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녹색성장 열등생이 된 한국
"한국 녹색성장 비전을 실천할 때다."
실수로 흘러간 유행가를 튼 것도 아니고 뜬금없이 녹색성장이라니, 철이 지나도 한참 지난 얘기라고 흘려버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 말은 국제기구가 우리 정부에 진지하게 제언한 것이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제3차 한국 환경 성과 평가 보고서'를 발표하고 우리 정부에 "녹색성장을 위한 정치적 책무를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OECD가 새삼 녹색성장을 들고나온 것은 그동안 우리나라가 환경 분야에서 독보적이라 할 만큼 역주행했기 때문이다. 다들 온실가스를 줄이자고 난리인데 우리나라는 2013년 온실가스 배출량이 2000년보다 39% 증가했다. 이는 OECD 회원국 중 터키 다음으로 높은 상승률이다. 미국·독일·일본 등 선진국들은 이 기간 온실가스 배출이 줄었다. 절대적인 수치도 나쁘다. 온실가스 총배출량에서도 우리나라는 2000년 OECD 회원국 중 9위였다가 2013년 5위로 올라섰다. 사이먼 업턴 OECD 환경국장은 이를 두고 "과거 한국은 야심 찬 녹색성장 정책을 수립한 일등국이었다"며 "이제부터라도 온실가스 저감이라는 국제적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조치들을 실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외국인들이야 의아해하겠지만 우리 국민은 한국이 잘나가던 우등생에서 갑자기 열등생으로 전락한 이유를 안다. 녹색성장은 이명박 정부 시절의 산업과 과학기술 캐치프레이즈였다. 하지만 말만 요란했지 실속은 없었다. 늘 하던 일에 녹색성장이라는 새 옷을 입혀 정부 연구비를 손쉽게 타낸 연구자들이 많았다.
그나마 오래 추진하지도 못했다. 박근혜 정부는 같은 당에서 나온 다음 정부이지만 '창조경제'라는 새로운 기치를 내걸고 녹색성장을 뒷방으로 내몰았다. 우리나라에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늘 있었던 일이긴 하다. 아무튼 신재생에너지나 온실가스 저감 기술 개발이 마치 유효기간이 5년으로 정해져 있던 것처럼 정부의 투자 대상에서 사라졌다. 아마 다음 정부에서는 창조경제가 금지어가 돼 벤처 창업이 급감하지 않을까. 실제로 벌써부터 다음 정권의 녹색성장, 창조경제는 4차 산업혁명이라며 줄을 대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다.
정부의 산업과 연구개발(R&D) 정책이 이렇게 정권 따라 급변하면 우리나라는 또 우등생과 열등생을 롤러코스터처럼 오가는 신세가 될 수밖에 없다. 한국공학한림원은 최근 차기 정부의 산업·기술 과제를 담은 정책 총서를 내면서 "4차 산업혁명은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된 만큼 민간에 맡기고 정부는 그 이후를 연구하라"고 했다. 정부는 좀 더 먼 곳을 내다보란 주문이다.
세계적인 석학들은 "정부가 연구개발비를 대야 할 곳은 인류가 해결해야 할 당면한 문제가 있는 분야"라고 입을 모은다. 지구온난화, 식량 위기, 에너지 고갈, 전염병 창궐, 고령화, 실업 등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전 정부들이 내건 기치들도 나름 의미가 있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다음 정부로서는 새로운 목표를 억지로 짜내기보다 이전 정부의 녹색성장과 창조경제를 다시 한 번 제대로 추진해보는 편이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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