날 같은 삽날은 강물과 강변을 깊게 찔렀다. 16개 보는 강줄기에 ‘동맥경화’를 일으키는 치명적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잘린 강은 호수가 되었고, 호수에서나 발견되던 큰빗이끼벌레가 무시로 창궐한다. 사업비 22조2천억원이 전부가 아니다. 정부와 한국수자원공사의 부채는 이자를 더하면 10조원을 넘는다. 모두 국민의 부담으로 고스란히 남았다. 대선 연속기획으로 마련한 제1154호 표지이야기 ‘4대강 살릴 수 있습니까’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4대강사업의 적폐를 다시 물 위로 밀어올려야 한다는 취지였다.

3월20일 국토교통부·환경부·농림축산식품부는 ‘댐-보-저수지 연계 운영 방안’을 발표했다. 국무총리 소속 4대강사업 조사평가위원회에서 권고한 연구용역 결과를 발표하는 형식이었다. 주변 지하수에 영향을 주지 않는 수위까지 물을 대량으로 장기간(74~121일) 흘려보내면 일부 녹조가 개선된다는 것이다. 우회적으로 사업 실패를 시인한 셈이고, 정권 교체를 의식한 ‘꼼수’였다. 환경단체들이 일제히 정부를 비판하는 이유다.

환경운동연합은 정부 발표 뒤 성명을 내어 “용도 없는 보를 유지하기 위해 당장 눈앞에 보이는 녹조만 내려보내겠다는 얕은수에 불과하다. 4대강사업을 추진하고 그 피해에 눈감았던 정부기관들로 구성된 단위인 ‘댐·보 연계운영중앙협의회’에서 보 개방 여부를 다루니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 판단이다. 수문 전면 개방을 위해서는 관련 단위를 새롭게 구성해야 하고, 본격적인 논의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2월부터 시작된 보의 시험방류 또한 문제투성이다. 갑작스럽게 물을 대량 방류함으로써 물고기와 조개 등이 폐사하는 일이 벌어졌다. 정부의 시험방류가 어류 산란기(4~5월)를 앞둔 시점에 이뤄진 것 또한 심각하다. 수생태계를 크게 교란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산란기 어류의 집단폐사가 우려된다. 상류에 있는 보의 수문을 개방하더라도 하류의 보 수문이 닫혀 있어 오염된 흙이 그대로 하류에 퇴적되는 부작용도 크다. 금강 세종보의 경우 4대강사업 뒤 5년 남짓 만에 물 빠진 강바닥이 완전히 드러났다. 오염된 펄 곳곳에 죽은 물고기와 조개가 가득했다. 수문을 닫아 물을 가두면 강바닥에 가라앉은 녹조 사체가 다시 물 위로 떠오르는 상황도 반복된다.

수상공연장, 5년 동안 한 차례 사용되고 방치

백제보 수문의 오염된 강물(위쪽). 세종보 인근 강바닥에 각종 시설물들이 널브러져 있다. 김종술 제공

현장에서 확인한 공주보 상류 수상공연장도 수질 개선과 거리가 멀었다. 2012년 만들어진 뒤 한 차례 사용하고 방치된 곳이다. 삽으로 물속 펄을 퍼내니 붉은깔따구와 실지렁이들이 꿈틀댄다. 환경부 지정 수생태 4급수 오염지표종이다. 4급수는 수돗물(생활용수)로 쓸 수 없을 만큼 오염된 물이다. 붉은깔따구와 실지렁이가 득시글한 것은 물이 썩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기자와 현장을 동행한 김종술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는 “정부는 4대강사업을 할 때도 일방통행식으로 밀어붙였다. 지금도 보 수문 개방을 하면서 일방적으로 진행한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가 계속 발생하는 것”이라고 했다.

4대강사업과 관련해 가장 일관되고 강한 의지를 드러낸 후보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다. 그는 3월28일 부산에서 열린 TV토론회에서 말했다. “4대강사업은 정상이 아니었고 정권이 교체되면 제대로 규명해 법적 책임을 넘어 손해배상까지 청구하겠다.” 반대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3월30일 ‘식수 정책’을 발표하면서 4대강사업을 추어올렸다. 그는 “4대강의 보 때문에 녹조가 생겼다고 얘기하는 것은 무지의 소치다. 4대강사업으로 인해 국가적 재난인 홍수와 가뭄이 없어졌다. 4대강사업은 잘한 사업이다”라고 했다.

이번 대선에서 여전히 4대강사업을 비롯한 환경 의제는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후보들의 정책선거 자체가 이뤄지지 않는 이유도 크다. 3월1~31일 9개 종합일간지에서 4대강사업을 한 차례라도 언급한 기사(칼럼 포함)는 70개 정도에 불과하다.

4대강 관리에만 정부 예산 1년에 1조원

환경운동연합은 3월17일 19대 대통령 당선자가 실행해야 할 환경정책을 발표했다. 4대강사업과 관련해서는 16개 보의 수문을 즉시 개방해야 한다는 점을 앞세웠다. 수질 악화와 녹조 예방을 위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조처다. 이후 보 철거 및 복원 특별법 제정도 제안했다. 4대강사업 전반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청문회도 필요하다. 4대강사업으로 인한 관리 예산 문제 또한 시급히 재검토돼야 한다. 해마다 보 관리(1900억원), 수자원공사 금융비용 지원(3400억원), 지방 하천 정비(7천억원)에 드는 정부 예산만 1조원을 훌쩍 넘는다. 중·장기적으로는 댐·보·저수지·하굿둑 운용의 전면 재검토와 ‘유역 단위 물 관리’ 법률과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게 환경운동연합의 정책 제안이다.

3월28일 오전 9시 세종보 상류 한두리대교 아래 요트 선착장. 2011년 9월 세종보 완공 행사 당시 요트를 띄우고 화려한 수상공연을 펼친 곳이다. 이후 선착장은 한 차례도 이용되지 못했다. 선착장 들머리에는 물놀이·레저 금지구역을 알리는 표지판이 세워져 출입 자체를 막았다. 세종보에서 백제보까지 40여km 거리. 4대강사업 당시 강변길을 따라 만들어진 자전거도로가 이어져 있다. 이날 자전거를 타는 시민은 2명밖에 보이지 않았다. 올여름에도 4대강은 ‘녹조라테’로 뒤덮일 가능성이 높다. 시간이 많지 않다.

세종·공주·부여=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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