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일 만우절. 나 같은 장난꾸러기 학생들에겐 일 년 중 가장 바쁜 날이다. 책상을 모두 뒤를 보게 돌려서 선생님이 뒤에서 수업을 해야 한다거나 옆 반 학생들과 반을 바꿔서 수업을 듣고, 심지어는 선배들과 반을 바꿔서 수업을 듣기도 하는 등 그때에는 왜 그리 장난칠 일이 많았는지. 그 장난꾸러기 고등학생이 나이를 먹고 대학에서 강의하던 2003년 만우절. 여느 때처럼 강의를 마치고 늦은 귀가를 하는데 갑자기 목소리 톤을 바꾼 라디오 진행자가 장궈룽(張國榮)의 죽음을 알렸다. 평소에도 장난기가 많은 진행자이기에 아무리 만우절이라지만 무슨 장난을 이렇게 심하게 치나 하며 운전을 하는데 “여러분, 이건 만우절 장난이 아니라 진짜 외신 속보입니다. 장국영이 사망했습니다”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그 말을 듣는 순간 길가에 차를 세울 수밖에 없었다. 그 일이 있기 얼마 전, 급성 백혈병으로 고등학교 동창 녀석을 하늘나라로 보낸 내겐 꽤 큰 충격이었다. ‘이렇게 내 청춘의 한 귀퉁이가 또 떨어져 나가는구나’ 하는 생각에서였을 거다. 우리 나이 대에는 아버지들이 요즘처럼 친절하지 않았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겠지만 적어도 우리 집이나 내 친구네 집들은 모두 그러했다. 처자식 건사하기에 힘이 부쳐 그러셨겠지만 머리가 크기 시작할 때부터 아버지와 진솔한 이야기를 나눠 본 적도 없고 어딜 함께 가거나 한 기억도 없다. 그랬기에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을 아버지가 아닌 홍콩 영화에서 배웠다. 그때 우리의 큰 형은 청룽(成龍)과 저우룬파(周潤發)였고, 장궈룽과 류더화(劉德華)는 우리의 친구였으며, 우리는 ‘영웅본색’을 통해 사나이의 의리를, ‘천녀유혼’을 통해 지고지순한 사랑을, 그리고 ‘첩혈쌍웅’을 통해 남자의 모습을 배웠다. 그중에서도 장궈룽은 특별한 존재였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응답하라 1988’의 덕선이 나이 대의 여학생들에게는 이 세상 최고의 꽃미남이자 꿈에서라도 만나고픈 남자 친구였고, 남학생들 사이에선 언제든 무슨 일이 있더라도 꼭 지켜줘야 할 우리들의 친구였으며, 우린 분식점에서, 책받침에서, 그리고 영화 포스터와 손바닥 반 만한 영화 카렌다에서 늘 그와 함께 있었다. 그게 지금의 40대 남자들의 아들, 딸 나이 때의 일이었다. 그런 그가, 한창 일할 47세 나이에 세상을 저버렸다. 비록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늘 곁에 있는 것 같은, 그런 친구 같은 존재인 그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것도 스스로. 그 이후 나는 더는 만우절에 장난을 치지 않았고 주변에서 치는 장난도 받아주지 않았다. 그렇게 어느새 내 나이도 희미해져 버리고 이제는 그리움도 지워져 버린 사람이 되어가던 어느 만우절, 친구와 술잔을 기울이며 장궈룽의 이야기를 하는 내 모습을 본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야, 언제까지 고등학생 시절에 갇혀 있을래? 지금 네 나이가 몇인데?” 그렇다. 만난 사람은 헤어지기 마련이고, 떠난 사람은 돌아오기 마련이다. 4월1일 만우절에 장궈룽은 거짓말처럼 내 곁을 떠나갔지만 그를 대신할 이창동 감독이 장궈룽의 자리를 메웠고, 그 덕분에 나는 ‘초록 물고기’와 ‘박하사탕’, 그리고 ‘오아시스’를 볼 수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비토 벨포트, 랜디 오턴이 만우절에 우리에게 다가와 지금까지도 큰 즐거움을 주고 있고 심지어는 타임지가 선정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에 꼽힌 바트 심슨과 강백호(‘슬램 덩크’의 그 강백호 맞다)도 만우절에 태어났다. 만우절이 없었다면 우린 ‘왼손은 거들뿐’이라는 명대사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나는 더는 우울한 만우절을 보내지 않는다. 요즘에는 올해 만우절에는 어떤 장난을 칠까? 하는 고민과 궁리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런 나를 보고 주변에선 “언제 철들래?”라며 핀잔을 주지만 내가 철이 들건 말건 무슨 상관이람? 나 같은 사람은 철들만 안 좋은 일 생긴다. 철은 병풍 뒤에서 향냄새 맡으며 관 뚜껑에 못 박히는 소리 들을 때에나 들련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공감 0% 비공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