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구의 빌드업6] 우리는 누구를 만나야 우리 축구를 할 수 있을까

조회수 2017. 3. 29. 20:2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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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드업6 데이터를 활용한 한국 v 시리아 공격패턴 분석

축구의 공격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은 페널티 에어리어 앞 중앙 공간이다. 

공격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공간 14번 존. 영국 가디언지 발췌

코치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보통 피치를 18개의 구역으로 나눴을 때, 14번 존은 공격의 '핵심 공간'이 된다. 14번 존에서는 득점 찬스와 직결되는 16-17-18번 세 곳 모두 전개가 가능해 공격적 경우의 수가 가장 많고, 단순 중거리 슛의 골 확률도 가장 높으며, 보다 복잡한 세부 전술 (주로 약속된 공격 패턴; 상대 센터백을 위로 끌어낸 후 뒷공간 침투 등)이 가장 큰 가치를 가진다. 

현재 유럽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4-2-3-1 전술의 반대발 윙어(inverted winger), 가짜 10번, 가짜 9번(false 10, 9) 전술 모두 이 14번 존을 어떻게 공략할 것인가 라는 고민과 함께 발전해 왔다. 팀의 전력상 정공법으로 14번 존을 공략하기 힘들겠다는 판단이 든다면 차선책을 고려할 수도 있는데, 상대 수비를 모두 14번 존 위로 끌어낼 때까지 기다린 후 스피드로 뒷공간을 노리는 지난 시즌의 라니에리, 또는 일정 숫자는 수비에 남겨놓은 채 측면+얼리크로스를 적극 이용해 박스 안 한방을 노리는 예전 한국 대표팀의 전술 등을 들 수 있겠다.

 첫 번째 칼럼은 데이터를 활용한 한국-시리아전 공격 패턴 분석이다.

1. 중국전보다는 나았다.

  지난 중국 원정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직도 정확히 이해하기 힘들다. 아마 직접 경기를 뛴 선수들도 비슷한 심정일 것 같다. 

 중국전 공격 패턴 분석. '핵심 공간 플레이'가 14번 존을 통한 공격에 해당.

앞서 언급한 14번 존을 거쳐 만들어지는 '핵심 공간 플레이'는 척 보기에도 빈도가 적고 대부분 측면과 롱볼을 이용한 공격 패턴이다. 또한, 위 그래프에는 빠져있는 수치가 하나 있는데 아예 빌드업 단계에서 실패하여 다음 위험 지역으로 전개를 하지 못한 경우로 이가 한국 전체 공격 시도의  38%를! 차지한다. 전체 공격 시도의 1/3 이상이 빌드업 과정에서 끊기고 전개된 공격의 대다수는 측면 또는 롱볼 패턴을. 그렇다. 전형적인 약팀이 강팀을 상대할 때 나오는 수치들이다. 중국전은 스코어도 힘들었지만 과정이 더욱 힘들었다. 

시리아전 공격 패턴 분석. 팀트웰브 제공

선수들은 중국 원정 부진을 홈에서 시리아를 상대로는 반드시 떨쳐내고 싶었다. 확실히 공격 패턴에서 박스 앞 핵심 공간(14번 존) 이용 빈도가 훨씬 많았고 뒷공간으로 한 번에 놓아주는 침투 패스도 양적으로 많았다. 다만,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우리가 급하다 보니 상대가 더 급하단 걸 충분히 이용치 못한 점이다. 이번에도 한국의 공격 빌드업 실패 비율은 43%에 달했다.


2.  우리보다 더 급한 상대의 심리를 이용하지 못했다.

팬들의 엄청난 비판과 월드컵에 못 갈지도 모른다는 상황 때문에 우리는 절박했고 급했다. 하지만 상대도 그 점은 마찬가지였다. 사실 중국과 시리아는 승점과 순위와 상황이 우리보다 더 급했다. 더군다나 그들의 입장에서는 한국이 훨씬 강팀 아닌가! 우리가 낭떠러지로 내몰릴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면, 상대는 이미 낭떠러지에 손가락만 걸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전력도 열세인 중국과 시리아는 전술적으로 다양할 수가 없었다.

1) 선수비 후 역습 2) (매번 조합이 바뀌며 조직력이 약한) 한국의 4백을 기회가 될 때마다 전방 압박.

이 두 가지를 쓸 수밖에 없었다. 슈틸리케의 전술이 예측 가능했다고 하지만 똑같이 돌려줄 수 있는 부분이었다. 특히 전반 3분 선제골 후 적지에서 끌려가는 시리아의 심리를 우리에게 유리하게 역이용하는 큰 그림이 없었던 것이 아쉬웠다. 

캡처 : JTBC 중계화면

기성용의 패스를 받은 김진수가 전방 측면의 구자철(5)에게 롱볼을 차는 모습이다. 물론 축구에 정답은 없다. 협소한 지역으로 차 준 롱볼을 구자철이 기가 막히게 받아 골을 넣을 수도 있다. 다만 수비의 형태가 한쪽으로 밀집돼 있는 상황에서 가능했던 다른 선택지들을 본다면,

아무런 위험 없이 전환 빌드업(옵션 1,2), 기성용에게 숏패스 연결(3), 좀 더 가깝고 패서를 바라보고 있는 선택지(4)와 (5)가 있었는데 모든 선택에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단 한 가지, 급하게 찰 필요는 없었다.

