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중앙일보

[세상 속으로] 사회생활 남편은 'must' 아내는 '옵션' 이란 그 자체가 성차별

이소아 입력 2017.04.01. 01:04 수정 2017.04.01. 07:22 댓글 0

━ 골드만삭스 맞벌이 커플들이 말하는 일·가정 병행법 최근 구글·제너럴일렉트릭(GE)·스타벅스·이케아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공통으로 공을 들이는 과제가 있다.

토론에는 김은진 골드만삭스 회계담당 상무, 최재준 골드만삭스 채권부문 공동대표를 비롯해 남편이 골드만삭스 직원인 노OO(호주계 금융사 세일즈트레이더)씨, 아내가 골드만삭스 직원인 김OO(국내 대형 자산운용사 채권부 근무)씨가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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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없으면 다 잘못될 거라는
극단적인 생각을 안 하는 게 좋아
시간 나는 대로 아이들과 놀아줘
주중 3~4일은 15분 이상씩 대화
해외파견 기회 아내 배려해 포기
상대방 눈높이서 나를 바라봐야
회사 상사든 가족이든 터놓고 얘기
혼자 일처리 하려 말고 도움 청해야

━ 골드만삭스 맞벌이 커플들이 말하는 일·가정 병행법 최근 구글·제너럴일렉트릭(GE)·스타벅스·이케아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공통으로 공을 들이는 과제가 있다. 바로 사내 ‘다양성(Diversity)’ 이슈다. 남성과 여성, 서로 다른 성별과 성향의 직원들이 함께 일할 때 더 나은 결과가 나온다는 판단에서다. 가장 급선무는 여성 인재들이 결혼이나 육아 부담으로 회사를 떠나는 ‘경력단절’을 막는 일이다.

대표적인 금융기업인 골드만삭스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23일 오후 서울 종로 골드만삭스코리아에서는 ‘더 나은 반쪽되기(Better Halves)’란 주제로 특별한 토론회가 열렸다. 회사의 맞벌이 커플들이 직접 나와 직장과 가정 사이에서 느끼는 고민을 나누고 해결책을 찾는 자리다. 한 시간에 걸친 허심탄회한 경험담과 조언에 관객들은 큰 박수를 보냈다. 토론에는 김은진 골드만삭스 회계담당 상무, 최재준 골드만삭스 채권부문 공동대표를 비롯해 남편이 골드만삭스 직원인 노OO(호주계 금융사 세일즈트레이더)씨, 아내가 골드만삭스 직원인 김OO(국내 대형 자산운용사 채권부 근무)씨가 참여했다. 이들은 “결국 일도 삶의 일부”라며 “50대 50의 균형보다 일과 삶의 시너지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이 말하는 ‘함께하기’를 들어봤다.

골드만삭스는 매년 세계여성의 날(3월 8일) 기점으로 ‘여성 콘퍼런스’를 연다. 올해 ‘함께’란 이름으로 열린 한국 행사에서 맞벌이 부부들이 경험과 조언을 들려주고 있다. [사진 골드만삭스코리아]
◆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노OO=엄마가 집에 없다고 아이들이 잘못되지 않는다. 애들은 의외로 강하다. 엄마가 일일이 잡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해 나가더라. 직장에서도 회식에 빠진다고 일을 못 하거나 승진을 못 하는 게 아니다. 모든 우려나 걱정은 다 내 머릿속에 있는 것 같다. 내가 없으면 모든 게 다 잘못될 거라는 극단적 생각을 안 하는 게 중요하다. 워킹맘들에게 너무 상처받지 말라고 하고 싶다. 아무리 힘든 날이었다 해도 오늘은 오늘로 끝이고 내일은 또 새로운 날이니까.

▶김은진=아이가 3명이다. 첫째와 둘째는 연년생이라 아이들을 키우면서 일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회사의 정책적 도움을 받아 남편이 미국으로 유학가게 됐을 때 한국 대신 미국에서 일할 수 있었고 육아를 고려해 재택근무도 할 수 있었다. 일을 포기하지 않아도 방법은 있더라.

▶김OO=일은 바빠도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 시간 나는 대로 딸에게 사랑한다고 많이 표현하려고 한다. 주말에는 몸을 움직여 놀아 주려고 노력한다. 그 덕에 수도권 키즈카페 위치와 가격정보는 다 꿰고 있다.

▶최재준=아이와 조금이라도 얘기할 수 있게 일부러 유치원버스를 태우지 않고 출근할 때 차로 데려다 준다. 주중 3~4일은 15분 이상씩 대화하는 셈이다.

◆ 배려하고 양보하라

※자료 : 골드만삭스, 2014년은 조사가 이뤄지지 않음. (단위:%)
▶최재준=아내가 원래 미국에서 일했는데, 전 직장 시절 날 위해 서울로 직장을 옮겼다. 지금 직장에서도 내가 홍콩으로 발령받자 아내도 홍콩에 일자리를 얻었다. 그리고 2011년 다시 서울로 가야 한다고 아내에게 ‘통보’했다. 아내는 임신한 몸으로 다시 서울로 와줬다. 너무 내 중심이었다. 와이프가 일과 가정을 병행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미안했다. 다음엔 내가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OO=둘 다 직장에서 해외 파견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당시 신혼이어서 기회가 될 수도 있지만 둘 사이에 리스크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 포기했다. 나만 가게 될 때는 서로를 배려해 해외로 나갈 기회를 접은 적도 있다. 결혼은 본인의 자존감을 상당 부분 버려야 한다. 내 눈높이에서 상대방을 바라볼수록 실망감만 쌓인다. 상대방의 눈높이에서 나를 바라볼 때 역지사지가 된다.

