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서 사람을 만나다]딸아, 네 봄은 올 것이다

김해원 | 동화작가 2017. 3. 28.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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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그해 봄, 바다는 눈물이었다. 검은 섬을 휘감는 시퍼런 바닷물을 마주한 어머니의 멈추지 않는 눈물은 바다로 흘러들어갔을 것이다. 그대로 바다가 넘쳐 내 자식이 내 혈육이 멀쩡하게 뭍으로 나오기만 한다면 육신이 사그라진다 해도 울고 또 울었을 것이다.

시뻘겋게 녹슨 바닥을 드러낸 배를 보면서 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또 울었다고 했다. 우는 것밖에 할 게 없어서 다리 뻗고 앉아 가슴 치며 울었던 그해 봄처럼. 자식을 잃은 어머니에게 봄은 또다시 되풀이되는 눈물의 봄이다.

건져 올린 배 앞에서 어머니는 낯선 항구로 부리나케 달려간 그날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모두 구조했다는 라디오 방송을 들으면서 갔는데, 체육관은 텅 비어있고 행여 병원으로 갔나 싶어 물어보니 아직 아무도 병원으로 옮기지 않았다는 말을 들은 어머니는 아침잠 많은 딸이 깨어있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스무날이 넘도록 딸은 바다에서 나오지 못했다.

사람들은 3년 동안 배가 바닷속에 있었다고 말한다. 어머니는 고개를 내젓는다. 그 배는, 어머니의 온몸에서 뻗친 팽팽한 아딧줄로 매어져 있었다. 슬쩍 바람만 스쳐도 파도만 일렁여도 어머니의 가슴이 찢기었다. 병원에 가니 가슴뼈가 벌어져 있다고 하더라는 어머니는 큰딸 앞에서는 의연하려고 애쓴다. 행여 어머니가 쓰러질까 봐 뭍에 오른 동생을 혼자 맞이했던, 큰소리 내어 울지도 못한 큰딸이 어느 날 그러더란다.

“엄마, 나는 이제 행복할 일이 별로 없을 것 같아.”

어머니는 그 말에 눈물을 삼키며 말했다. 아니다, 봄이 올 것이다. 네 봄이 올 것이다. 어머니는 큰딸을 위해 단단히 땅을 딛고 일어나 새봄을 보여주고 싶다.

“부모 없는 아이들을 돌보고 싶어서 궁리 중이에요. 내가 이제 할 일은 그것뿐인 것 같아요.”

내가 그리하면 우리 딸도 잊히지 않을 것 같다며 또 눈물을 보이던 어머니는 아직 딸을 기다리는 다른 어머니의 전화를 받으면서 눈물 자국을 닦아낸다. 그래, 꼭 돌아올 거야. 몸 잘 챙기면서 기다려. 어머니 둘이 전화 통화를 하는 중에 속보가 떴다. 그의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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