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sian.road] 실종된 한국축구를 찾습니다

배진경 2017. 3. 29. 07: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포포투=배진경]

진땀 뺀 승리였다. 한국이 28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8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7차전에서 시리아에 1-0으로 승리했다. 전반 4분 만에 세트피스로 완성된 홍정호의 선제골을 끝까지 지켰다. 승점 13점을 확보한 한국은 이날 중국에 승리한 이란(승점 17)에 이어 A조 2위 자리를 유지했다.

이겼지만 누구도 웃지 못했다. 한 골 차 리드는 불안하기만 했다. 추가골은 나오지 않았고, 실점 위기는 간신히 넘겼다. 벼랑 끝에서 간신히 한숨 돌렸다. 경기 후 크게 기뻐하는 울리 슈틸리케 감독과 벤치의 온도는 그라운드 밖과 차이가 있었다. 이럴 때 ‘웃프다’라는 말을 쓴다. 알맹이가 빠진 한국축구의 현주소다.



#1. 팀 오라(aura)가 사라졌다

한국은 아시아 최고 수준으로 존중 받는 팀이다. 2002월드컵 4강 신화, 8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 유럽에서 활약하는 빅리거가 다수 포진한 스쿼드 등이 그 근거다. 적어도 아시아 내에서 한국을 상대로 정면 대결을 벌이는 팀은 많지 않다. 월드컵 아시아 2차예선에서 무실점으로 8전승을 거둘 당시 최대 화두가 ‘밀집수비 파훼법’이었을 정도다.

최종예선 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한국 대표팀을 감싸던 오라가 사라졌다. 역대 전적이나 과거의 영광이 ‘후광’이 되지 못한다. 상대의 태도가 변했다. 최종예선 1라운드에서 극단적인 수비와 ‘침대축구’로 나섰던 중국과 시리아가 2라운드 들어서는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는 팀이 됐다. 한국이 허점을 노출하면서 ‘해볼만한 상대’가 됐다는 의미다. 거의 매 경기 실책이 나왔던 수비진과 함께 공격진의 위세도 떨어졌다. 상대가 라인을 올려도 효과적으로 뒷공간을 침투하고 골문을 두드려대는 한국 공격수가 눈에 띄지 않는다. 압박과 고립에 취약한 이들이 됐다.

시리아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전반 4분 만에 선제골이 터지자 시리아는 만회골을 얻기 위해 적극적으로 라인을 올리며 압박했다. 한국도 추가골을 노렸지만 골문 앞에서 마무리가 재앙에 가까웠다. 슈틸리케 감독은 “시리아가 강하고 거칠게 나왔다. 그에 대응하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구자철 역시 “선제골이 나오고 승점을 지키려다 보니 공격적으로 나갈 수 있었던 부분에서 패스미스가 많았다. 너무 안정적으로 하려고 했다. 반대로 상대가 굉장히 공격적으로 나오면서 우리가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2. 볼 관리 안되는 점유율 축구

슈틸리케 감독은 점유율을 중시한다. 볼을 소유할수록 공격 기회가 많아지고 주도권을 쥘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상대의 기회를 차단할 수 있으니 안전하다. 이 명제가 성립하기 위한 조건은 전진패스다. 골문을 향해 전진해야 패스만으로 상대에 부담을 가할 수 있다.

그러나 슈틸리케의 점유율 축구는 이상적이지 않다. 지난 중국전에서 기록으로 드러났다. 464회 패스 중 108회가 백패스였다. 시리아전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안전한 지역에서의 횡패스나 백패스, 볼 돌리기로 흐름이 느슨해졌다. 공격 진영으로 향하는 패스의 정확도도 떨어졌다. 점유율에 집착하지만 개개인의 ‘볼 관리’ 능력이 떨어지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볼 간수가 되지 않으니 패스에 급급하고, 책임을 떠넘기듯 패스하다 보니 실수가 잦아지는 양상이다.

그나마 그라운드 전체를 시야에 두고 완급을 조절한 선수는 기성용이 유일했다. 시리아 선수들이 몰린 쪽 반대편 공간이나 배후로 패스를 건네거나 중거리슛으로 분위기를 전환했다. 기성용은 경기 후 믹스트존 인터뷰에서 강도 높게 동료들을 비판했다. 기본적인 경기력을 회복해야 한다며 일침을 놓았다. “볼이 가면 관리를 하지도 못하고 다 뺏긴다. 대표팀 수준이 아니었다.”



#3. 정신력을 찾습니다

케케묵은 얘기지만, 다시 정신력을 논해야 할 때다. ‘안되면 되게 하라’식의 투혼이 아니다. 평정심을 뜻한다. 상황이나 환경의 변화에 휘둘리지 않고 일관된 경기력을 유지할 수 있게 만드는 능력이다. '볼 관리' 같은 경기력이 떨어진 것도 심리적 불안감과 무관하지 않다. 안방에서 시리아를 상대로 리드를 잡고 있었음에도 쫓겼다. 위기 관리 능력이 떨어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 골 차로 리드할 때 영리하게 운영할 수 있는 여유, 스코어에 따라 ‘조였다 풀었다’를 주도할 수 있는 완급 조절의 묘, 위기감이나 부담감을 극복하는 내적 동기 모두 정신적인 힘에 속한다. 기성용은 “위기 상황을 극복하는 것도 강팀이 되는 과정”이라고 했다. 그 힘을 찾아야 할 때다. 구자철은 “대표팀 유니폼을 입는 건 막중한 책임감을 갖는 것”이라며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을 때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갖고 오기 위해 정신적으로 더 잘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러시아로 향하는 길은 여전히 험난하다. 남은 3경기 모두 승리해야 한다는 부담감 속에 ‘직접 경쟁’ 상대인 이란-우즈베키스탄과 마지막 2연전을 치른다. 이겨야 하고, 이길 수 있다는 정신력으로 나서야 한다.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을 수도 있다”던 구자철의 걱정은 그래도 “오늘 승점 3점으로 다음 경기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한다”는 기대로 마무리 됐다. ‘Pride of Asia’를 외치던 자신감으로 이어질, 정신적인 힘을 회복해야 한다.

사진=FAphotos

Copyright © 포포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