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독일은 했는데 왜 우린 못할까

임소형 2017. 3. 31. 0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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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해보니 아이가 뾰로통해 있다. 점심시간에 담임이 운동장에 나가지 말라고 했단다. 책걸상 박차고 뛰어나갈 기대에 부풀었던 아이들은 실망이 컸을 것이다.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날 아이들을 운동장에 내보낸 교사는 학부모에게 항의 전화를 받는다. 극성이라고 탓할 일만은 아니다. 밖에서 뛰어 놀게 하는 게 나을지, 먼지를 조금이라도 덜 마시게 하는 게 나을지 부모도 교사도 판단이 안 선다.

미세먼지는 어제오늘 문제가 아니다. 정부는 12년 전인 2005년 1월 ‘미세먼지 특별대책’을 발표했다. 수도권 미세먼지(PM10)의 연평균 농도를 2014년까지 절반(40㎍/㎥)으로 낮춰 공기 질을 선진국 도시 수준으로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14년 서울의 미세먼지 농도(46㎍/㎥)는 파리(28), 베를린(24), 워싱턴(16)보다 훨씬 높았다.

작년 6월 정부는 ‘미세먼지 관리 특별대책’을 내놓았다. 10년 내에 유럽 주요 도시 수준으로 공기 질을 개선하겠다는 내용이 또 담겼다. 개선 수단으로 친환경차 보급 확대, 경유차 관리 강화, 발전소 미세먼지 저감 등을 들었다. 2005년 대책에 있던 저공해차 보급 확대, 경유차 규제, 사업장 미세먼지 저감 등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런 수단이 근본 해결책이 아니라는 방증이다.

정부와 과학자들은 미세먼지를 해결하려면 발생 원인과 성분부터 명확히 밝혀져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1980년대부터 대기오염 물질을 분석해왔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미세먼지 저감 사업에 2005~2016년 환경부가 투입한 예산만 1조9,259억원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공신력 있는 자료가 없어서” “면밀한 측정이 이뤄지지 않아서” 해결이 어렵다는 해명은 국민 눈높이에선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중국도 좋은 핑계거리다. 정부는 2007년 11월 미세먼지 상호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 한ㆍ중ㆍ일 공동연구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작년 11월 정부는 세 나라의 공동연구 계획을 다시 내놓았다. 9년 연구로는 부족했을까. 국내 미세먼지 상당량이 중국에서 건너왔을 거라는 ‘심증’은 있지만, 여전히 정부는 중국에게 당당히 ‘물증’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유엔 기후변화 정부간 패널(IPCC)에서 활동하는 에너지기술 전문가 토마스 브루크너 독일 라이프치히대 교수를 최근 만났다. 그는 “미세먼지의 근본 해결책은 결국 신재생 에너지”라고 강조했다. 2005년 10.5%에 머물던 독일의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2015년 30.7%(한국 4.6%)로 뛰었다. 덕분에 경유차가 전체 차량의 48%(한국 44.7%)를 차지하는데도 독일의 미세먼지(PM2.5) 농도(13.7㎍/㎥)는 한국(28.1㎍/㎥)보다 낮다. 경유차의 이산화탄소 배출이 휘발유차보다 적다는 점을 감안하면 독일은 미세먼지와 온실가스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셈이다. 세금을 경유에 매길 거냐 경유차에 매길 거냐를 놓고 눈치 보고 있는 우리 정부와 대비된다.

독일은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전기요금을 올리는 ‘초강수’를 뒀다. 브루크너 교수는 “2001년부터 각 가구에 신재생 에너지 투자 명목으로 킬로와트당 6.9센트를 추가 부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단, 20년 지나면 안 내도 된다. 일생 중 20년 정도는 환경에 기여하자는 공감대를 얻어낸 것이다. 우리 미세먼지 대책이 길을 못 찾고 헤맨 10여년 동안 독일은 당장의 비판을 감수하고 미래를 내다본 정책을 실행했다. 이제 독일은 “2050년까지 석탄발전소를 없앤다”는데, 우리는 더 짓는다. 브루크너 교수는 “제조업 기반 산업구조가 유사한 한국은 독일의 에너지 정책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새 정부는 같은 핑계를 더 이상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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