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 간부들 "작전 투입에 '부모 동의서', 또 나올 수 있다".. 왜?

권선미 기자 2017. 3. 30.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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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들의 작전 투입에 대해 부모 동의를 받는 일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으려면 그런 잘못된 판단 뒤에 있는 구조적 문제도 살펴봐야 합니다."

최근 육군의 한 공병부대장이 지뢰제거 작업에 투입될 장병 부모에게 '사전(事前) 동의서'를 받은 일에 대해 한 영관급 장교는 "요즘 군대는 민원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부모들 눈치를 지나치게 보는 경향이 있는데, 갈수록 지휘관에게 과중한 책임을 안게 하는 것도 이런 현상에 한 몫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경기도에 있는 육군 모 대대급 공병부대에서 지난해부터 6.25 전쟁 때 매설된 지뢰 제거 작전을 하는 데 투입될 장병 부모들에게 작전 설명과 함께 자식이 작전에 투입돼도 좋은지를 묻는 동의서를 보냈다. 이에 부모가 반대한 장병 8명은 지뢰 제거 작업에서 빠졌다. 나중에 이를 안 작업에 투입된 장병 부모들이 이의를 제기했다. 일이 커지자 부대는 동의서 요구 조치를 철회했다.

이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자 '전시에도 장병들이 전장터로 뛰어들어도 되는지 부모들에게 허락 받을 거냐'며 비난이 쏟아졌다. 일각에선 "이 대대장에게 뭐라할 수 없다. 일 터지면 대대장이 독박쓰게 된다", "잘못되면 다 부대장 탓할 게 아닌가", "부모들이 얼마나 난리를 치면 저렇게까지 하냐" 등의 의견도 있었다.

이에 대해 여러 군 간부들은 군대의 현실로 인해 제2, 제3의 '부모 동의서'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 공군 장교는 "요즘은 상급자가 부하의 동의없인 일을 못하는 경우도 있어 '상명하복' 문화에서 많이 벗어났다"며 "부모가 '내 자식을 왜 이 부대 보냈냐' 등 민원을 넣는 경우도 적잖은데, 민원이 제기되면 징계를 받거나 인사고과에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발생해 군인들은 전반적으로 민원을 두려워하고, 이 때문에 과도하게 처신하는 부대장들도 있다"고 말했다.

논란이 된 공병부대 '부모 동의서'도 2015년 8월 비무장지대(DMZ)에서 발생한 북한의 지뢰 도발 사건 이후, 장병 부모들이 자식의 안전에 대한 민원이 증가해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곽일정 건양대 군사학과 교수는 "군이 장병들 작전 투입에 부모님 눈치를 보게 되는 현상이 왜 생겼는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며 "군 부대 분류부터 사사건건 부모님들이 간섭을 하게 되면 지휘관들이 권한과 자신감을 잃고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김영수 국방권익연구소 소장은 "부대에 작은 사고라도 나면 진급이나 인사고과에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군인들 사이에 만연한 것도 문제"라며 "그런 인식 때문에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육군 중대장은 "지휘관이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고 부대관리를 철저히 했다 해도 부하의 한 순간 실수로 진급 등에 불이익 당하는 경우도 적잖다"며 "군인들은 부대 내에서 문제가 한 번이라도 발생하면 '이 부대장은 끝났다'고 생각하고, 이 때문에 부대장들이 전반적으로 몸을 사리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2012년부터 2015년까지 4년간 장교 징계 현황도 우리 군의 이러한 실태를 방증한다. 국방부 통계자료에 따르면 장교 경징계는 2012년 1275명에서 2015년 901명으로 약 1.4배 감소한 반면 해임·파면 등에 해당하는 중징계는 29명에서 102명으로 약 3.5배 증가했다.

우리 사회에선 대대장부터 참모총장에 이르는 지휘관들이 줄줄이 지휘책임을 물고 사퇴하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 대학 교수는 기고를 통해 박남수 전 육사교장이 2013년 발생한 생도 성폭행 사건으로 전역한 일을 두고 '지휘관 명예를 스스로 지켰다'고 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는 2014년 28사단 윤일병 폭행 사망 사건 당시 "국방장관이 사단장만 보직해임·징계하고 끝내려면 국민이 용납하지 않는다"며 "군단장, 참모총장, 당시 장관(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사퇴하지 않으면 재발한다"고 주장했다.

한 주한미군 공군 간부는 “한국군은 독특한 문화가 있는 것 같다”며 “미군은 사고가 났다고 지휘관에게 책임을 물어 옷 벗게 하진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감찰에서 왜 그런 사건이 발생했는지, 규정을 따랐는지, 부대 안정 수치는 어땠는지 등 잘잘못을 따져 사건 관계자들을 처벌한다”며 “지휘관들이 전역하는 것은 더 무책임해보인다”고 말했다. 일본 자위대 육군 간부도 “지휘관들이 부하의 사고로 직위에서 물러나는 일은 없다”고 했다.

이에 대해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는 "군에서의 사고는 어느 나라에서나 일어나는 일이고, 우리 군이 과거에 비해 사고예방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건 다들 알고 있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부모들이 군에 개입하는 건 군 자체에 대한 불신이라기보다는 자녀들이 1~2명뿐이다 보니 조그만 일도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이라면서 "그렇다고 군에서 일어나는 일에 일일이 개입하려는 건 부모들의 문제"라고 했다. 그는 또 "부모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군은 훨씬 안전한 곳이라는 것을 제도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며 "이번 '부모 동의서'처럼 세세한 문제까지 허락 받으며 하는 건 절대 용인할 수 없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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