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하라는 말에 박근혜는 미소만 지었다"

차현아 기자 2017. 3. 31.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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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문희상 더불어민주당 의원 "노무현 대통령은 매사가 토론, 김대중 대통령은 복음 전파하듯 뜻 전달"

[미디어오늘 차현아 기자]

파면된 전 대통령 박근혜씨는 의도치않게 국민들에게 큰 깨달음을 줬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원칙의 재확인이다. 대통령과 왕은 다르다는 점도 국민들에게 각인시켰다. ‘사생활’을 중시하며 혼자 밥을 먹고 TV 보는 생활을 즐겼으며 친한 사람 몇 명 이외에는 소통 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던 대통령 대신, 국민과 국가를 위해 일해줄 대통령이 필요하다는 점도 박근혜씨 구속으로 국민들이 새롭게 깨달은 점이다. 

새로운 대통령을 만들겠다는 정치권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각 당은 대선 주자를 선출하기 위한 경선을 치렀거나 마무리 단계에 돌입한 상황이다. 촛불 혁명을 통해 박근혜씨를 파면까지 이끌었던 국민들은 이제 어떤 대통령을 선출해야 하냐는 과제를 안게 됐다. 미디어오늘은 30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더불어민주당의 6선 의원인 문희상 의원을 만나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문 의원은 국민의 정부에서 초대 정무수석과 국가정보원 기조실장을 맡았고, 참여정부에서는 초대 대통령 비서실장을 역임했다. 2012년과 2014년에는 민주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당을 이끈 경험을 갖고 있다.

문 의원은 두 명의 현직 대통령을 근거리에서 지켜봤던 정치적 경험 이외에도 자신이 현대 정치사의 여러 굴곡진 현장을 목도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4.19혁명과 5.18 광주민주화 운동, 6.10 항쟁을 지켜봤지만, 각각의 혁명은 5.16 쿠데타와 전두환 군사정권, 노태우 집권 등으로 항쟁의 뜻이 퇴행하는 결과로 귀결됐다. 최근 문 의원이 대통령(우리가 알아야 할 대통령의 모든 것)’이라는 책을 발간하고 차기 대통령을 잘 뽑아야 한다고 입을 뗀 이유이기도 하다.

▲ 문희상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이치열 기자.
-촛불 혁명 이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19대 대통령이 갖춰야 할 조건은 뭐라고 생각하나.

“대통령으로서의 덕목으로는 국가경영과 통합능력, 도덕성 등이다. 다만 그런 조건을 모두 갖춘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건 아니다. 시대정신을 타는 게 중요한데, 이건 운이다. 대통령 후보 스스로가 맞추는 게 아니라 시대가 흘러와서 후보를 데려가는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수평적 권력질서라는 시대정신에 타이밍이 맞았다. 다만 그 자신도 '3김식 정치'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절차적 민주주의에 따른 것이라기 보다는 지역주의와 금권주의 등을 그대로 안고 제왕적 대통령제를 기반으로 한 권위주의적 시대가 이어졌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러한 지역주의와 금권주의, 권위주의적인 '3김식 정치'를 청산하자는 시대정신을 탄 것이다. 쉽게 표현해 히말라야 산맥을 시대정신이라고 하면, 거기서 아주 조금 더 높게 솟아오른 봉우리 하나가 나타난 것이 에베레스트산이고, 그것이 당시 당선된 노무현 대통령이다.

지금의 시대정신은 불균형한 세상을 바꾸고 정의롭고 평등한 세상, 특권없는 세상을 바라는 요구다. 이것이 촛불민심인 백만명을 모으게 한 힘의 근원이었다. 또 하나 대통령 후보에게 필요한 건 권력의지다. 담대한 돌파력과 깡, 용기 등이 그것이다. 

반기문 전 UN사무총장에게는 의지가 없었다. 안철수 후보도 권력 의지가 전혀 없었는데 생겼다. 다만 지금은 성숙된 ‘깡’은 아닌 것 같다. 지금은 홍준표 지사가 제일 권력의지가 세다. 다만 담대한 용기를 갖고 있다기보다는 내지르는 수준이다."

