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광장] 과기행정, '일하는 방식'에 초점 맞춰야
정권 변화기를 맞아 과학기술행정체제 개편 논의가 활발하다. 역대 정부는 과학기술행정체제를 둘러싼 크고 작은 조직개편을 시도했는데 그것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그간 과학기술행정체제 개편을 이끌어 온 논의는 효율성·능률성에 기반을 둔 '작은 정부론'이었다.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가치와 논리에 영향을 받아 전문성과 자율성을 고려하는 조직분화의 원리보다는 시너지 효과, 그리고 정책의 조정력 확보를 위해 조직통합의 원리가 지배한 것이다. 2008년 교육부와 과학기술부의 통합으로 만들어진 교육과학기술부가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행정체제 개편은 당초에 기대했던 시너지 효과나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부정적인 측면들이 더 크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조직 통합이후 내부 알력이 발생하거나 업무 성격에 따라 정책의 우선순위와 사회적 관심이 달라지면서 조직의 화학적 융합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 결과 정권 초에 조직개편이 단행되나 정권이 바뀌면 서로 분리되는 과정이 반복됐다.
이번에도 이변이 없는 한 행정조직 개편을 시도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나 과학기술행정과 혁신활동이 실제 작동되는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가 없는 단기적 하드웨어 조직 개편은 또다시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대대적인 조직 개편은 어떤 목적과 효과를 지향하든 정부 안팎에 적지 않은 변화와 혼란을 초래한다.
그럼에도 행정조직 개편은 신정부의 등장을 알리는 정치적 상징이기 때문에 진행될 것이다. 그러나 행정부처의 명칭과 구성을 바꾸고, 관련기관들을 통폐합하는 등 겉모습은 바뀌지만 일하는 방식은 그대로인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행정체제 논의에서 과학기술혁신체제의 핵심 문제와 과제에 집중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혁신체제는 전환기를 맞고 있다. 외국이 간 길을 따라 과학기술지식을 공급하면 자연스럽게 성과가 나오는 길은 이제 어려워졌다. 기술혁신을 통해 주력 산업과 핵심 기업이 발전하면 다른 분야도 발전하는 낙수효과는 흔적만 남아있다. 저성장, 양극화, 불확실성 증대라는 뉴노멀 상황이 구조화됐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혁신체제의 변화가 필요하다. 과학기술활동과 사회·경제적 수요가 새로운 방식으로 연결돼 우리사회의 고용·복지·환경·안전 분야 문제해결에 기여하는 시스템, 과학기술혁신의 성과를 여러 혁신주체가 공유하며 같이 성장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현돼야 한다. 과학기술혁신 활동의 하류에 있던 최종 사용자인 시민과 수요자, 중소기업들이 혁신과정에 참여하는 사용자 중심적, 수요 중심적 접근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기술·정책의 공급자가 의사결정을 주도하는 수직적 위계관계에서 공급자와 사용자가 수평적으로 활발히 의견을 교류하면서 새로운 대안을 동시에 창조해가는 수평적 관계가 필요하다. 기술공급과 사용자를 연결하고 핵심 산업과 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과 시민들도 같이 발전하는 틀이 마련돼야 한다.
과학기술행정체제 논의에서도 이러한 혁신체제의 변화를 핵심 이슈로 논의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논의되고 있는 '컨트롤타워 강화'나 '조직 분리와 통합'의 이슈에는 이런 것들이 고려되지 않는다. 거버넌스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정부-이해당사자-시민이 수평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정책을 결정한다는 '협치'라는 원래 의미는 형해화됐다. 혁신주체, 사용자, 시민들은 사라지고 기술지식과 예산 공급을 누가 통제할 것인가 즉 컨트롤 타워의 위치를 거버넌스로 이해하고 조직개편을 논의하고 있다.
백가쟁명식으로 전개되고 있는 논의는 문제의 원인을 잘못된 행정체제로 보고 있으며, 해결 대안으로 가시성이 큰 하드웨어적인 조직개편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혁신체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하드웨어적인 조직개편이 아니라 조직문화, 활동 등의 소프트웨어 측면의 변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수요자, 시민, 해결해야할 문제를 중심에 두고 혁신활동을 수행해 공급과 수요가 만나는 노력이 요청된다. 통치하는 컨트롤 타워가 아니라 만나고 논쟁하고 상호 학습하는 진정한 의미의 거버넌스가 필요한 것이다. 문제를 정확히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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