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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사람 섬김이 우선…유해물질 절대 안써"

전지현,강다영 기자
전지현,강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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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4-02 18:17:20
수정 : 
2017-04-03 15: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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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40년 `친환경` 외길…독성원료 배제한 경영철학
가습기 살균제 생산제안 거절
피죤은 평화·행복을 상징…항암치료에도 꿋꿋이 견뎌
섬유유연제 내놓아 대박…유아용 세제로 사업 다각화
피죤 창업주 이윤재 회장
사진설명
피죤은 '화학 포비아(유해 화학물질에 대한 공포)'의 안전지대로 통한다. 국내 생활용품 업체 중에서 유일하게 가습기 살균제를 생산하지 않았다. 이 회사의 치약, 물티슈, 탈취제 등에서도 유해물질이 발견되지 않았다. 창업주 이윤재 회장(83)이 1978년 회사를 설립할 때부터 고집해온 친환경 경영이 최근 재조명받는 이유다. 이 회장은 '자연은 우리가 돌아갈 미래'라는 자연주의 철학을 바탕으로 인간의 삶을 향상시키는 제품 생산에 집중해왔다. 최근 서울 역삼동 사옥 집무실에서 만난 이 회장은 "100년 이상 생산할 수 있는 제품만 만든다"며 "가급적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원료를 사용해왔다"고 밝혔다. 2006년 간암 수술을 한 후 수차례 항암 치료를 받았지만 경영 철학을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굳건했다.

"창업할 때부터 사람에게 꼭 필요하면서도 해롭지 않은 제품들을 만들겠다는 원칙을 지켜왔어요. 내가 가진 능력을 총동원해서 국내 첫 섬유유연제와 살균세정제, 액체세제를 출시했지만 인체에 유해한 원료를 사용하지 않았어요. 당장 돈을 벌 방법을 찾기보다는 소비자에게 신뢰받는 기업을 희망했지요. 새로운 원료를 개발해도 오랫동안 임상시험을 해봐야 합니다."

실제로 가습기 살균제 붐이 일었던 2000년대 초반, 이 제품을 출시하자는 협력업체들 요청이 많았지만 단번에 거절했다. 메칠클로로이소치아졸리논(CMIT)과 메칠이소치아졸리논(MIT) 같은 독성이 있는 원료 때문이었다. 다른 제품과 같은 작업 라인을 쓰는 것도 이 회장의 친환경 경영에 어긋났다.

그의 뚝심은 1999년 출시한 국내 첫 주방·욕실 세정제인 '무균무때' 개발 과정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이 회장은 인체에 해가 없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직접 도마용 스프레이 제품을 입 안에 살포했다. 그는 "살모넬라균이나 대장균처럼 유해균만 죽이면서도 몸에 해롭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며 "주부들이 잘 모르고 써도 안전한 친환경 제품을 만들려고 했다"며 옛일을 떠올렸다. 인터뷰가 끝난 다음날 이 회장은 "소비자들이 절대 따라해서는 안 된다"는 당부를 전해왔다. 나이 들수록 모든 게 조심스럽다면서.

신중한 그는 1984년부터 17년 동안 개발비 200억원을 투자해 '무균무때'를 생산했다. 독일에서 온 탈북 과학자 궁리환 박사가 연구개발에 참여해 남북한 합작품으로 화제가 됐다.

이 회장은 "대덕연구단지에 계신 궁리환 박사를 직접 찾아갔다"며 "우리를 위해 정말 많이 노력해준 훌륭한 분이었다. 다시 독일로 가셨는데 아마 지금쯤 돌아가셨을 수도…"라며 회상에 잠겼다.

1998년 개발 막바지 단계에 영국 대기업이 백지수표를 내밀며 매각을 제안했을 정도로 '무균무때'는 획기적인 제품이었다. 인체에 유해한 50여 종의 균 99.9%를 3분 이내에 박멸시키는 기술은 세계 최초였다. 외환위기로 달러가 절실했지만 이 회장은 매각 제안을 거절했다.

"거의 완성 단계에서 '원하는 만큼 줄 테니까 기술을 팔라'고 했죠. 조금도 안 흔들렸어요. 돈에 환장하지 않은 이상 그렇게 힘들게 개발한 제품을 왜 팔아요. 모든 균을 죽이는 세정제는 만들기 쉬워도 유해균만 죽이는 살균제 개발은 너무나 어려웠어요. 스스로 남에게 주는 것은 꿈에서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가치 있는 제품이었지요."