-책에서 문 의원은 노무현 정부 임기 말 대연정이 올바른 것인지 의문이 든다고 했다. 그렇다면 차기 정권에서도 시대과제로 대연정은 필요하다고 보나. 안희정 후보가 대연정을 꺼내들었는데 이에 대한 평가는.

“노무현 대통령 당시의 대연정은 지역주의에만 목표를 두고, 전체 판을 읽지는 못했다고 판단했다. (노 대통령은 시대정신이 요구한 과제 중에) 지역주의 하나만 더 마무리 지으면 할 일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편집자주: 당시 노 대통령이 던졌던 대연정은 지역구도 타파를 위한 선거제도 개편을 전제로 한 총리지명권, 조각권 등을 한나라당에 넘겨주겠다는 안이었다.)

내가 당시 여당대표였는데 노 대통령이 가장 먼저 나에게 간곡히 부탁했다. 나는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에게 전달까진 했다. 하지만 이건 안 될줄 알았다. 절차적 하자가 너무 많았고 성숙되지 않은 상태로 급하게 추진했다.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만나 이 제안을 던졌더니 “장난하는 것이냐”고 하더라. “참 나쁜 대통령”이라는 말도 나왔다. 당시 노무현 정부 말기였고 (당권을 이어가기보다는 한나라당 당 대표로서 향후를 내다보며 자신이 이미) 차기 대통령이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박근혜 당시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을 여러 차례 가까이서 볼 기회가 있었을 것 같다. 그때는 어땠나.

“대통령 되기 전과 후가 너무 다르다. 박근혜 당시 의원과 같은 상임위에 있었다. 당시 내가 받은 인상은 우아하고 똑똑하다는 것이었다. 아우라라고 해야 할까, 분위기에서도 왕가에서 나온 그런 느낌이었다. 나도 속은 거다.

당시 박근혜 의원은 피드백이 가능한 의원이었다. 당시에는 질문을 하면 나오는 답변에 대해 재차 질문하는 여성의원이 많지 않았는데 (사안에 대해) 다 숙지하고 들어왔다. 대정부질문에서도 준비를 많이 해왔다. 바보는 아니다. 똑똑한 사람이다.

그 이후에는 (박근혜씨를 대통령) 당선자 시절에 만났다. 당시 나는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었다. 대여섯번 만나고, 대표들끼리도 만나고 상임위원장들하고도 같이 들어가서 만나고 했는데, (박근혜씨를) 만난 날이 내 생일이었다. (박근혜씨가) 내 생일 케이크를 준비해주더라. “생일 축하드려요. 제가 ‘께이끼’도 준비했어요”라고 말했다. 아마 아버지가 케이크라는 말을 ‘께이끼’라고 발음했나 보더라. 그건 우리 어린 시절에나 듣던 말 아닌가.

당선자 시절부터 불통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정권 출범 이후 정부조직법 통과만 57일을 끌었다. 그건 여야가 합의해서 이미 끝난거다. 여야끼리 양보하고 양보하고, 밀고 당기다가 결론낸거다. 근데 청와대에서 57일을 끌어서 정부조직이 안됐다. 그때부터 느낀거다. 소통이 안된다는 것을.

지금 와서 생각하니까 (박근혜씨는) 왕가의 공주로 로얄패밀리의 일원이다가 반정에 의해 쫓겨난거라고 생각한 것 같다. (지난 18년간) 은인자중하고, 있는 힘을 모으고 있다가 성공해서 다시 들어왔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당선되면서 도로 왕이 된 거다. 사고 자체가 유신에 멈춰 있어서 왕가의 공주 같은 사고를 하고 있다. 당선 이후에도 소통 하라고 말씀드렸는데 (박근혜씨는) 아무 말도 안하고 미소만 짓더라.“

▲ 문희상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이치열 기자.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을 근거리에서 지켜보셨는데, 이들의 소통 스타일을 평가해달라.

