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의 세계 - 이명현의 별별 천문학] (6) 중력파는 똑똑히 보았다..13억광년 너머 '블랙홀의 키스'
[경향신문] ㆍ중력파 검출 연구의 핵심 타깃
2015년 9월14일, 미국의 루이지애나주 리빙스턴과 워싱턴주 핸포드에 위치한 두 곳의 중력파 관측소에서 중력파가 검출되었다. 아인슈타인이 중력파의 존재를 예측한 지 100년 만의 일이었다. 모두들 일반상대성이론이 다시 한번 관측적 검증의 벽을 넘었다고 평가했다. 지난 100년 동안 일반상대성이론은 숱한 검증을 거쳤지만 여전히 흔들림 없이 건재하다. 이 발견을 가장 중요하고 가장 위대한 과학적 발견 중 하나로 받아들여도 별문제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천문학자들은 어쩌면 이보다 더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는 또 다른 발견에 주목하고 있었다. 검출된 신호를 분석한 결과 약 13억 광년 떨어져 있는 곳에서 태양질량의 36배와 29배인 두 블랙홀이 충돌한 것이 밝혀졌다. 그때 발생한 중력파가 13억 광년의 거리를 날아와서 지구를 스쳐지나가다 이 관측 장비에 포착된 것이었다. 블랙홀을 직접 확인한 첫 관측 자료였다. 블랙홀의 존재를 처음으로 직접 관측했다는 말이다. 그동안 여러 종류의 블랙홀이 관측되었지만, 대부분 간접적인 방법을 통해 그 존재를 추정하는 것이었다. 블랙홀의 충돌이라는 직접적인 사건을 통해 발생한 중력파로 블랙홀을 ‘직접’ 관측했다는 말이다. 중력파 천문학의 시대를 여는 쾌거였고 직접적인 블랙홀 관측 천문학의 태동을 알리는 것이기도 했다.
블랙홀이란 일상의 언어로 말하면 표면중력이 강해서 탈출속도가 빛보다 큰 천체를 말한다. 우주에서 제일 빠른 정보 전달 수단이 빛인데, 탈출속도가 빛보다 빠르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 천체에서 출발한 빛은 빠져나가지 못하고 다시 그 천체로 돌아오고야 말 것이다. 왜냐하면 문자 그대로 빛의 속도가 탈출속도보다 작으니까. 따라서 이 천체로부터 어떤 것도 빠져나올 수 없게 된다. 빛조차도 말이다. 이런 천체를 블랙홀이라고 한다. 블랙홀은 중력이 엄청나게 강하기 때문에 주변의 물질을 끌어당긴다. 한번 블랙홀로 빨려 들어간 물질은 다시는 블랙홀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일반상대성이론의 관점으로 보면 블랙홀은 강한 중력장으로 주변 시공간을 강하게 휘어놓는다. 블랙홀 주변은 가파른 곡률을 가진 시공간이 될 것이고 그 주변의 물체는 이 가파른 곡률을 따라서 블랙홀로 굴러떨어질 것이다. 당연히 한번 블랙홀로 굴러떨어진 물체는 절대로 밖으로 빠져나올 수 없다.
블랙홀은 얼마나 클까,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다. 답부터 말하자면 아주 작은 것부터 아주 큰 것까지 다양하다. 중력파 신호를 통해 발견된 블랙홀의 질량은 각각 태양질량의 29배와 36배였다. 이들이 충돌한 후에는 태양질량의 62배가 되는 블랙홀이 되었다. 블랙홀의 존재를 직접 확인한 것도 수확이지만 두 개의 블랙홀이 합쳐져서 더 무거운 블랙홀을 형성하는 과정을 목격했다는 것도 큰 행운이다. 더 무거운 블랙홀이 생성되는 천체물리학적 원인 중 하나를 알게 된 것이다. 블랙홀의 크기를 이야기할 때 흔히 ‘슈바르츠실트 반지름’을 사용한다. 어떤 물체가 블랙홀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반지름 한계이다. 탈출속도가 빛의 속도와 같아지는 지역을 ‘사건의 지평’이라고 한다. 사건의 지평 크기의 반이 바로 슈바르츠실트 반지름이다. 보통 이 크기로 블랙홀의 크기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슈바르츠실트 반지름은 블랙홀의 질량과 비례한다. 그래서 보통 블랙홀의 크기를 말할 때 블랙홀의 질량을 이야기하곤 한다. 천체의 물리적 성질을 기술할 때 질량으로 비교하는 것이 더 편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블랙홀은 크면 클수록 질량이 크다’라고 하면 된다.