애국심도 발동했다. 이 회장은 "한국도 새로운 기술 제품을 가지고 있어야지"라며 "당시만 해도 일본 제품을 베낀 제품이 많았다"고 말했다. 1934년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한국전쟁을 겪은 후 아무것도 남지 않은 조국을 지켜본 그는 '한국 사람들이 품질 좋은 제품을 쓰고 삶의 질이 높아졌으면 좋겠다'고 느꼈다.

품질의 중요성은 1970년 무역회사 동안물산을 설립한 후 더 절실하게 깨달았다. 가발 샘플을 들고 45일 동안 유럽을 누볐지만 단 한 건의 실적도 올리지 못하고 전량 폐기했던 뼈아픈 기억이 있다.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피죤을 창업할 때 연구소를 동시에 열었다. 첫 대박 제품은 '빨래엔 피죤'이라는 광고 문구로 유명한 섬유유연제였다. 당시 선진국에서는 섬유유연제가 널리 사용되고 있었지만 국내에서는 세탁기조차 대중화되지 않았을 때였다.

"방직공장에서 사용하는 공업용 계면활성제(세제 주요 성분)를 만드는 회사에서 일한 적이 있어 가정용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세탁의 3대 요소가 세제, 섬유유연제, 표백제예요. 그때는 흰옷을 많이 입어서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배짱 두둑하게 섬유유연제를 출시했지만 소비자로부터 외면당했다. 영업 전략은 발로 뛰는 것밖에 없었다. 주부 30여 명 이상 모이는 계 모임을 찾아 다니면서 제품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샘플을 받아 든 소비자들로부터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 사용법을 묻는 사람부터 겨울에 얼었다는 불만까지 문의가 쏟아져 '3시간 애프터서비스 팀'을 만들었다. 전국 어디든 3시간 내에 달려가 문제를 해결했다. 이 회장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역경이 많았다"며 "냄새가 좋아서 사람들이 먹을까 봐 걱정했을 정도로 섬유유연제에 무지했다"고 말했다.

뜻밖에도 1970년대 후반 유행한 나일론과 폴리에스테르 섬유 소재에서 발생하는 정전기가 회사를 살렸다. 피죤을 사용하면 정전기가 사라진다는 소문이 돌면서 제품이 날개 돋친 듯 팔렸다.

"(2009년까지 31년 동안) 시장 점유율 50%를 넘기며 부동의 1위를 고수했어요. 품질에 만전을 기한 덕분에 대기업 공세에도 끄떡없었죠. 열심히 노력한 것을 소비자들이 알아줘 감사하죠."

승승장구하던 섬유유연제 시장점유율은 지난해 23.7%로 떨어지며 LG생활건강 '샤프란'에 밀려 2위를 기록했다. 그 원인을 묻자 이 회장은 "제품이 나빠진 적은 없다"며 "다만 급격하게 변화하는 세상에 제대로 대처를 못한 것 같다"고 답했다.

최근 가습기 살균제 피해가 사회적 논란이 되면서 친환경 기업으로 주목받는 피죤은 반격을 노리고 있다. 기존 히트상품인 액체세제 '액츠'와 보디클렌저 '마프러스'를 비롯해 손 세정제, 제습제, 치약, 베이비 섬유유연제와 세제 등 친환경 제품 라인업을 대폭 강화했다. 이 회장은 "사명 피죤(비둘기)은 평화와 행복한 가정의 상징"이라며 "자연을 섬기고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만든 제품이어서 안심하고 쓸 수 있다"고 강조했다.

2011년 그는 딸 이주연 대표이사 부회장에게 회사를 맡기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창업자로서 운영 방향을 조언하고 있다. 이 대표는 1996년 피죤에 입사해 디자인실장과 마케팅실장, 재무·인사·총무를 총괄하는 관리부문장을 거쳐 2007년 대표이사에 올랐다.

이 회장은 "현재 이주연 체제가 잘하고 있어서 믿음이 간다"고 말했다. 고령에 암 투병을 했지만 현재 건강 상태는 양호하다고 한다. 그는 서울 성북동 자택 정원을 자주 걷고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골프장에 간다고 했다.

■ 이윤재 회장은…
△1934년 서울 출생 △1953년 서울고 졸업 △1957년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1970년 동안물산 대표 △1978~2011년 피죤 대표이사 회장 [전지현 기자 / 강다영 기자 / 사진 =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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