“노무현 대통령은 (여러 사람들을) 싸움을 붙이는 쪽이었고 김대중 대통령은 복음을 전파하는 예수 그리스도식의 소통을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매사가 토론이었다. 예를 들어 국무회의에서 건설교통부 장관이 국토개발사업 계획을 제안하려고 하면, 대통령은 ”환경부 장관 생각은 좀 다를텐데요“라며 싸움을 붙인다. 환경부에서 환경문제가 우려되니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해보자고 하면 대통령은 ”개발 착수가 늦어지면 경제적으로 손실이 있지 않느냐“며 재정경제부 장관에게 한 마디 하라며 토론을 하게 만든다.

김대중 대통령의 소통 방식은 ‘설파식’이었다. 토론이긴 했지만 반론을 제기하기 어려울 만큼 자신의 논리가 뚜렷했다. 우리끼리는 (그 논리를) ‘말씀’이라고 불렀다. 자신의 논리와 철학 등 상황에 대해 하고 싶은 ‘말씀’이 정리되면 청와대 비서들이 여러 기자들에게 설파를 하는 거다.

(편집자 주: 토론을 즐겼던 노무현 대통령조차도 토론에 실패한 인물이 있다. 문 의원은 자신의 책에서 ‘조용기 여의도순복음 교회 목사를 꼽았다.

책에서 밝힌 일화는 이렇다. 노 대통령과의 단독 면담자리에서 조 목사는 들어오자마자 성경책부터 펴더니 “일단 성경 봉독을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봉독 후에는 설교를 이어갔다. 마지막으로 “기도하겠습니다”라며 기도를 시작했다. 노 대통령과 문희상 당시 비서실장은 얼떨결에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아멘” 소리와 함께 기도가 끝나자 조 목사는 조용히 인사를 하고 일어나서 방을 나갔다. 그 면담에서 노 대통령이 한 말은 “네 그러십시오”와 “아멘”, 두 마디가 전부였다.)

-책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이른바 ‘비선실세’가 유시민씨와 문성근씨가 아니었냐고 지목했는데.

“그 분들과 노 대통령이 따로 모임을 만들어 만난 건 아니고 (그 두 분으로 짐작되는 사람들과) 문자를 주고 받는 것 같더라. 노 대통령이 이러한 의견도 있으니까 참고하라고 (청와대 비서실에) 보여주는데, 내용이 기가 막힌다. 문자가 주로 어투가 다른 두 가지 스타일로 오는 것 같았다. 내용은 주로 ‘아니오’라고 하는 말들이다. 문자로 말을 공손하게는 하지만 (노 대통령이) 틀렸다는 얘기를 강하게 하는 사람들이었다.

‘비선실세’라고 했지만, 이들처럼 충고하는 비선은 얼마든지 괜찮다. (그 사람들과 노 대통령 간) 신뢰가 깊으니까 나를 위해 진정성있게 충고하는구나 하고 받아들였고, 서로가 통찰력이 있지 않았나. 또한 결과적으로 (충고 행위가) 헌법과 법률 위반은 아니다. 이들은 실세로서 인사와 예산 등에 관여하겠다고 한 건 아니었다. 최순실은 비선이 되어서 인사와 예산에 관여했다. 인사도 결국 돈이고 예산(관여)은 아예 정부와 뭔가 해먹겠다는 것이다.

시스템에서도 걸러야 한다. 민정수석실은 대통령의 비선과 가족 등 측근을 다루는 부서다. 우병우 수석은 (비선실세를) 막기는커녕 도와준거다.“

-민주당 내 대통령 주자들이 차기 대통령으로서 시대정신이나 자격을 잘 갖췄다고 생각하는가.

