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집회 5개월..종로구 청소과서 보내온 편지

태원준 기자 2017. 3. 29.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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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가 열린 광화문 광장에서 5개월 동안 매주 청소 업무를 담당해온 종로구청 청소행정과 고동석 폐기물관리 팀장이 '촛불집회'에 대한 소회를 담은 글을 국민일보에 보내왔다. 

다음은 청소행정과 고동석 팀장의 글 전문이다. 

인왕산, 북악산, 낙산이 마치 엄마의 품처럼 따뜻하게 안고 있는 광화문 광장! 대한민국 600년의 중심지였고 미래를 이끌어갈 상징이기에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이 떡 버티고 있다. 어머니의 땅 광화문 광장이 못난 자식을 훈계해 제자리로 돌이키려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이 당위성을 지키기 위해 1000만개 촛불이 별처럼 반짝였다.

지난해 10월 29일 제1차 촛불집회부터 5개월을 달렸다. 유모차에 아기를 태운 부모, 교복 입은 학생, 넥타이 부대 아저씨, 연세 지긋한 어르신까지 남녀노소가 따로 없었다. 특히 12월 3일 광화문광장, 신문로, 종로, 율곡로는 사람의 바다였다. 종로구청앞, 열린마당 옆 골목은 촛불 시민이 바다를 향해 꿈틀꿈틀 움직이는 강물 같았다. 집회마다 촛불 개수의 차이만 있을 뿐 소원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어렵게 꺼냈던 말 "봉투 드릴게요. 쓰레기 담아주세요"

놀라운 일이 많다. 170만명이 모인 것도 놀랍다. 170만명이 모이도록 허가한 대한민국 국민도 놀랍다. 더 놀라운 건 170만이 모였다 간 자리가 깨끗하다는 거였다. 자율과 책임이 우리의 민주주의를 성숙하게 만들고 있다. 첫 집회 때. 청소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현장을 지키던 우리는 생각했다. 사람이 너무 많아 중간 중간 청소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차라리 쓰레기 봉투를 나눠 주고, 시민들에게 청소를 부탁해 보자. 

이렇게 맘을 먹고 쓰레기 봉투를 나눠 주기 시작했다.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줄에 앉은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쓰레기를 여기에 담아 주세요” “여기 봉투 드릴께요. 쓰레기를 담아 모아주세요”. 집회가 끝난후 기적이 일어났다. 

광장의 쓰레기는 봉투에 담겨 일정한 장소에 모아져 있었다. 그 후 수차례 집회가 진행되면서 공무원들이 자원봉사자를 모집하고 자원봉사자는 쓰레기 봉투를 나눠주기도 하고, 쓰레기가 모일 법한 장소에 봉투를 테이프로 묶어 놓기도 했다. 봉투를 들고 다니며 학생들이, 시민들이 스스로 청소하는 모습에 우리는 감동했다.

종로구에서만 연인원 1000여명 자원봉사자가 활동했다. 이제는 자원봉사 단골손님도 생겼다. 거의 매회 참여하신 분들도 있다. 이름은 밝히지 않지만 거의 매주 나와 청소를 돕는 국회의원도 있다. 종로구 청소인력도 연인원 1200여명에 처리비 또한 3억원을 훌쩍 넘었다.

"집회가 끝난 뒤 기적이 일어났고, 우리는 감동했다"

이제 광화문광장의 집회 쓰레기는 자율청소로 정착되었다. 자원봉사자가 봉투를 나눠 주고 시민들이 줍고, 운반은 종로구청이 했다. 이렇게 보면 단순하지만 환경미화원의 눈으로 한 번 보자. 토요일 오후 2시에 출근해서 준비를 시작한다. 광화문역 출입구, 시민마당 옆 등에 쓰레기 수거용 마대를 100여개 설치한다. 

5시에는 자원봉사자 교육을 하고, 5시 30분 자원봉사자와 함께 봉투나눠 주기와 쓰레기 봉투 놓기를 시작한다. 8시에 늦은 저녁을 먹고 나서 바로 현장으로 나간다. 쓰레기 봉투 주변을 정리하고 흩어진 쓰레기를 봉투에 담는다. 집회가 끝나는 23시까지 반복한다. 

23시 집회가 끝나면 150여명의 환경미화원들이 광화문, 종로, 청계천로, 새문안로, 삼청로, 북촌로, 청와대앞길 등을 차량을 동원해 쓰레기를 싣는다. 많을 땐 120톤까지 나온다. 

토요일 오후 2시 출근해 일요일 오전 11시 퇴근

이것이 끝나면 새벽 5시 해장국을 먹는다. 다시 아침청소 자원봉사자 30여명이 나온다. 아침 7시 이분들을 데리고 이면도로의 담배꽁초 등 잔여 쓰레기를 줍는다. 이 모든게 끝나면 11시다. 집회 한번 하면 환경미화원은 21시간을 근무한다. 지난해 10월부터 20주 5개월을 했다.

지난 23일 세월호가 인양되던 날 광화문광장에선 촛불집회 관련 시설물을 정리하고 있었다. 우리는 또 다시 촛불집회의 심장부를 정리정돈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엉뚱한 생각을 해 본다. 더 성장하는 광화문광장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선 앞으로 일어날 집회에선 “자기가 사용한 쓰레기는 집으로 가져가면 어떨까". 

얼토당토 않은 소리일 수도 있지만 광화문광장의 쓰레기 줍기와 정리는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다. 최고 지도자가 떨어 뜨린 국격을 시민들이 높혔다고 말한다. 이제 5개월째 청소 현장에 서있던 사람으로서 감히 제안한다. 이제부터는 집회 쓰레기를 각자 가져가 한 번 더 세계를 놀라게 해 주자고.

강력한 철권통치 밑에서는 자유와 책임이 없다. 선택할 자유가 없기 때문에 책임질 이유도 없다. 그러나 우리의 아고라 광화문광장은 자유와 책임의 광장이다. 그러니 성숙한 민주주의의 무거운 책임으로 쓰레기 가져 가기 운동을 전개하는 게 어떨까 싶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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