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세월호에서 위선과 증오를 파는 사람들

조중식 디지털뉴스본부 취재팀장 2017. 3. 31.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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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광장에는 아직도 세월호 천막이 14개 있다. '분향소'와 '노란리본공작소', '잊지 않겠다'는 서명을 받는 천막도 있다. 천막 주변에는 '세월호 참사의 진실은 아무것도 밝혀진 게 없습니다' '세월호 참사 진상을 감춘 박근혜' '강력한 권한을 가진 세월호 특조위 부활시켜 박근혜 책임을 낱낱이 밝혀야 합니다'라는 글들이 적혀 있다. 지난 3년간 정부 조사와 검찰 수사, 재판, 국회 국정감사와 청문회까지 거쳤지만 아직 '진실'이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진상 은폐뿐 아니라 참사의 책임을 오로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묻고 있다.

그런 대통령이 파면됐다. 그래서 세월호 사고의 전(前)과 후(後), 우리 사회는 더 안전해지고 나아졌는가. 누구도 선뜻 긍정의 답을 내놓을 수가 없다. 사고가 발생한 것이 박 전 대통령 때문이 아니고, 구조에 실패한 것 역시 박 전 대통령의 지휘 잘못이 아니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이 사고 관련 첫 보고를 받은 것은 오전 10시였다. 세월호가 이미 50도 이상 기운 시점이었다. 과학적으로 그 상태에선 선체 내부에 있는 사람을 구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 사실도 나중에 확인된 것이고, 당시엔 '학생이 탑승해 있다는 것, 사고 위치, 배 이름' 정도만 보고됐다. 그 이후 몇 시간 동안 박 전 대통령 대처의 안이함과 태만을 비난할 수는 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이 더 절박하게 움직였더라도 참사의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세월호 참사에 올라탄 정치·운동권 세력은 지난 3년간 '세월호 7시간' 의혹만 집요하게 제기했다.

그런 집요함으로 선박 과적 감시 활동을 했으면 어땠을까. 연안 선박의 시설 점검과 인·허가 과정 모니터링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감독 당국과 사업자들 간의 유착 관계를 파고들었을 수도 있다. 한 걸음이라도 앞으로 내딛는 이런 일에는 무관심하면서, 박 전 대통령만 끌어내리면 만사가 해결될 것 같은 위선의 주장을 펼쳐왔다.

세월호는 불법 증축을 했다. 규정의 두 배가 넘게 과적했다. 화물을 더 싣기 위해 배의 복원력을 유지하는 평형수를 빼버렸다. 화물 고박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 배경에 선박 운영 업체의 이윤 추구가 있었다. 행정·감독 기관은 이런 탈·불법을 놓쳤고, 눈을 감았다. 선원들은 학생들에겐 "선실에 대기하라"고 방송하고 가장 앞서 탈출했다. 각각의 과정에는 그 일에 종사하는 평범한 직업인과 공무원이 있었다. 현실 속의 대형 사고는 평범한 사람들이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작은 이익을 탐하느라 원칙에서 살짝 비켜나는 것에서 시작된다. 관행화된 부조리에 눈감고 굴복하거나 동조하는 어느 순간, 느닷없이 닥쳐오는 것이다. '절대악'과 같은 어느 한 인간 때문에 발생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세월호가 올라오자, 유력 대선 주자들의 첫마디는 "진상 규명의 첫걸음이 되길 바란다" "제2의 세월호 특조위를 구성해 세월호 진실을 낱낱이 규명하겠다"는 것이었다. 3년 묵은 증오의 말을 되풀이했다. 결코 더 안전한 세상을 만들지 못할 말들이다. 세월호 참사를 진정 잊지 않으려면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지배하는 작은 부조리들의 덩어리 시스템을 깨는 일에 집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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