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서울대 신입생 영어·수학 기초미달 5년 새 2배

윤석만 2017. 3. 29.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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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 다양화로 영수 비중 줄고 지역균형선발 전형 등 확대
단순암기와 문제풀이 위주 EBS 연계 수능도 주요 원인
"대학 수학능력 측정하는 원래 취지대로 수능 개편해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캠퍼스의 상징이 돼 있는 정문 [중앙포토]
올해 서울대에 입학한 박모(19)씨는 지난 달 대학에서 치른 신입생 수학 성취도평가 결과를 받고 깜짝 놀랐다. 고교시절 '수학에 나름 자신 있다'고 생각했는데 수학 성취도평가 성적표는 '기초학력미달'(100점 만점에 25점 이하)로 나왔기 때문이다.

서울대는 성취도평가로 신입생의 영어(문과)와 수학(이과) 실력을 평가해 4개 수준별로 나눠 수업을 한다. 박씨는 수학 실력이 가장 낮은 반인 '미적분학의 첫걸음(3학점)' 수업을 듣게 됐다.

서울대 기초교육원 조철현 수학과 주임교수는 “대학 수학을 따라가기에 부족한 학생들을 '기초학력 미달'로 분류한다"며 "이 학생들은 한 학기 동안 고교 수준의 내용을 다시 배우며 기본기를 다진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서울대에서 기초학력이 약해 고교과정을 다시 공부하는 신입생 비율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본지와 박경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9일 서울대의 신입생 영어·수학성취도평가 자료를 분석해 보니 서울대에서 수학과 영어에서 기초학력미달 학생 비율이 4~5년 사이 2배가 됐다.

수학의 경우 25점 이하(만점 100점) 학생들이 듣는 ‘미적분학의 첫걸음’ 수강생이 2012년 3.1%에서 2016년 6.3%로 늘었다. 지난해 자유전공학부에선 전체 신입생의 절반가량(42.9%)이 기초학력미달이었다.

영어는 서울대가 개발한 텝스(TEPS)로 실력을 평가해 4개 반으로 나누는데 성적이 550점(만점 990점) 이하면 가장 낮은 수준인 '기초영어'를 들어야 한다. 이 반의 수강생 비율도 2011년 11.4%에서 2016년 22.4%로 2배가 됐다. 반면 최고 수준인 고급영어 수강자는 같은 기간 33.1%에서 23%로 급감했다.

서울대 신입생들의 영어·수학 실력이 급격히 떨어진 이유는 뭘까. 학교 측은 입시 체제의 변화를 근본 원인으로 꼽는다. 신입생 교양교육을 책임지는 이재영 기초교육원장은 "입시에서 영어와 수학의 비중이 예전만큼 절대적이지 않다"며 "지역균형선발이나 학생부종합전형 확대 등 입시 제도가 다양해지면서 기초미달 학생이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 서울대 신입생 기초학력미달 비율(단위: %) 연도기초 영어미적분학의 첫걸음201622.46.3201521.55.7201417.73.9201314.83.5201212.93.1201111.4과목이 없었음자료: 박경미 더불어민주당 의원, 서울대

이런 흐름에 대해선 우려의 시선이 많다. 입시 요소가 다양해진 것은 바람직하지만 대학 공부에 필요한 최소한의 학력조차 갖추지 못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서울대는 2003년부터 신입생 대상으로 고급수학·정규반·기초수학 등 3개 반을 운영했는데 2012년에 기초수학보다 낮은 고교수준의 ‘미분학의 첫걸음’을 신설했다.

이 원장은 “영어의 경우도 원서로 수업할 때 학생들의 독해 실력이 떨어져 학습에 방해가 된다는 이야기를 하는 교수들이 종종 있다”며 "수준별 수업과 선배들의 튜터제 실시 등으로 신입생들의 부족한 실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실력 하락의 대표적 원인으로 2010년 도입된 수능·EBS 연계 정책을 꼽는다. 신종호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는 “EBS 교재에서 수능의 70%를 출제한다고 하니 학생들은 단순암기와 반복학습에 매달린다”며 “한정된 틀 안에서 문제풀이만 답습하다보니 신입생들의 실력이 떨어지고 있다. 서울대뿐 아니라 대부분 대학의 추세”라고 분석했다.

◇EBS·수능 연계의 효과(5점 만점, 1점: 전혀 아니다, 3점: 보통이다, 5점: 매우 그렇다)?EBS 교재 수업으로 무엇이 향상됐나- EBS 문제유형 습득(3.8)- EBS 문제풀이 요령(3.7)- 내용 암기(3.5)- 비판적 사고력(2.2)- 창의력(2)?EBS·수능 연계가 끼친 영향- 자기주도학습(3.3)- 학습동기 증가(2.5)- 교과 흥미 제고(2.2)#자료: 신종호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2016년 12월 대학생 805명 조사) 실제로 신 교수가 EBS 교재로 수능을 준비한 수도권 소재 8개 대학 1~2년생 805명(2016년 12월)을 조사해보니 EBS 공부가 학력수준 향상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답변이 많았다. EBS 공부의 효용성(5점 만점)을 물었더니 학생들은 문제풀이 요령습득은 3.7점, 내용 암기는 3.5점을 평균적으로 매겼다.

하지만 창의성(2)과 비판적 사고력(2.2) 향상, 학습동기 유발(2.5) 등엔 부정적 인식을 보였다. 특히 내신 1등급 학생들은 창의력(1.8)과 비판적 사고력(2) 등에 대한 효과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인 인식이 뚜렷했다.

수능에서 수학 만점을 받은 서울대 2학년 이모(20)씨는 “수능 수학은 EBS에 자주 나오는 패턴과 풀이법을 외우는 일종의 암기 과목”이라며 “쉬운 것만 공부하고 실수 안 하는 연습만 하다보니 대학 수학을 공부하는 데 적응이 안된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공립고 교장은 "EBS 연계 이후에 '수학능력'을 평가한다는 수능의 원래 취지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정규수업에서 EBS 교재 활용하는 비율(단위 %)- ‘80% 이상 활용한다’(38.5)- ‘60~80% 활용한다’(17)- ‘40~60% 활용한다’(13.5)- ‘20~40% 활용한다’(12)- ‘20% 미만 활용한다’(19)#자료: 신종호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2016년 12월 교사 200명 조사) 학교 현장에선 EBS 교재가 ‘교과서’처럼 쓰인다. 신 교수가 지난해 12월 고교 교사 200명을 조사해보니 응답자의 38.5%가 ‘정규수업에서 EBS 교재를 80% 이상 활용한다’고 답했다. 2015년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조사(교사 284명)에서도 64.8%가 ‘EBS 수능 이후 찍어주기와 문제풀이 식의 수업이 증가했다’고 답변했다. 유영산 유웨이중앙교육 대표는 “학원에서도 EBS 교재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곳이 인기”라고 말했다.

EBS 출판매출 추이
그렇다고 교육부가 EBS 교재 수능 출제 도입 이유로 내세운 사교육 절감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니다. EBS 연계 정책 도입 당시인 2010년의 고교생 1인당 사교육비는 21만8000원(월평균)이었는데 2016년엔 26만2000원으로 20.2% 증가했다.

교육부는 EBS 교재 구입은 사교육비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박경미 의원은 “영어를 공부한다면서 EBS 교재의 국문 번역본을 통째로 외우는 경우도 있다”며 “수능의 원래 취지에 맞게 대학에서의 '수학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시험으로 수능을 개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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