급하게 어려운 경합 또는 컨트롤을 요구하는 롱볼을 찰 이유는 없었던 것이다. 안정적으로 공을 더 오래 소유하며 2~3번의 전환을 거친다면 상대 두 줄 수비 라인의 좌우가 더 벌어질 수도, 상대가 더 끌려 올라와 뒷공간이 더 크게 날 수도 있는데 이는 모두 손흥민과 황희찬의 공통된 장점과 단점(빠르고 직선적인 움직임과 투박한 퍼스트 터치)을 맞춰줄 수 있는 조건들이다. 

월드컵 탈락 위기의 원정경기에서 1-0으로 지고 있는 시리아를 컨트롤하고 우리 장점을 살리지 못한다면 도대체 누구를 상대로 우리 축구를 할 것인가! 선수들이 맞는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그 스코어에 맞는 큰 틀의 합의가 미리 있어야 하는데 이 부분이 없었던 (또는 있었는데 실행되지 못했던) 것이 못내 아쉬웠다.


3. 후방 빌드업

캡처 : JTBC 중계화면
캡처 : JTBC 중계화면 

권순태에게 공이 가자 기성용이 내려오며 양팔을 벌려 두 센터백에게 넓게 서라는 지시를 하고, 그렇게 확실한 선택지가 3곳이 생긴 권순태는 중앙으로도 편안하게 볼을 놓아주는 모습이다. 권순태 골키퍼가 스위퍼 키퍼 스타일이 아니지만 더 자주 보고 싶었던 장면이다. 골키퍼를 마지막 수비수로 가담시키려면 수비수들이 확실한 패스 선택지에 자리를 잡아야 골키퍼도 마음을 먹고 골대 중심 위치에서 나와 전개 중심 위치를 잡을 수 있는데 이런 부분이 (특히 중국전에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아시아에서도 후방 빌드업을 할 수 없다면 월드컵 본선에서는 누구에게도 시도조차 할 수 없다. 후방에선 롱킥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보다 피지컬이 좋은 유럽, 남미, 아프리카 국가들이 어떻게 이용할 지 벌써부터 두렵다. 과연 한국은 알제리가 전반부터 사용했던 '한국 부수기'에 대한 대응책을 가지고 있는가?


4. 공격에서의 역할 분담

JTBC 중계화면 

후반 기성용이 박스 안으로 크로스를 넣어주는 장면. 오프사이드에 걸리긴 했지만 실제로 아쉬운 득점 찬스까지 연결된 장면이다. 다만 역할 분담에 있어 아쉬운 부분도 있었는데, 일단 박스 안의 공격수 두 명이 좋은 타이밍에 안쪽으로 스타트를 끊어주며 상대 수비를 끌고 들어간 점도 있고, 시리아의 수비 형태가 순간적으로 좋지 않아 앞뒤로 공간이 만들어졌다. 그 공간을 선점하는 선수가 없다는 점이 조금 아쉬웠다.

위쪽 직사각형으로 돌아 뛰는 선수가 없다는 것은 시간대나 스코어를 감안했을 때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기성용 앞의 넓은 공간 (빨간 원) 자리를 순간적으로 선점하는 선수가 있었다면 패스 징검다리 등 여러 이점이 있었는데 아쉽게 살리지 못했다. 좌측에 두 명의 선수가 겹쳐있는 것('?'부분)을 봤을 때 더 아쉬운 대목이다. 공격을 들어갈 때 이러면 공간 분담과 역할 분담이 애매하게 이루어지며 우리 좋은 선수들의 장점이 나올 판 자체가 거의 없었는데 중국-시리아전 모두 진하게 아쉬웠다.


5. 권순태의 이마 세이브는 절대 우연이 아니다.

"공이 와서 머리에 맞은 게 아니라 머리 쪽으로 강하게 온 공을 피하지 않고 머리로 막은, 운이 아닌 투혼의 선방입니다"

경기 이후 김병지 SPOTV 해설위원이 밝힌 한줄평이다. 권순태 선수의 코끝 찡한 선방이 일부 팬분들께는 충분히 전해지지 않은 것 같아 인용하였다. 

한국 선수들이 좋은 능력이 없다면 절대 이 칼럼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훨씬 더 잘할 수 있는 장점들이, 능력들이 있는데 어떤 요인들로 인해 발휘되지 못했을까를 고민하며 글을 썼다. 바르셀로나도 4-0으로 지는 게 축구고 같은 팀을 다시 6-1로 이기는 게 축구다. 같은 팀으로도, 멤버로도 얼마든지 결과와 내용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한국팀의 부진이 더 나은 결과를 위한 성장통이기를 바라면서 부족한 글을 마친다.

축구 분석업체 '팀트웰브'는 전통적인 축구 통계 지표 -점유율, 패스 숫자, 뛴 거리등-으로는 경기의 양상을 정확히 나타내기 힘들다는 점에서 착안하여 '존14', '빌드업6'와 같은 독자 분석 모델을 개발, 프로팀에 제공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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