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머리칼 한번 쓸어줄 시간"

문경란 | 인권정책연구소 이사장 2017. 3. 28.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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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일요일인 지난 26일 오후. 미세먼지가 하늘을 가린 안산 세월호 분향소 광장은 춥고 쓸쓸했다. 추모의 마음으로 걸치고 갔던 노란색 머플러를 목 주위로 돌려 감아도 파고드는 냉기를 막을 수가 없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1072일 만에야 물 위로 올라온 세월호를 지켜보는 단원고 희생자 엄마들은 자신들의 마음이 꼭 그렇다고 했다. “3주기가 다가오니 너무 힘들어요. 선체 인양을 바라보는 것도 그렇고요.” 매달 단원고 희생자 부모들과 함께하는 모임에 따라나섰다 만난 영만이 엄마는 두어 마디 끝에 결국 울먹였다.

“이제야 세월호가 올라오네요. 곧 미수습자 가족들이 그렇게 원하던 유가족이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우리 유가족들의 삶이 그리 행복하지 않았던 걸 생각하면 유가족이 되고 난 뒤 또 얼마나 절망할지, 두려운 마음이 들어요.”

애써 담담한 예은이 엄마의 말에 순간 명치 끝이 꽉 막히는 것 같았다. 유가족이 되는 것이 소원이라니. 정신병리학자이자 대형 참사의 유족들을 상담해온 일본의 노다 마사아키 교수는 “유족들이 처참한 시신임에도 집착하는 이유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한번도 생각지 않았던 가족이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장례를 치른 유가족은 피해자가 잠들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미수습자 가족은 시신의 일부라도 확인하지 않고는 죽음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단원고 희생자 아버지들이 동거차도 산꼭대기에 천막을 치고 지난 18개월 동안 일주일씩 번갈아가며 생활하는 강행군을 해온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아버지들은 망원렌즈를 통해 세월호 인양작업을 모니터링하면서 아이들이 숨져간 현장을 하루 종일 바라보는 고통을 견뎌야 했다. 그렇게라도 해서 세월호가 인양되고 미수습자 가족이 유가족이 된다면 못할 일이 뭐 있겠냐는 것이다.

하지만 노다 마사아키 교수의 설명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아이들을 쉽게 떠나보내지 못한 부모들은 미수습자 가족만이 아니었다. 유가족 부모 또한 아이들을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는 것 같았다. 정부와 일부 정치인이 세월호의 기억을 지우려고 유가족을 조롱하고 모욕하자, 희생자 가족들은 타는 가슴과 슬픔의 시간을 단식투쟁으로, 삭발로, 촛불로, 그리고 간절한 외침으로 맞서고 버텨왔다. 아이들에게 보내는 ‘꽃잎편지 전시회’ 또한 그런 기억투쟁의 하나였다.

분향소 건너편 경기도미술관에서 5월9일까지 열리는 ‘세 번째 봄, 너희를 담은 시간전(展)’. 전시회에는 색색깔 꽃잎과 거친 나무껍질과 얇게 말린 채소로 꾸민 꽃잎 편지와 꽃잎 수공예품들이 애절한 사랑과 그리움과 간절함을 담은 채 전시되고 있었다.

“그립고, 그립고, 그리운…” 영원히 잊을 수 없어 편지 제목에 마침표를 찍지 못한 지숙이 엄마는 “푹신 푹신 네 뱃살 맞대 꼭 안아주고 싶고 … 젖은 머릿결 잡고 뽀뽀하고 몸이 으스러지도록 안고 싶다”고 꽃잎 편지를 썼다. 차웅이 엄마는 엄마의 예쁜 마음을 꽃밥에 수북이 담고 “여전히 아이에게 따순 밥 한 끼만 먹이고 싶고, 그러지 못해 마음 한구석이 내내 쓰리다”고 했다.

훅 불면 나비가 되어 날아갈 것 같은 여린 꽃잎은 그리움의 세월호 리본으로 형상화되고 간절한 기다림의 빈 의자와 주인 없는 신발과 못다 공부한 책으로 되살아났다. 샛노란 꽃잎 자동차를 그린 세영이 아빠는 “대학 들어가면 자동차 사 줄게라는 말을 생전에 하지 못해 아빠가 많이 미안하다”는 편지를 띄웠다.

“낮고 더 낮게 엎드립니다. 부디 모두를 보내주소서.” 지난 3년 동안 팽목항에서 애타게 아이들을 기다리던 미수습자 가족들은 촛불을 밝히는 창호지 램프에 9명의 미수습자 명단과 함께 “머리칼 한번 쓸어줄 시간을 허락하소서”라고 써넣었다.

이 아이들이 우리 모두의 아이일진대, 이 부모의 “머리칼 한번 쓸어줄 시간”은 우리 모두의 가장 간절한 순간이다. 네 생명을 지극히 존중할 때, 내 생명도 존중받는 법이다. 생명의 침몰 앞에 올림머리부터 생각하는 그런 마음이 아니라 먹던 것도 뱉어내고 맨발로 뛰어가는 그런 마음은 너, 나, 우리 모두가 명심해야 할 마음가짐이다.

이제 곧 목포신항에 세월호가 도착하면 미수습자의 흔적을 찾고, 침몰 원인을 규명하는 일에 착수할 것이다. 수많은 난관과 불가능을 뚫고 여기까지 왔다. 그건 기적 같은 일이지만, 창현 엄마의 말대로 “희생자 가족과 국민이 함께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세월호는 우리 모두의 가슴에 생명의 존엄함과 국가의 책무를 일깨웠다. 그 진실을 기억하고 보존하려는 노력이 뒤따를 때 또 다른 억울한 희생을 막을 수 있을 것이며 새로운 생명존중의 시대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문경란 | 인권정책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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