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로로 멤버는 11명, 여자는 왜 둘뿐이죠?"

김지윤 2017. 4. 4. 08:3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함께하는 교육] 성평등 교육 실천하는 교실
애니메이션 속 성차별 내용 찾고
"고쳐주세요" 청원운동한 초등생들
성별 기준해 만든 출석번호 바꿔보며
'성평등 감수성' 관심 갖는 교사도 있어
'남자는 키 커야' '여자는 못해도 돼' 등
일상 속 발언부터 공익광고·속담 등
곳곳에 숨은 차별 요소 찾아봐요
학생들이 ‘에스(S)라인’
‘베이글녀’ 등 미디어에서 자주 사용하는 단어의 문제점에 대해 생각해보는 성평등 교육을 받고 있다.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제공

지난해 7월 초등학생들이 “애니메이션의 성차별적 내용을 줄여 달라”며 <교육방송>(EBS)에 청원을 내 화제가 됐다. 서울상천초 서한솔 교사가 지난해 5학년을 대상으로 진행한 ‘교과 융합형 성평등 수업’(이하 성평등 수업)의 일환이었다. 학생들은 아동용 애니메이션 〈뽀롱뽀롱 뽀로로〉부터 〈꼬마버스 타요〉, 〈로보카 폴리〉 등 다양한 영상 자료를 보고 성차별적 내용을 찾아냈다.

‘뽀로로’ 안에 성차별 보여요

“〈뽀로로〉 등장인물 11명 가운데 남성 캐릭터가 6명(뽀로로, 크롱, 포비, 에디, 해리, 통통이), 여성 캐릭터는 2명(루피, 패티)에 그친다.” “〈꼬마버스 타요〉의 주요 캐릭터 4명 가운데 여성 캐릭터는 1명뿐이다.” 당시 학생들이 조사한 내용이다. 2016년 통계청 자료에 나오는 남녀 성비는 50 대 50으로 남녀 수가 거의 동일하지만, 아이들이 즐겨 보는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 성비는 3 대 1이었던 것. “남자 캐릭터 색상은 다양한데 여자 캐릭터 색상은 핑크 계열로 제한돼 있다”는 사실을 찾은 학생도 있었다.

자기 의견과 근거를 구체적으로 적어낸 학생도 있었다. “남자 캐릭터는 이야기를 능동적으로 이끌어가며 문제를 해결하는데 여자 캐릭터는 다르다. 대부분 집에서 요리하고 청소하는 일만 한다. 겁이 많고 수동적인 모습이다.”

이 학생들이 국제시민연대 네트워크 ‘아바즈’ 누리집에서 시작한 청원운동에는 총 1078명이 서명했다. 서 교사는 “학생들이 글쓰기와 민주적 문제해결 절차 등 교과과정을 익히고 성평등 수업까지 ‘풀세트’로 경험한 것”이라며 “자신들의 문제의식에 공감하고 연대하는 누리꾼들의 글을 확인하며 시민의식도 부쩍 성장했다”고 했다.

성평등 수업 연구 교사모임도 나와

서 교사는 현재 ‘초등성평등연구회’를 이끌고 있다. 지난해 5월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발생한 여성 살해 사건이 계기를 마련했다. 사건 이후 초등교사 커뮤니티인 ‘인디스쿨’에 “성차별·여성 대상 범죄 증가, 여혐 발언 증가 등과 관련해 학교 현장에서 성평등 교육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많은 교사들이 젠더감수성 키우는 교육의 중요성에 공감했다. 비슷한 뜻을 나누는 교사들이 하나둘씩 모여 현재 12명이 됐다.

연구회는 한 달에 한 번 정기모임을 열어 성평등 수업에 대해 고민한다. 얼마 전 블로그(blog.naver.com/rollergrl)도 열었다. 창의적 체험활동에 활용할 수 있는 학년별 교안, 교과수업 방안 등도 공유하는 중이다. 서 교사는 “아직 시작 단계라 함께 연구하고 논의하며 틀을 잡아가고 있다”며 “지난해 애니메이션 활용 수업 참여 전과 후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학생들의 ‘성평등 감수성’이 확실히 높아졌다”고 했다.

한 학기 40차시 과정으로 이루어지는 수업에서 서 교사는 사전 설문조사도 진행한다. ‘여자가 짧은 치마나 야한 옷차림으로 다니는 것이 성폭행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남자가 자주 울면 솔직히 남자답지 못하다’ 등 18개 객관식 문항과 ‘내가 남자 또는 여자라서 겪었던 차별이 있었나요?’ 등 주관식 문항으로 구성돼 있다. 애초 수업 연구 목적으로 해본 설문이었는데 결과가 놀라웠다. 서 교사는 “나름 초등 1학년 때부터 ‘성평등 주간’ 등을 통해 관련 교육을 받아온 아이들임에도 성폭력 원인을 피해자 탓으로 돌리는 답변이 많아 놀랐다”고 했다.

남자·여자는 ‘원래 그래’ 소리 마세요

연구회는 최근 ‘성평등 교육을 위한 매니페스토’도 만들었다. 남학생은 1번, 여학생은 51번부터 부여하는 출석번호를 성별이 아닌 ‘가나다순’으로 지정하는 등 언뜻 사소하게 여겨지는 부분부터 교육 현장에서 바꿔나가자는 취지다.