※ 세계 3000개 대기업 임직원 조사. 자료 : 크레디트스위스(단위:%)
▶최재준=남자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아내에게 ‘일을 하고 싶으면 하고 안 해도 돼’라고 말하지 말라. 나의 사회생활은 ‘must’고 아내는 ‘옵션’이라고 전제하는 자체가 아내를 무시하는 거다. 물론 아무 생각없이 한 말일 가능성이 많지만(웃음).

▶김OO=주변 가족들에게 헌신적인 것도 도움이 된다. 나는 장인·장모에게 잘하려고 노력하고, 아내는 시부모에게 잘하려고 하는데 서운한 일이 있을 때 이런 점을 생각하면 고맙게 느끼게 된다.

◆ 배우자·회사와 상의하라

▶노OO=20대에 결혼을 해 육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남편에게 조금 더 도움을 청했으면 좋았을 텐데 나 혼자 완벽하게 한다고 너무 혼자 끌어안았던 것 같다. 도움을 청할 때는 얘기하라.

※ 세계 3000개 대기업 임직원 조사. 자료 : 크레디트스위스(단위:%)
▶김은진=아이도 많고 학교 일 등 직장과 조율할 일이 많다. 요즘도 신학기라 정신이 없는데 우선순위를 정한 다음 남편뿐 아니라 상사든 팀원이든 시부모님이든 다 오픈하고 말하는 편이다. 최근에도 아이 봐 주는 아주머니가 고향에 간다고 해서 멘붕이었는데 부서에 양해를 구해 좋은 도움을 받았다. 오픈하면 기대한 것보다 좋은 솔루션이 있더라.

▶최재준=직원 입장에선 먼저 말 꺼내기가 어려울 수 있다. 회사나 상사도 직원의 희생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선 안 될 것 같다.

▶김은진=그래서 솔직하게 오픈하는 게 중요하다. 나와 동료와 회사가 서로 신뢰하는 관계를 만든 다음 다가가면 된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김OO=회사에서 어려움 있거나 좋은 일 있을 때 뭐든지 아내와 공유하려 노력한다. 배우자야말로 제일 먼저 의사를 물어볼 수 있고 가장 좋은 조언을 얻을 수 있는 동반자라고 생각한다.
골드만삭스 아시아대표 스테파니 후이.

■[S BOX] “워킹맘, 리스크 관리 뛰어나 금융권서 좋은 실적” 「스테퍼니 후이(사진)는 골드만삭스를 대표하는 여성 리더다. 전 세계 3만6000명 골드만삭스 임직원 중 1%에 불과한 ‘파트너’ 중 한 명으로 회사의 주요 의사결정에 참여한다. 그와 인터뷰하며 여성의 경력 관리와 관련한 ‘5가지 오해’를 들어봤다.

1. 여성은 조심스럽고 꼼꼼해야 한다?

“학생 때나 직장 주니어까지는 큰 장점이다. 하지만 시니어가 되면 의사결정을 잘하고 리스크를 과감히 감수하면서 변화를 이뤄내는 자질이 필요해진다. 리더십 능력을 키워야 한다.”

2. 결혼하면 경쟁력이 떨어진다?

“나는 아들만 3명이다. 가정과 일을 병행하다보면 자연스럽게 ‘효율적’으로 일하는 능력이 생기고 업무에서도 빛을 발한다. 리더의 자질인 이해심과 소통 측면에서도 워킹맘들은 훌륭하다.”

3. 워킹맘은 가정에선 죄인이다?

“죄책감을 버려도 된다. 자녀 주변을 맴돌며 모든 걸 다 챙겨야 성이 풀리는 ‘헬리콥터 부모’는 오히려 자녀의 독립심과 리더십을 해친다. 아이들도 자랄수록 일하는 엄마를 이해하고 좋아한다. 남편에게도 더 좋은 대화 상대가 될 수 있다.”

4. 금융권 업무는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다?

“은행·자산운용 등 금융권에는 여성 고객이 많다. 남편이 아내에게 자금 운용을 맡기는 일이 얼마나 흔한가. 여성 고객의 니즈는 여성이 더 잘 알고 대응도 잘한다. 업무 면에서도 여성들은 성실하고 리스크 관리가 뛰어나다. ‘무한 질주’가 아니라 속도를 낼 때 내고 줄일 때는 줄이는 균형감이 뛰어나 좋은 실적을 낳는다.”

5. 직원은 겸손이 미덕이다?

“나도 홍콩에서 자라서 동양권 문화에 익숙하다. 어느 날 여성 멘토가 아시아 대표를 찾아가 보라고 조언해서 찾아갔더니 ‘15분을 줄 테니 하고 싶은 것을 말해보라’고 했고 나는 승진했다. 알고 보니 남자 동기들은 모두 다녀간 후였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알려보자.” 」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