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배반적이다. 절대 잊지 말아야지, 골백번 다짐한 일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쉽게 잊히는 경우가 다반사다. 반면에 잊어야지, 눈 딱 감고 잊는 거야, 그렇게 잊고 싶어 몸부림치는 기억은 왜 또 이렇게 안 잊히는가. 이게 다 인간의 뇌가 유한해서 그렇단다. 제한된 용량에 시시콜콜 잡다한 기억을 다 저장해 두었다가는 과부하에 걸려 폭발할 우려가 있으니 선별해서 기억하기로 결정한 때문이다. 과연 효율적인 뇌다.
인간이 모여 사는 사회도 마찬가지다. 그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반드시 잊지 말아야할 기억을 따로 선별해서 저장해두는 폴더가 있다. 이름하여 ‘역사’다. 모든 인간이 어떤 모양으로든 역사에 참여하지만, 모든 인간의 삶살이가 다 역사가 되는 것은 아닌 까닭도 집단지성의 효율성 때문일 테다. 하여 일찍이 함석헌은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이렇게 썼다. “전에 살았던 김 아무개, 이 아무개의 이름을 다 빼지 않고 적고 그 생김생김이 어떻고 몸맵시가 어떠했다는 것을 아무리 자세히 그린다 하더라도 그것은 거의 한푼어치 값도 없다.”
그러니까 역사의 반열에 올라서는 기억이란 무조건 과거에 일어난 ‘사실’이 아니라는 말이다. 함석헌의 표현을 빌면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골라진 사실’이 역사로 기억되고 기록된다. 이때 그 고르는 표준은 ‘지금과의 산 관련’이란다. 달리 말해 루비콘 강을 건넌 사람의 수가 아무리 많아도 그 사람이 시저(Julius Caeser)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인천을 출발해 제주로 간 배들은 얼마나 많았을 것인가. 서해와 남해의 푸른 물결은 그 무수한 배들을 모조리 기억할 것이다. 일생에 어쩌다 한두 번 가족이나 연인, 친구끼리 제주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도 자기가 탔던 배의 이름을 추억이라는 개인폴더에 저장해 놓았으리라. 그러나 사회적 기억은 그 저장의 층위가 다르다. 우리 사회는 유독 한 배를 선별해 역사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바로 ‘세월호’다.
이른바 4·16 참사 이래 검은 바다 속에 유폐돼 있던 세월호가 마침내 물결 위로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일본에서 만들어진 그 배의 본명이 ‘나미노우에’였다는 기억도 어렴풋이 떠오른다. 우리말로 하면 그야말로 ‘물결 위’(波之上)라는 뜻이다. 신나게 물살을 가르며 사람과 화물을 실어 날라야 할 배가 어쩌다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는지, 또 막상 해보니 이렇게 쉽게 인양될 것을 왜 그토록 오래 수장시켜야 했는지 등 여전히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가 많다.
하지만 정작 미스터리한 건 따로 있다. 처음 참사가 일어났을 때를 기억해보라. 우리 사회뿐 아니라 온 세계가 세월호를 집어삼킨 매정한 바다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지 않았나. 한 생명이라도 더 구조되기를 기도하며, 팽목항 언저리에 두고 온 마음 한 자락을 쉬이 거두지 못하지 않았나. 아니 적어도 팽목항에 내려가 유족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 해주지 못함에 죄스러워했던 우리가 아닌가. 그랬던 기억이 왜 변했나. 오로지 진실을 알고 싶다며 거리로 뛰쳐나온 유족들을 향해 보상금이 어떻고, 국민의 혈세가 어떻고, 우리는 왜 그토록 모진 말로 상처를 후벼 팠을까.
하여 기억은 배반적이다. 그러나 그것이 기억의 전부가 아니다. 기억은 동시에 저항적이기도 하다. 역사가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가 아닌 까닭이 거기에 있다. 역사가 된 기억은 현재를 성찰하고 미래를 바꾸게 하는 강력한 동인이 된다. 구약의 예언자들이 입만 열면 ‘기억하라’고 외친 것도 그 때문이다. 무려 1073일 만에 물결 위로 떠오른 세월호. 탄핵을 기점으로 우리 역사가 비로소 제 길에 들어섰다고 입을 모으는 이들이 많다. 세월호를 둘러싼 진실이 하나둘 벗겨질수록 우리 역사도 해맑은 민낯을 되찾을 것이다. 세월호의 역사화 작업은 이제부터다.
구미정(숭실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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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의 소리] 기억의 배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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