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돋보기] 연결되는 市場, 막힌 정치

김신영 경제부 기자 2017. 3. 31.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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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서울 성수동 골목을 지나 사무실 문을 열자 가죽 냄새가 났다. '맨솔'의 박기범 사장은 구두 두 짝을 들고 나와 "제화(製靴) 스타트업입니다"라며 명함을 내밀었다. 이 회사는 소비자가 온라인으로 구두를 신청하면 직원이 출동해 발 사이즈를 재고 구두를 맞춤 제작해 보내준다. 이곳을 찾아가 보고픈 흥미가 든 건 "성수동 구두 장인(匠人)이 맞춤 신발을 만들어준다더라"는 한 증권맨의 이야기를 듣고서였다.

박 사장은 백화점과 구두 브랜드가 떼가는 마진이 커서 '구두 먹이사슬'의 끄트머리에 있는 장인은 한 켤레에 몇천원 간신히 손에 쥐는 산업 구조를 바꾸고 싶다고 했다. 맨솔은 장인에게 합당한 비용을 지급하고도 수제 맞춤 구두를 10만원대에 판다. 소비자와 장인을 바로 연결해서 돈이 배분되는 방식을 바꿨다. 박 사장은 "옛 산업과 새로운 기술 사이 격차를 해소하는 것이 스타트업의 임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2년 전 만났을 때 중국 알리바바그룹 마윈 회장은 "21세기는 연결의 시대다. 사방팔방 연결을 해서 돈을 벌려 한다"고 했는데 당시엔 무슨 말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최근 들어 눈에 띄게 바뀌는 주변인들의 소비 패턴을 보고서야 그 말의 속뜻을 알 듯한 느낌이다.

한 후배는 요즘 마트 갈 일이 거의 없어졌다고 했다. '마켓컬리'라는 온라인 쇼핑몰에 과일과 야채를 시키면 다음 날 새벽에 농부 이름과 주소가 적힌 신선식품을 집 앞에 배달해준단다. 도축장과 소비자를 직접 연결한 스타트업 '정육각'도 인기다. 마트 브랜드육보다 값이 싸다. 도축 후 1~4일 된 신선육이지만 유통 마진을 줄여 그렇게 팔 수 있다고 한다. 미국의 한 스타트업이 판을 깐 글로벌·온라인 벼룩시장 '엣시(Etsy)'에서 쇼핑한다는 이도 여럿 봤다. 이 사이트는 일본 도장 장인, 미국 시골 비누 공방 같은 세계 각지의 170만 작은 가게가 물건 4500만개를 올려놓고 판다.

마크 카니 영국중앙은행 총재는 최근 한 강연에서 엣시를 예로 들면서 "정부의 역할은 기술 혁신 과정에 도태되는 소상공인을 디지털 시장(市場)으로 잘 연결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마윈은 지난 1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 미국에 일자리 100만개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는데 공장을 짓겠단 얘기가 아니었다. "미국 소상공인들이 중국 13억 인구에 물건을 팔 수 있게 알리바바가 돕겠다"며 '디지털 연결'을 내세웠다.

선거철이라 한국 정치권도 영세 상인 살리겠다는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마트 휴일을 늘리고, 소상공인 카드 수수료를 인하하고,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해를 막겠다고 한다. 물리적 공간의 틀 안에 강자 대(對) 약자 대결 구도를 만들어놓고 '센 놈' 팔을 비트는 영세상인 대책을 10년째 듣는다. 정치인 생색내기 말고 무슨 효과가 있었나 모르겠다. 세상은 연결과 확장으로 내달리는데 우리 정치권은 아직도 아날로그식 해법에 갇혀 끼리끼리 치고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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