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인문학, 커피처럼

서태열 |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장 2017. 3. 28.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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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세계 최대 IT 기업인 구글은 각 분야에서 미래를 선도하는 최첨단 과학기술을 선보이고 있지만 의외로 직원의 많은 수가 이공계가 아닌 인문사회분야 전공자로 알려져 있다. 애플의 창업주 스티브 잡스는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으며,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도 고전문학과 히브리어, 라틴어를 좋아하는 인문학 마니아로 유명하다. “창의적인 제품을 만든 비결은 우리가 항상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점에 있었기 때문이다”라는 잡스의 말처럼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제품으로 세상을 바꾸고, 경제를 이끄는 IT산업 발전에 있어 인문학적 상상력과 소양이 필수적 요소로 작용했다.

현재 대한민국은 인문학의 새로운 부활이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인문학의 가치에 눈을 뜨고 있다. 지자체와 기업은 물론 대학병원, 로펌, 군부대 등에서도 자체적인 인문학 공부 모임이나 강좌를 여는 등 인문학을 배우고자 하는 열기가 매우 뜨겁다. 하지만 이런 사회적인 관심과는 대조적으로 대학의 인문학은 위기에 직면해 있다. 대학구조개혁 과정에서는 인문학 관련 학과를 폐지·축소하고 있고 대학가와 직장에서는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퍼질 만큼 기초학문의 기반이 와해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강하게 퍼지고 있다. 2016년 기준 인문계열 전임교원은 총 1만496명으로 이 중 50~60대가 60.5%(6350명)이며, 2025년까지 33.7%가 정년퇴직할 것으로 예상돼 10년 후에는 인문학을 가르칠 교원조차 턱없이 부족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정부는 인문학의 중요성과 위기상황을 인식하고, 지난해 ‘인문학 및 인문정신문화 진흥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는 등 지속가능한 인문학 진흥을 위한 법적 기반을 마련했다. 또한 대학 내 인문학 연구 지원과 국민의 생활 속 인문정신문화 진흥을 위한 추진 전략과 세부 중점 과제로 구성된 ‘인문학 및 인문정신문화 진흥 기본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번 정책을 통해 정부는 초등생부터 일반 대중이 인문 소양을 갖춘 창의적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인문 교육을 체계화하고, 장기연구 프로그램을 신설하는 등 연구자들이 양질의 인문학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공계 연구자와의 공동 연구도 적극적으로 지원할 방침이다. 이렇게 되면 일본이 도쿄대와 교토대를 중심으로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융합형 프로젝트를 추진한 것처럼 대학의 아이디어와 인적자원, 기업의 기술력과 마케팅 역량, 그리고 정부 지원을 연계한 융합형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하고 확산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연구재단은 인문학 진흥 전담기관으로서 3년간 인문학 진흥을 위한 관련 연구와 정책 조사·분석·평가 업무를 담당할 예정이다. 인문사회연구본부 내에 설치된 전담부서를 통해 인문학 진흥 심의회 등 전문가 네트워크를 구축·운영하며, 국내외 관련 기관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등 인문학 진흥을 선도하는 대표 전문기관으로 역할을 다할 것이다.

우리 사회가 직면한 복잡한 문제의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길은 핵심을 꿰뚫는 통찰력과 삶의 지혜, 사람에 대한 이해와 같은 인문적 가치 안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한 잔의 커피가 하루를 시작하는 새로운 힘을 주는 것처럼 인문학도 매일 접하지만 질리지 않고 삶의 새로운 희망을 주는 촉매제와 같은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

<서태열 |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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