매니페스토에는 ‘남자는 키가 커야 한다', ‘여자는 애교가 많아야 한다' 등 성별 고정관념을 깨고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위한 다양한 다짐이 적혀 있다. 성평등 교육은 자연스레 인권 교육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인종, 장애, 성별, 성적지향, 외모 등 타고난 것은 놀림의 대상뿐 아니라 칭찬의 대상도 되지 않는다'는 항목도 넣었다.

연구회 소속 교사들은 부모 알림 문자 등을 엄마뿐 아니라 아빠에게도 함께 보낸다. 학생이나 학부모가 ‘육아나 교육 문제는 부모 모두의 몫’이라는 생각을 가졌으면 해서다. 학부모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실제 학기말 평가에서 아빠들이 “아이의 학교생활과 고민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는 계기가 됐다”며 ‘함께하는 양육’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최근 학교 현장에서는 이런 식의 성평등 교육이 활발해지고 있다. 서울위례별초 최현희 교사도 이 가운데 한명이다. 최 교사는 “선생님이 수업 중 무심결에 ‘남자는 원래 그래’, ‘여자는 원래 못해’ 같은 한마디 말에도 아이들은 큰 영향을 받는다”고 했다. 사소해 보이지만 성별에 따라 “원래 그래”라고 말하지 않는 것 자체도 교육이라는 뜻이다.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교사들은 성별 편견이 없어야 합니다. ‘젠더 렌즈’는 무척 중요하죠. ‘남자가 왜 울어’, ‘여자가 왜 축구를 해’ 등 사소한 말 한마디도 신경 써야 합니다. 남학생의 경우 ‘왜 우냐’고 다그치지 말고 감정을 읽어줘야 합니다. 여학생에게 문제 상황이 생겼을 때엔 ‘우는 방식’으로 해결하지 말고 정확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로 표현할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하고요.”

미디어 활용해 ‘성별 고정관념’ 인지하기

서울발산초 이은진 교사는 미디어를 활용해 성평등 교육을 한다. 그는 5억5000건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한 생활용품 기업 ‘피앤지’(P&G)의 ‘여자답게’(Like A Girl) 캠페인 영상을 성평등 수업에 적용한다. 영상은 ‘여자답게’라는 표현이 수동적인 태도를 의미해 여학생 성장 과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이다.

영상을 보여주기 전 학생들에게 ‘여자아이답게’ 뛰어보자고 먼저 제안한다. 지난해 이 활동을 해본 학생들은 여학생·남학생 할 것 없이 모두 힘없이 뛰거나 잔뜩 움츠러들어서 느리게 걷는 모습을 표현했다. 이 교사는 “이런 몸짓 활동 뒤 영상을 함께 시청하니 아이들이 성별 고정관념에 대해 스스로 깨닫게 됐다”고 했다.

“미디어에서 재현하는 ‘공격적인 남성’과 ‘수동적인 여성’의 모습을 알게 모르게 내면화한 거죠. 초등 고학년이 될수록 ‘여자는 그러면 안 돼’, ‘남자는 강해야만 해’ 등 사회가 만들어놓은 ‘젠더 틀’에 갇히게 됩니다.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성역할에 ‘왜?’라는 질문 던지는 힘을 키워주는 게 중요합니다.”

반장 선거에서 남학생은 남자 후보를, 여학생은 여자 후보를 찍는 걸 본 뒤 토론하는 시간도 마련했다. “우리 교실을 어떻게 하면 성평등한 공간으로 만들 수 있을까?” 등 질문을 제시하고 자유롭게 둘러앉아 브레인스토밍하며 대안을 생각하는 식이다.

당시 학생들이 만든 ‘성평등 다짐’도 있었다. ‘체육시간에 ‘여자는 빠져’라는 말 하지 않기’, ‘급식 당번 때 같은 성별이라고 더 많은 양의 반찬 주지 않기’ 등 생활밀착형 내용들이 나왔다.

‘평등당’ 만들고 공약 발표해보기도

중학생쯤 되면 동아리 활동을 통해 좀더 적극적으로 성평등 교육을 해볼 수도 있다. 사회참여 및 인권 동아리를 만들어 캠페인을 진행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안산 시곡중 염경미 교사는 최근 ‘3·8 세계여성의 날’을 맞이해 교내 사회참여 동아리 ‘좌충우돌’ 학생 20명과 ‘성평등이 민주주의의 완성이다’를 주제로 캠페인을 진행했다. 유튜브에 올라온 <지식채널e>(EBS) 동영상 가운데 ‘빵과 장미’를 함께 시청하고 학생들이 직접 ‘평등당’ 등 정당 및 공약 만들기를 해보는 활동이었다.

염 교사는 “수업 중 ‘공익광고로 보는 성평등’, ‘속담으로 찾아보는 성차별 문화’, ‘임금 격차 현실’에 대한 배경 설명과 토론 수업을 진행하면서 학생들도 성별을 떠나 상호 존중하는 사회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고 했다.

“학생들이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대한 개념을 알게 되면서 사회구조를 다각도로 볼 수 있게 됩니다. 차별의 원인과 억압의 역사에 대해 공부하며 비판적 사고력까지 갖추는 거죠. 성평등 수업은 학생들이 한국 사회 구성원으로서 민주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주는 ‘필수 교육’입니다.”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네이버에서 한겨레 구독하기
▶신문 보는 당신은 핵인싸!▶조금 삐딱한 뉴스 B딱!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