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쓰기'식 회의 진행이 박근혜 발목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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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자(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빼곡하게 기재한 안종범의 수첩 등에 의하면 피의자가 최서원(최순실) 등과 공모해 본건 범행에 이르게 되었음이 입증됩니다."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안 전 수석은 박 전 대통령의 모든 지시사항을 수첩에 기재했고, 특히 박 전 대통령이 해결을 부탁한 민원은 실행 경과와 성사 여부까지 꼼꼼히 점검해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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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자(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빼곡하게 기재한 안종범의 수첩 등에 의하면 피의자가 최서원(최순실) 등과 공모해 본건 범행에 이르게 되었음이 입증됩니다.”
“소위 ‘문화계 블랙리스트’ 관련 범행과 관련하여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수첩 등에 의하여 이 부분 범행 또한 입증됩니다.”
지난달 27일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가 박근혜(65) 전 대통령을 상대로 구속영장을 청구할 때 ‘구속을 필요로 하는 사유’에 적시한 문구다. 서울중앙지법 강부영 영장전담 판사는 이를 받아들여 “주요 혐의가 소명되고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어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이 인정된다”며 영장을 발부했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의 구속수감은 재직 시절 특유의 ‘받아쓰기’식 회의 운영과 직결돼 있다. 박근혜정부 내내 국무총리, 장관들과 함께한 국무회의는 물론 청와대 수석비서관들과 함께한 수석비서관회의도 참석자들이 전부 박 전 대통령 발언을 수첩에 열심히 적는 모습으로 국민들의 비웃음을 샀다. 모름지기 회의란 서로 의견을 내고 토론하는 것인데 박근혜정부 들어 모든 회의가 ‘대통령 말씀 받아쓰기 경연장’으로 전락했다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수석. 세계일보 자료사진 |
검찰이 17권, 특검팀이 39권을 각각 확보한 것으로 알려진 ‘안종범 수첩’은 검찰 관계자들이 사초(史草)에 비유했을 정도로 내용이 정확하고 구체적이다.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안 전 수석은 박 전 대통령의 모든 지시사항을 수첩에 기재했고, 특히 박 전 대통령이 해결을 부탁한 민원은 실행 경과와 성사 여부까지 꼼꼼히 점검해 표시했다.
검찰과 특검의 수사 결과 박 전 대통령이 안 전 수석에게 지시한 민원은 대부분 비선실세 최순실(61·〃)씨가 제기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씨가 박 전 대통령에게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 더블루K가 대기업으로부터 일감을 얻을 수 있게 해달라고 조르면, 박 전 대통령이 이를 안 전 수석에게 전달해 실행에 옮기도록 독촉하는 구조였다. 온 국민의 살림을 보살펴야 할 대통령이 특정한 한 사람의 민원만 해결해주는 존재로 전락한 셈이다.
지난해 지병으로 타계한 김영한 전 민정수석이 남긴 수첩도 비슷하다. 김 전 수석은 대통령이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들은 지시사항과 청와대 비서실장이 주재한 회의에서 들은 지시사항을 엄격히 구분해 기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기춘(78·〃) 전 비서실장이 ‘문화예술계 좌파를 척결해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한 내용이 고스란히 수첩에 적혔고, 이는 김 전 실장과 박 전 대통령이 직권남용·강요 혐의로 구속되는 데 결정적 작용을 했다. 소통과 수평적 토론은 사라지고 불통과 일방적 지시만 가득했던 박근혜정부의 받아쓰기식 국정 운영이 되레 부메랑이 돼 박 전 대통령의 뒷통수를 때린 것이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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