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누구를 노린 테러인가?

하준수 2017. 4. 5.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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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제2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이하 '페테르부르크'로 함)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3일 오후 2시 40분. 대낮 도심을 달리던 지하철 객차 안에서 사제 폭발물이 터졌다. 14명이 숨지고 51명이 부상했다. 중상자가 많아 사망자 수는 늘어날 수도 있다.

지난 1955년 첫 운행을 시작해 하루 이용객 수가 200만 명 정도인 페테르부르크 지하철에서 발생한 첫 테러이다.

테러 용의자 드잘릴로프


러시아 수사당국은 4일 이번 테러 용의자가 키르기스스탄 출신의 22살 아크바르존 드잘릴로프라고 밝혔다. 지하철 감시 카메라에 드잘릴로프로 추정되는 청년의 모습이 포착된 점, 폭발이 일어난 뒤 다른 지하철역에서 발견된, 또 다른 폭발장치가 든 가방 안에서도 그의 유전자 흔적이 발견됐다는 점 등이 그 이유이다. 수사당국은 그가 자폭 테러를 벌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키르기스스탄 오슈 출신의 드잘릴로프는 6년 이상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거주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2011년에 러시아 국적을 취득한 그는 2015년에 현지 일식당에서 요리사로 한동안 일한 뒤 이후 종적을 감췄다고 지인들은 전했다. 현지 언론은 이 기간에 그가 이슬람 극단주의 진영에서 테러리스트 훈련을 받았을 수도 있다고 추정했다.

테러 용의자는 이미 죽어서 말이 없다. 사건 직후 이번 테러의 배후를 자청하는 테러 조직도 아직 없다. 대체 무엇 때문에 누구를 노린 테러였을까?

푸틴을 노렸나?

3일밤 푸틴 대통령이 테흐놀로기체스키 인스티투트역에 들러 헌화하는 모습


이번 테러는 공교롭게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루카센코 벨라루스 대통령과 회담하기 위해 페테르부르크를 방문한 시점에 일어났다. 오비이락인가, 아니면 푸틴을 노린 것일까?

우리나라에서도 대통령의 일정은 기밀 사항이다. 하물며 러시아 대통령이야 말할 필요가 없다. 푸틴의 방문 일정은 하루 전까지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이런 기밀사항을 22살 키르기스스탄 청년이 무슨 수로 알아냈을까?

푸틴이 페테르부르크를 방문하면 도심 서쪽에 위치한 콘스탄틴 궁에 있는 대통령 별장에 보통 머문다. 대통령 별장이니 경비가 이중 삼중으로 삼엄하다. 게다가 이곳은 이번 테러가 발생한 곳에서 25km나 떨어져 있다.

푸틴을 노렸다기 보다, 푸틴에게 보내는 정치적 메시지라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페테르부르크는 푸틴의 고향이자 푸틴이 즐겨 찾는 곳으로, 외국 정상들을 초청해 정상회담도 자주 갖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번 테러의 노림수에 대해 여러가지 분석들이 나오고 있는데, 사실 러시아에 대한 테러 경고는 이미 시리아 내전에 개입한 2015년 하반기부터 시작됐었다. 시리아에서 러시아가 공습을 시작한 이래 무수한 무슬림들이 죽어나가면서, 러시아 주요 도시들에 대한 피의 복수가 공개된 바 있다. 그런데 하필 페테르부르크인가?

"페테르부르크가 상대적으로 쉽다?"

센나야 플로샤디 역 광장에 헌화된 꽃다발들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 지하철에서는 2000년대 여러 차례 테러가 발생해 수백 명의 사상자가 난 바 있다. 2000년대 발생한 모스크바 지하철 테러는 주로 러시아군의 캅카스 지역 이슬람 반군 진압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이뤄졌다. 그래서 그런지 모스크바 지하철의 테러 대비 태세는 양호한 편이다.

특히 시리아 내전 개입 이후 러시아가 이슬람 세력의 테러 0순위로 떠오르자, 모스크바 지하철에서는 검문검색이 대폭 강화됐다. 중앙아 출신의 젊은이들은 수시로 검문을 당했고 지하철 승강장 안에서는 정복 경찰이 끊임없이 순찰을 돈다.

그런데 러시아 제2의 도시인 페테르부르크 지하철은 사정이 달랐다.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페테르부르크 지하철에서는 검문검색이 센 편이 아니었다고 한다. 지하철 입구에 검색대를 설치해 검색하는 경우도 별로 없었고, 승강장에 순찰하는 경찰도 없었다고 한다. 이번 테러 용의자가 사제 폭발물을 갖고 객차 안까지 들어갈 수 있었던 이유가 설명되는 부분이다.

이번 테러의 배경과 관련해 러시아 야권에서는 다소 엉뚱한 음모론을 펴고 있다고 한다.

지난 3월 26일 발생한 대규모 공직자 부패 척결·반정부 시위에 쏠린 세간의 관심을 분산시키기 위한 정부의 자작극이란 거다. 당시 시위를 주도한 야권 운동가 나발니가 체포됐음에도 불구하고, 4월 2일에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번 테러로 러시아 전역의 보안이 더욱 강화되면, 내년 대선 과정에서 현 정부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게 야권의 분석이다. 3월 26일 대규모 시위 때 페테르부르크에선 모스크바 다음으로 많은 5천여 명이 시위에 참가한 바 있다.

용감한 페테르부르크 사람들

사고 열차 기관사 알렉산드르 카베린


이번 테러를 통해 페테르부르크 사람들의 용맹함이 다시 한 번 인구에 회자했다. 재난현장에서는 흔히 용감한 사람들의 무용담이 뒤따른다. 현지 언론에서 스타로 떠오른 사람은 테러 당시 사고 열차를 몰았던 기관사 알렉산드르 카베린이다.

카베린은 사고가 난 사실을 알고도 당황하지 않고 터널에 열차를 멈추지 않음으로써 많은 승객의 목숨을 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러시아 지하철 운행 규정은, 터널에서 사고가 날 경우 열차를 멈추지 말고 다음 역까지 계속 운행하도록 하고 있다. 폐쇄 공간인 터널 안에서 열차가 멈춰 설 경우 더 많은 피해자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자신이 다쳤는데도 옆자리 부상자들을 부축해 안전한 곳으로 옮겼다는 시민, 돈도 받지 않고 부상자들을 병원으로 실어 나른 익명의 택시 운전사 등등.. 사고에 묻혀 있던 미담과 무용담들이 하나둘씩 흘러나오고 있다.

잘 알려진대로, 2차대전 당시 독일군의 '레닌그라드(당시 페테르부르크의 이름) 포위작전', 즉 1941년 9월 8일부터 1944년 1월 27일까지 무려 872일 동안 봉쇄된 도시에서 페테르부르크 사람들은 끝까지 독일군에 저항하다 끝내 그들을 물리쳤을 만큼, 용맹함과 강인함을 자랑하는 사람들이다.

용감한 페테르부르크 시민들이 이번 테러 참사의 악몽에서 쾌유하기를 기원한다.

하준수기자 (ha6666j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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