“안희정 지사에게는 내가 개인적으로 많은 얘기를 해줬다. 충분히 대통령으로서의 자질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한다. 앞으로 언젠가는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본다. 다만 이번에는 타이밍이 안 맞았다. 경선은 당내에서 이겨야 한다. 그런데 지금 본선 같은 얘기만 하고 있지 않나. 적폐청산으로 새로운 시대를 만들자는 게 (시대정신의) 초점인데 적과도 동침하자는 얘기를 한다. 그건 경선이 끝난 그 다음의 얘기다. 적시에 적합한 메시지를 던져야 한다. 그게 안타깝지만 지금으로서는 도리가 없다.

현재 시대 정신에 제일 맞는 건 이재명 후보다. 적폐청산이라는 딱 맞는 말을 한다. 사이다 발언으로 타이밍에서 히트를 너무 잘 친다. 다만 여론만 가지고 대통령이 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경선)는 조직과의 싸움이기도 한데 여기서 밀리고 있다. 현재 상황에서는 뒤집기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이건 경선에 관한 한 예정된 수순이다.“

-도덕성으로  따지면 어떤 후보가 가장 낫다고 보시나. 

“문재인 후보. ‘미스터 도덕’이라고 말하지 않나. 그래서 고구마, 답답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진짜 권력 의지가 있느냐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고지식하다.”

-문재인 후보가 민정수석으로 있었을 때 느꼈던 인상을 말해달라.

“사슴같은 눈망울과 백면서생. 문재인을 민정수석으로 임명하려고 하니까 내가 막 항의했다. 민정수석도 또 백면서생을 시키냐고 했다. 아무래도 검찰 출신을 데려와야 검찰개혁을 하지 않겠냐고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문재인 당시 실장이) 통찰력 있고 지혜로운 사람이다, (자신이) 여러 번 경험했으니 나중에 후회 안할 거라고 했다.

내 매제가 경찰청장 유력 후보로 올라있던 적이 있다. 점수도 제일 높았고 지역 안배차원에서 유력했다. 문재인 당시 민정수석이 나 있는 자리에서 눈을 똑바로 뜨고 ‘점수가 제일 높고 여러 가지 지역 안배 차원에서 와야 하는게 맞는데 문희상 실장 매제 아닙니까. 이게 공평한 인사라고 할 수 있냐’고 따박따박 말하더라. 그걸 듣고 내가 정신이 번뜩 들었다. 반박하려고 해도 할 수 없는 지극히 당연하고 원칙적인 지적이었다.“

▲ 문희상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이치열 기자.
-민주당 경선이 마무리되어 간다. 민주당 경선이 사실상 본선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돈데, 각 후보들이 경선을 치르면서 유념해야 할 사항은 뭐라고 생각하나.

“경선 이후에는 당이 모조리 새로운 조직이 돼야 한다. 경선 전과 후가 달라져야 하고 정당정치로 회귀하는 기회가 돼야 한다. 비주류든 경선에서 탈락한 사람이든 경선 이후에는 당이 이들을 앞세워야 한다. 그들이 앞장서서 당직자를 맡고 캠프의 주요 직책도 맡아야 한다. 문재인 캠프 쪽에 제일 하고 싶은 말이 그거다. 패권이라고 비판하고 갈리면서 싸우면 진다. 적폐청산과 정권교체라는 큰 원칙 하나로 뭉쳐야 한다.”

-차기 대통령이 가장 먼저 해야 할 개혁 과제는 뭐라고 보는지.

“개헌이다. 차기 대통령은 제왕적 대통령을 분권형 대통령제로 바꿔야 한다. 개헌 뿐만아니라 기본권을 강화하고 지방자치를 활성화해야 한다. 이러한 것들을 묶은 개헌이 있어야 한다. 그 다음은 공영방송 정상화 등 언론개혁과 재벌개혁, 검찰개혁, 사회개혁 등이 이어져야 한다. 외교 안보 분야도 원상복귀해야 한다. 지금이 가장 최악의 상황 아닌가. 대일·대미·대중 등 모든 외교가 완전 최악이다. 이를 원상회복만 해도 큰 개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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