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인공 뇌(腦)
"2045년이면 인간의 뇌는 컴퓨터와 연결돼 무한하게 확장될 것이다." 2005년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이 저서 '특이점이 온다'에서 이렇게 전망했다. 그는 컴퓨터가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시점을 특이점(特異點)이라고 정의했다. 특이점이 오면 인간의 뇌에서 기억만 꺼내 로봇이나 생명공학으로 만들어낸 새로운 신체로 옮겨 다닐 수 있다고도 했다. 어디까지가 인간인지, 어디부터가 기계인지 구분할 수 없는 '휴먼 2.0' 시대가 열린다는 주장이었다.
▶그때만 해도 커즈와일의 책은 공상 소설에 가깝다는 평이었다. 하지만 10여년 만에 이 책은 예언서가 됐다. 컴퓨터로 만든 인공지능이 TV 퀴즈쇼에서 우승했고, 바둑에서도 인간 최고수를 넘어섰다. 의사와 변호사를 대신하는 컴퓨터도 등장했다. 세계 석학들은 컴퓨터가 인간을 멸망시킬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컴퓨터를 계속 통제하기에는 인간의 진화 속도가 너무 느리기 때문이다.
▶억만장자 일론 머스크가 컴퓨터에 맞서기 위해 인간의 뇌를 강화하는 초소형 칩을 개발하고 있다고 외신들이 27일 보도했다. 이 칩을 뇌에 심으면 생각과 기억을 읽어내 컴퓨터 서버에 저장하거나 서버에서 뇌로 내려받아 사용할 수 있다.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면 치매로 기억을 잃을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영어나 수학 공부도 할 필요가 없어진다. 필요할 때 컴퓨터에서 내려받으면 그만이다.
▶머스크의 계획이 실현되려면 인간이 생각할 때 나오는 전기신호인 뇌파(腦波)를 정밀하게 감지하고 해석한 뒤 디지털 신호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 기초적인 기술은 이미 있다. 일본 연구팀은 2013년 뇌파와 뇌 영상을 해석해 자고 있는 사람의 꿈을 들여다봤다. 미국과 이스라엘 연구팀은 하반신 장애인이 입고 뇌파로 조종할 수 있는 로봇 다리를 상용화했다. 원숭이와 쥐의 기억을 조작하거나 새로운 기억을 집어넣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뇌와 컴퓨터를 연결한다는 구상은 기발하지만 위험해 보인다. 서버에 올려놓은 내 기억을 누군가 조작하거나 바꿔치기하면 어떻게 될까. 뇌에 담긴 기억이 과연 인간의 전부인가도 의문이다. 과학자들은 아직 의식과 감정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디에 존재하는지 짐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기억을 컴퓨터에 올리는 순간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가장 중요한 것들은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 의식과 감정이 없는 미래 인간을 과연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컴퓨터의 힘을 빌려 컴퓨터에 대항하려다가 오히려 인간의 멸망을 앞당기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아닐까.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고속도로에 신차 8대 와르르... 탁송차 넘어져 2시간 정체
- 산청 산불로 주민 160명 대피...산림청 ‘산불 3단계’ 발령
- “무서워서 발리 못 가겠네” 8㎞ 높이 화산재 뿜은 인니 화산
- 총수 딸 회사에 알짜 택지 넘겨...검찰, 대방건설 대표 기소
- 검찰, “이재명 대북송금 재판 일정 잡아달라”…법원에 기일지정 신청
- [오늘의 운세] 3월 23일 일요일 (음력 2월 24일 辛卯)
- [오늘의 운세] 3월 22일 토요일 (음력 2월 23일 庚寅)
- 찬탄도 반탄도 “주말 최대 규모 집결”...‘사법 수퍼위크' 앞두고 세대결
- 메이슨 삼성합병 손해배상… 정부, ISDS판정 불복소송 패소
- ‘패스트트랙 충돌’ 1심만 5년째… 재판부 “재판지연, 국민께 뭐라 말씀드려야 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