블랙홀이라고 할 때 일반인들이 흔히 떠올리는 것은 ‘항성질량블랙홀’이다. 보통 태양보다 아주 무거운 별이 일생을 모두 마치고 중력붕괴를 하면서 죽어갈 때 생기는 블랙홀을 말한다. 별의 진화 이론과 관측을 통해 이런 항성질량블랙홀의 생성에 대한 과정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감마선 폭발이나 초신성 폭발 현상을 통해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2007년에는 태양질량의 15배에 이르는 블랙홀의 존재가 알려지기도 했다. ‘IC 10 X-1’은 태양질량의 23~34배 정도 되는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 중력파 관측을 통해 알려진 충돌 전 두 블랙홀의 질량과 비슷하다. 충돌 후 형성된 블랙홀의 질량이 태양질량의 62배 정도로 추정되고 있으니 ‘IC 10 X-1’은 한동안 지니고 있던 항성질량블랙홀 중 가장 무겁다는 명예를 내려놓아야 할지도 모른다.
알려진 항성질량블랙홀의 수는 꽤 많다. 대부분 다른 별과 쌍성을 이루고 있는 경우다. 블랙홀이 혼자 존재하거나 블랙홀끼리 존재한다면 중력파를 제외하고는 직접 관측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동반성(망원경으로 볼 수 있는 쌍성 중 무겁고 밝은 주성 옆에 보이는 가볍고 어두운 별)을 갖고 있는 경우에는 그 동반성으로부터 블랙홀로 물질이 유입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빛을 통해 블랙홀의 존재를 알 수 있다. 상대성이론에 의하면 블랙홀은 사실 어떤 질량으로도 존재할 수 있다. 질량이 작아도 블랙홀이 될 만큼 밀도가 높으면 그냥 블랙홀이 되는 것이다. 이론상으로는 태양질량보다 몇 배 더 작은 블랙홀도 우주공간에서 생성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그런 상태로 생겨난 블랙홀이 발견된 적은 없다.
항성질량블랙홀은 보통 태양질량보다 아주 무거운 별들이 일생을 마치면서 중력붕괴 과정을 거쳐서 형성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태양질량보다 작은 블랙홀이 우주 초기에 생성되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못한다. 이런 블랙홀은 우주 초기에 형성되었다는 의미에서 원시블랙홀이라고도 한다. 엄밀한 분류는 아니다. 한편 이론적으로는 마이크로블랙홀도 있을 수 있다. 슈바르츠실트 반지름이 양자 크기로 아주 작은 블랙홀을 상상할 수 있다. 크기가 이처럼 극단적으로 작은 블랙홀을 생성하는 자연 현상은 알려져 있지 않다. 따라서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하지만 빅뱅 직후의 초기 우주가 고에너지 및 고밀도 상태였던 점을 감안하면 그 상황에서 마이크로블랙홀이 생성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주의 초기 상태를 재현하는 강입자가속기 실험을 통해서도 순간적으로 마이크로블랙홀이 생성될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하는 과학자들도 있다.
