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신영록 사태' 잊었나..실신한 정태욱 살린 건 동료였다

김용일 2017. 3. 29.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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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천안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아디다스 U-20 4개국 축구대회’ 한국-잠비아의 후반 경기 중 상대 선수와 충돌해 쓰러진 정태욱이 실신, 일어나지 못하자 한국 선수들이 구급차를 향해 소리지르고 있다. 제공 | 대한축구협회

[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다. 그야말로 모두가 ‘식겁한 순간’이었다.

경기 중 실신한 20세 이하(U-20) 축구대표팀 주력 수비수 정태욱(아주대)을 살린 건 동료들이다. 위급한 상황에도 당황하지 않고 교과서와 같은 초동대처로 골든타임을 확보해 큰 사고로 번지지 않았다. 27일 천안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아디다스 U-20 4개국 축구대회’ 한국-잠비아의 경기. 1차전 온두라스(3-2 승)와 경기에서 득점한 정태욱은 이날 전반 중반 교체로 들어갔다가 후반 예상치 못한 부상을 입었다. 후반 35분 잠비아의 케네스 칼룽가와 공중볼 경합 과정에서 상대 왼쪽 어깨와 머리가 충돌하면서 그대로 그라운드에 떨어졌다. 이미 공중에서 머리가 돌아갔고 지면에 다시 그대로 머리를 받아 충격은 더해보였다. 순간 의식을 잃은 정태욱을 본 동료들도 화들짝 놀랐다. 하지만 응급상황에서 수비수 이상민(숭실대)이 가장 먼저 달려가 정태욱의 혀가 말려 들어가지 않도록 입에 손을 넣어 기도를 확보했다. 다른 동료도 정태욱의 축구화를 벗기거나 테이핑을 풀어 헤치면서 혈액 순환을 도왔고 이승우 등은 벤치쪽 의료진을 향해 지속해서 구급차를 외쳤다. 이 과정에서 정태욱의 의식이 점차 돌아왔고 U-20 대표팀 의료진이 투입된 데 이어 구급차가 도착, 현장 의료진도 가세해 정태욱을 실어 병원에 이송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정태욱은 당일 CT촬영 결과 별다른 이상이 없었으나 28일 MRI 정밀검사에서 목에 실금이 간 것으로 확인됐다. 의료진은 전치 6주 판정을 내렸다. 이날 바로 퇴원해 집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다. 비록 월드컵 출전은 불투명해졌으나 아직 성인 무대 데뷔도 하지 않은 유망주 정태욱에겐 우려한만큼 큰 부상이어 아니어서 다행이다. 하지만 엄연히 월드컵 테스트이벤트 성격으로 치른 이번 대회에서 현장 의료진의 초동대처 미숙은 과제로 남게 됐다. 최근 국내 프로스포츠는 경기장내 휴대용 산소통이나 심전도 모니터 등 응급 상황에 활용할만한 기본 장비를 갖추는 추세다. 가장 중요한 건 얼마나 위급한 선수에게 다가가는 시간을 단축하고 전문적으로 판단을 내릴 사람이 있느냐다. 실제 A매치나 K리그 경기에서도 현장에 응급구조사가 있더라도 당직 의사 상주를 우선하고 있다. 위급한 상황에서 우왕좌왕하지 않고 명확하게 판단을 내릴 전문의가 있어야 한다. U-20 월드컵조직위에 따르면 이날 현장엔 의사와 응급구조사 등이 모두 배치돼 있었다. 이들 모두 천안지역 한 병원에서 파견된 인력으로 U-20 월드컵 본선에도 참가하는 인원이다. 말그대로 이들 역시 ‘테스트이벤트’를 통해 리허설을 하는 셈이다. 그럼에도 이날 구급차가 정태욱에게 가기까지 걸린 시간은 1분20초였다. 정태욱이 쓰러진 뒤 45초가 지나도 구급차가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자 이승우가 화가난 듯 큰 목소리를 낸 것도 어느 정도 이해할만한 부분이다. 현장에 있던 한 관계자는 “당시 구급차가 있긴 했는데 처음에 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의료진도 당황했는지 우왕좌왕한 느낌이 들긴 했다”고 말했다. 더 안타까운 건 구급차가 1대가 아니다. 병원에서 지원한 2대와 응급구조대에서 나온 1대까지 총 3대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워낙 뜻밖에 상황이 발생하면서 모두가 ‘멍’한 상태였다. 조직위 한 관계자는 “현장 의료진이 다소 억울해하는 건 규정상 그라운드에 들어가고 싶어도 주심의 사인이 떨어져야만 된다는 것이다. 당시 주심도 (정태욱을 보느라)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의료진 역시 당황한 면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축구계에선 지난 3일 유사한 일이 있었다. 스페인 프레메라리가 25라운드에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공격수 페르난도 토레스가 데포르티보 라코루나 원정 경기에서 상대 선수와 충돌해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이송됐다. 하지만 당시 팀 의료진은 10초 만에, 현장 의료진은 30초도 안돼 들것을 들고 이동해 초동대처를 했다. ‘정태욱 사태’와 대조되는 장면이다. 국내 축구에선 이미 6년 전 경기 중 심장마비로 쓰러졌다가 기적처럼 깨어난 ‘신영록 사태’로 그라운드내 응급처치 중요성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해왔다. 하지만 늘 사고는 방심에서 비롯되고 유사한 사태가 발생해야지만 경각심을 느끼는 게 대반사다. 리틀 태극전사의 나이답지 않은 위기 대처 능력 덕분에 불상사를 피했을 뿐이다. 그리고 본선을 앞두고 테스트이벤트에서 이같은 아찔한 상황이 나온 것도 어찌보면 ‘불행중 다행’일지 모른다. 유럽 빅리그에선 구단마다 구급차 방향을 아예 그라운드를 바라보게 하는 등 1초라도 응급상황에서 초동대처를 확실히하기 위해 메뉴얼을 만들어놓는다. 전 세계 미래 축구 스타를 가늠하는 U-20 월드컵을 치르는 우리에게도 보다 더 확실한 안전 대처법이 필요하다.
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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