또 다른 유형의 블랙홀은 ‘초거대질량블랙홀’이다. 보통 은하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는데 태양질량의 수십만배에서 수십억배에 이른다. 보통 은하의 중심부에 자리를 잡고 있다. 흔히 퀘이사라고 부르는 천체의 정체가 사실은 초거대블랙홀인 경우가 많다. 우리 은하도 중심부에 태양질량의 400만배가 넘는 초거대질량블랙홀을 갖고 있다. 초거대질량블랙홀의 형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그 메커니즘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보통 태양질량의 수십배에서 수천배의 블랙홀이 태양보다 아주 무거운 별들의 폭발로부터 형성된 후 강착 과정을 통해 초거대블랙홀이 성장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다른 설명은 최초의 별이 형성되기 전에 거대 가스구름이 중력붕괴를 해서 태양질량의 20배에 달하는 블랙홀을 형성했고 그 직후 빠른 강착(중력 작용으로 가스 등의 물질을 흡수하여 원반형태가 되는 작용) 과정을 통해 상대적으로 빨리 중간질량 블랙홀이 되었다는 것이다. 어쨌든 초거대질량블랙홀은 은하 형성 초기에 가스들의 활발한 강착과 블랙홀들 사이의 잦은 충돌과 병합을 통해 생성되어서 성장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부분 은하의 중심부에서 초거대질량블랙홀이 발견되고 있다. 블랙홀의 질량과 블랙홀이 속한 모은하의 질량과의 연관 관계도 밝혀지기 시작하면서 은하의 형성과 초거대질량블랙홀의 관계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기도 하다.
그동안 관측된 블랙홀의 크기, 즉 질량 분포를 보면 재미있는 현상이 있었다. 질량 분포에서 중간 질량을 갖는 블랙홀이 상대적으로 작게 나타난 것이었다. 별의 일생 중 마지막 단계에서 중력붕괴로부터 생성되는 항성질량블랙홀은 그 질량 범위가 태양질량의 수십배 정도까지인 것 같다. 중력파를 통해 밝혀진 두 개의 블랙홀이 충돌한 후 더 큰 질량의 블랙홀이 생성되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이라면 태양질량의 수십배뿐 아니라 수백배 블랙홀의 존재를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작은 초거대질량블랙홀도 태양질량의 수십만배의 질량을 갖는다. 이들 두 종류의 블랙홀이 질적으로 다른 형성 과정을 거친다는 점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따라서 중간질량블랙홀에 대한 연구가 블랙홀의 생성에 대한 거시적인 고리를 연결시켜주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중간질량블랙홀의 존재도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2004년에 태양질량의 1300배 정도 되는 중간질량블랙홀이 발견된 적이 있다. 가까운 은하에서 발견되는 ‘초발광 엑스레이 소스’도 태양질량의 수백배에서 수천배 정도의 질량을 가진 중간질량블랙홀이 아닌지 추측하고 있다. 이 천체는 항성이 활발하게 생성되는 지역에서 주로 관찰되고 있다. 겉보기에는 이들 지역 내의 젊은 성단들과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중간질량블랙홀이 어떻게 생성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한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항성질량블랙홀들끼리 또는 다른 천체와 충돌한 뒤 합쳐져 생성되었다는 주장과 두 성단 내의 거대한 항성들이 충돌하고 중력붕괴하면서 중간질량블랙홀이 되었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중력파 검출은 현대물리학이 축배를 들어 마땅한 쾌거였다. 그 신호의 검출로부터 비로소 시작된 중력파 천문학의 핵심 관측 타깃 중 하나는 블랙홀이다. 간접적인 관측 증거를 바탕으로 근근이 연구를 이어오던 블랙홀 연구계에 큰 빛이 내린 셈이다. 항성질량블랙홀과 거대질량블랙홀의 양 진영으로 나뉘어 연구되던 블랙홀 연구가 중간질량블랙홀 연구를 포괄하고 블랙홀의 생성과 특징에 대한 통합적인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시대로 들어서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전자기파에 더해서 중력파를 도구로 사용하면서 블랙홀도 오랫동안 숨겨두었던 자신의 비밀을 우리들에게 노출하기 시작했다. 21세기는 블랙홀 연구의 시대가 될 것이다.
<이명현 과학저술가·천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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